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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의 이야기

나는 누구인가?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2.06.04|조회수121 목록 댓글 7

 

한국을 떠나기 전날 밤은 목동성당에서 특강이 있어 거의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미리 싸두긴 했어도 자질구레한 것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가방을 정리하려는데 너무 힘이 들어 아무것도

수가 없었다. 내일은 아침 9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하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 정리를 하려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잘 오질 않는다는 말이 맞다. 

한국에서 3주를 보냈는데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빨리 지나갔단 말인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안부전화 한통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이 아쉬웠다.

 

후원회 일로 임원진들과 몇 번 만난 것 외에는 주로 제자들과 음악을 하는 후배들과의 만남이었는데,

매번 거의 같은 멤버들이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만들어 서로의 사랑이나 우정을

재확인하게 된다. 나도 그들이 그리웠지만 그들도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친구들을 보게 된다면서 기뻐한다.

같은 한국에 살면서도 결국 나처럼 일 년에 한두 번밖에는 서로 못 본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바쁘게 만드는 것일까?

 

잠도 제대로 깊이 못잔 것 같은데 아침 6시에 다시 눈이 떠졌다. 떠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보다.

떠나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늘 많은 힘이 필요하다.

나는 그 전날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했는데 어디서 이런 힘이 솟구쳐 그 먼 길을 다시 떠나려하는가?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단 일초도 해본 적이 없이 말이다.

가방을 거의 다 쌌을 때, 어머니께서 동생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얘, 언니 떠났니?”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안보이니까 훌쩍 떠나버렸다고 생각이 드셨나보다.

잠시 왔다가 다시 떠나는 큰 딸이 이제는 인사 한마디도 없이 갔다고 생각을 하셨던지, 아니면 인사를 하고 갔는데 , 어머니가 기억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셨나보다. 어머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진 것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칠 전 어머니는 나와 산책을 하시면서 이렇게 물으셨다.

“아프리카 안가면 안 되니? 이제 한국에는 영 안와서 살거야?

나는 왜 내가 가야만하며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불효를 저질러야만 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와의 작별을 뒤로하고 나는 부리나케 공항으로 달렸다.

이렇게 매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가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동생 가족들과 아들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 독일 항공을 탔다.

한국이 내 육체의 고향이라면 독일은 내 정신의 고향이라고 나는 늘 말한다.

한국에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어머니와 동생들이 살고 있으며 인간관계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는

스승 제자들과의 끈끈한 정이 있다. 또 영적인 친구들이 있어 인간으로부터 받는 위로와 사랑을

한국에서는 듬뿍 받게 된다. 확실히 에너지의 큰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

 

독일에서는 사람에게서보다는 (가족들을 제외하고) 그 문화와 전통에 압도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특히 카롱가에서는 내가 익숙해진 문화와 예술의 삶은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운지도 모른다.

저녁 5시가 되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6시면 캄캄해지니 집안에 갇혀있게 된다.

저녁초대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회를 가는 것은 꿈에도 상상이 안 되는 곳이 내가 사는 카롱가의 삶이다.

6개월 만에 독일에 오면 물고기가 바다를 만난 듯 나는 즐겁고 편안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이모든 정신적 즐거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떠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풍요로운 식탁, 아름다운 성당, 고풍의 세련된 건물들을 뒤로하고 허허벌판 말라위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오페라가수로서 이곳에서 누렸던 그 모든 찬사와 갈채들은 이미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토록 욕망과 열정에 사로잡혀 30여년을 이 땅에서 보냈던 나는 과연 누구였는가?

 

이틀 동안 동생가족들과 베를린에서 달려온 아들 다니엘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독일항공을 탔다. 아들과의 헤어짐은 매번 작은 죽음을 연습하는 느낌이다.

다니엘이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자주 헤어져야했기에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나 아들은 결코 내게 이렇게 묻지 않았다.“ 엄마, 왜 우리는 또 헤어져야하나요?”

다음 달이면 아빠가 되는 아들 곁에 있어주지 않고 또 떠나는 이 엄마는 누구의 엄마인가?

 

밤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 후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다행히 독일과 아프리카는 시차가없다.

말라위로가는 비행기로 바꾸어 타기위해 1시간의 여유밖에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야만 했다.

무거운 백 팩때문에 어깨가 아파오지만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이것도 참아내야 한다.

2시간 30분 만에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 도착했다. 비록 초라한 공항이지만 내가 와야 할 곳이기에 친근함이

껴졌다. 비록 거짓말도 잘하고 남의 것을 잘 훔쳐가기도 하는 말라위사람들이지만, 왠지 그들이 내가 떠날 때

보다 더 가깝게, 더 정겹게 느껴진다. 릴롱궤에 살고 있는 친절한 교우 집에서 묶으며 뮤직센터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구입했다.이제는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곳이니 모든 장비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나의학생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피곤함도 잊은 채 시장을 돌아다녔다.

 

나를 픽업하러 카롱가에서 온 운전기사 아벨과 함께 8시간을 달려서 카롱가에 도착했다.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사람들은 너무도 가난한 말라위의 현실이다.

엄마가 다시 돌아온 뮤직센터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학생들은 그동안 연습한 곡들을 내게 들려줘서 나를 감동시켰고, 나는 그들에게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다.

이제 나는 진정 이 말라위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름답고 시설이 잘된 뮤직센터지만 그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힘( the Spirit)이 없다면뮤직센터는 오직 건물일 뿐이다. 나는 이들에게 건물만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이들에게 정신과 영혼을 불어넣어주는 “영원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예수님이 우리들을 향해 지니셨던 그 끝없는 “연민의 정”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내 영혼의고향인 아프리카

땅에서  배워가고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그 모든 것이 다 용서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느님 사랑안에서 모두 다시 만나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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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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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ucy714 | 작성시간 12.06.06 아녜스님..! 며칠 카페를 들리지 않았드니^^ 새소식과 함께^^ 루수빌로의 자녀들^^ 제자들^^ 요리의 마술사 엄마를 다시
    반기니 기쁨이 배가되고^^ 제자들은 새 악기들로 더욱 열성으로 뮤직센타 수제자의 자리메우뚝..!!!
    다니엘이 아빠가 되는일..!! 아빠의 몫이니^^ 할머니는 자기 일에 열정을 다 함이 최고의 할머니 역활이랍니다.!! ^*^~
    홧팅..!!! 부릅습니다. 다시 힘이 생긴 아프리카^^ 전 손녀 첫영성체 예식 참여 대전 정민동 성당^^ 경주 포항 전주를 거쳐
    3박4일 여정 마치고 이제 카페에들려 주님 사랑에 흠뿍 젖은 님의 기운 받습니다.힘짱...!!!!! ^*^~~
  •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07 루시아 자매님, 축하드려요 손녀의 첫영성체가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할머니 역할을 아주 즐기시는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나도 머지않아 할머니..... 아직은 감이 안오는데 막상 손자가 태어나면 감동을 받겠지요? 이곳은 다시 왁자지껄 활력이 넘치는사랑의 센터입니다. 지금은 이곳이 제게 최상의 자리인것 같아 감사할 뿐이지요.
  • 작성자아기사슴 | 작성시간 12.06.10 멀고 긴 여정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또 다시 큰 힘을 주십니다. 8시간동안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겠습니다만, 즐거이 행하시는 교수님의 열정이 또 저를 감동케 합니다. 늘 만나고, 또 헤어져야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우린 서로를 더욱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떠날 줄을 알아야 큰 일을 할 수 있으며, 용기있는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움과 희망을 가지고 떠날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감히 생각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큰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작성자펠라 | 작성시간 12.06.11 헤어짐이란 정말 마음이 아픈거지만 또 다른 만남이 있기에 설레임이라 생각해요..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나눠주고 계실 선생님~ 화이팅 입니다! ^^
  • 작성자조율리아나 | 작성시간 12.06.24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을 것 같은 교수님의 몫~~다니엘 또한 그런 엄마가 계시다는 사실에 무척 자랑스런 긍지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태어날 손주 또한 이미 주님의 계힉안에서 할머니의 훌륭한 정기를 이어 받아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충분히 살아갈 축복을 안고 태어 나리라 축복의 기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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