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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의 이야기

목적이 있는 자에게는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2.11.30|조회수123 목록 댓글 9

 

모든 여행에는 목적지가 있다. 그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곧 목적이다. 그래서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목적이 늘 즐겁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사람, 질병의 치료를 위해 길을떠나야하는 사람, 사업의 실패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도주하는

사람등....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행은 기분 좋은 일이며 삶의 활력을 가져다는 주는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여행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축복이 아닌 것 같다. 안일한 일상과 안락한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영원히 피곤하고 불편한 일로 남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신 어린 시절 이야기 중의 하나가 이번 여행 중에 생각났다.

내가 10살 쯤 되었을 때, 탁발 스님이 한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인정이 많으신 어머님께서는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항상 먹을 것을 줘서 보내시던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남에게 주는 것에 늘 익숙해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11살 되던 해,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고로 우리들을 데리고 영세를 받으셨다.

완고한 아버지는 자신이 종교를 갖는 것을 싫어하셨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성당에 나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종부성사를 받으셨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어머니가 영세 받으시기 전 까지는 불교신자였던 것 같다.

특별히 절을 다니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달밤에 냉수를 떠 놓고 절하며 기도하던 모습을

가끔 본적이 있었다. 영적인 분이셨는데, 하느님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어머니 나름대로

그렇게 절대자를 믿고 의지했던 것 같다. 절대자를 향한 그 간절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매일 미사를

다니시며 하루 종일 기도하시며 살고 계신다.

 

어머니의 말씀과 나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그 탁발 스님은 나를 보더니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나의 음력 생년월일을 받아든 스님은 큰 책자를 꺼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 이 아이는 크게 될 아이입니다. 역마살이 끼어서 세상을 누비고 다닐 것이며 발에 복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입이 커서 입으로 밥을 먹고 살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며 그림

하나를 골라서 보여 주었는데, 내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도 그 그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니, 그 스님이 전해준 말이 놀랍게도 다 맞아 떨어졌다.

나의 직업을 통해 나는 수없이 많은 여행을 했고 은퇴를 한 지금에도 일 년에 한 번씩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다.

나의 큰 입은 노래를 잘할 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의 하나였고 나는 40년 동안 노래로 밥 먹고 잘 살아왔다.

지금은 찬양과 말씀으로 주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사랑을 선포한다. 나의 발걸음은 평화의 신발을 신고 주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랑과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늘 즐겁다.

 

이번에 한국을 떠나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필립과 림바니와의 이별이었다. 아이들이 일주일가량 먹을 간식과 과일을 사들고 외대 기숙사로 가서는 이젠 떠날 시간이 됬다고 말했다.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나를 바라본 아이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우리 셋은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다. 세 살짜리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엄마 마음이 이러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과거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상처와 나약함, 두려움까지도 함께 느끼며 살아왔다. 이제 그들은 희망에 찬 내일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잘 살아갈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큰 산들을 넘고 또 넘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지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진다. 그들은 향수에 시달릴 것이고 인종차별에 실망할 날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있는 자에게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하느님께서 공급해 주신다.

 

내가 독일을 들려가면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동생들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그러나 이들과 며칠을 보내고 난 후에 나는 여행을 계속할것이다. 나의 목적지가 독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목적지인 말라위로 돌아가면 내가 사랑하는 많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또 다른 소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행복도 하느님의 일을 대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다. 삶은 긴 여행이며 순례이다. 삶의 목적지는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하는“영원한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이며 목적지이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기에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알프스를 기차로 여행하자면 수 십 번의 터널을 지나야만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죽음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지나야만 하는 오직 단 한 번의 터널이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자들이여, 삶은 죽음이 있기에 이렇게 공평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들의 “선택”이지 사주팔자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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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nalanala66 | 작성시간 12.12.02 교수님 이렇게 좋은 글 읽고는 왜 막 웃음이 나는지..
    말라위 어린 화가가 그린 아그네스 그림밀예요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교수님 주변에 하인들이 부채질해주는..

    게다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는다는 것까지
    탁발승 모습의 주님의 천사가 미리 알려줬나봐요
  • 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2.02 nalanala 님이 누구신가하니 바로 안나님,ㅎㅎ 이제 알아봤네요. 웃을 만도 하지요. 아이들 그림을 보면...
    우리는 몰라요, 하느님이 누구를 우리에게 보내시는 지르.. 성서말씀대로 천사를 대접했을지도?
  • 작성자nalanala66 | 작성시간 12.12.02 림바니 필립이 꽤 추운가봐요
    오늘 통화했어요
    점심 뭐 먹었냐고 물으니 라면..
    아직도 학교에서 돈 안나왔나봐요
    하지만 돈우어리 교수님
    낼 식량과 돈 들고 갈꺼예요
    다녀와서 샅샅이 근황을 전할께요
  •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2.02 마음써줘서 고마워요. 나도 어제 통화를 했는데, 학교에서 아직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하기에 레슨받는 학생들 편에 4만원을 인터넷 뱅킹으로 보냈으니 돈은 주지 마세요. 수요일에 담당자와 함께 외국인 등록증을 받고 은행에도 간대요. 12월부터 적금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아이들이 지출한것을
    모두 적을 노트도 사줬으니꼭 적으면서 쓰라고 다시한번 일러주세요. 안나님은 역시 사랑이 많은 이모님이세요
    고마워요.
  • 작성자노랑나비 | 작성시간 12.12.03 오늘은 선교사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 이라서 특별히 더 아녜스 선교사님이 생각이나서...마음이 찡 합니다 그 더운 곳에서
    주님의 소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자랑스런 아녜스님!!!이곳에서 할수 있는것은 그대를 위해 기도 할뿐 입니다
    오늘 새벽 미사하면서 수사님들과 함께 성무 일도 하는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건강히...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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