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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의 이야기

이게 얼마짜리 레슨인지 아냐?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3.01.28|조회수313 목록 댓글 13

나는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3명의 성악전공 학생들을 지도한다.

캘빈이라는 테너와 앨라와 메모리는 소프라노다.

작년 7월 한예종 학생들이 예술봉사를 왔을 때, 우리는 카롱가 시내에 있는 교회성가대 단원들을 오디션해서

합창 워크샵을 했었는데, 그때 오디션에 합격한 단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단원 3명을 선발하여

클래식 발성으로 성악지도를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소리도 아름답지만 노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문제는 악보를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음악 이론과 시창 청음을 가르치느라 이중으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또 이들은  피아노(키보드)가 초보인지라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음악가들 중에 특히 성악하는 사람들이 음악이론과 피아노에 약한데,

음악에 대한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아프리카 학생들의 수준이 어떻하겠는가?

 

나는 캘빈과 앨라를 잘 준비시켜서 올 해 한예종의 장학생으로 응시해 보려고 한다.

앨라는 이미 한국에 간 필립의 쌍둥이 여동생이라 더욱 한국을 가고 싶어 한다.

나는 한예종의 입시 필수과목인 콘코네 라는 책으로 아이들을 우선 가르치고 있다.

귀로 듣기만 하던 아이들이 눈을 떠서 악보를 읽어야만 이 책이 요구하는 음정 박자를

제대로 노래 할 수 있다. 노래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유익한 책이지만,

가곡이나 아리아를  노래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준비가 잘 안된 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악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니 악보를 손에 들고도 계속 다르게 노래를 한다.

나는 몇 번이고 틀리는 부분을 반복시키면서 외우도록 해줬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귀가 엄청 발달되어 몇 번만 불러주면 잘 따라한다.

그러나 스스로 음을 찾아 연구하면서 조직적으로 혼자 공부하는 것에는 아주 약하다.

그러니 일일이 다 노래를 불러주다 보면 내목소리가 얼마나 피곤한지 모른다.

특히 요즘은 내가 감기 끝에 얻은 기관지염으로 기침까지 심하게 하고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말라위 학생들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틀리고 또 틀렸다.

 

나는 너무도 실망스러워 털석 주저앉으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 얘들아, 지금 너희가 나한테 받는 이 레슨이 얼마짜리인지 아냐?

한국에서는 대가가 이런 것 까지 가르치지 않거든,“

나의 답답한 마음에서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지만, 그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 단 말인가?

또 본인들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 자체가 생소한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힘을 모아 그들에게 말했다.

 

“ 처음 해보는 음악인데 잘 하는구나, 그러나 한예종에 입학하려면 더 많이,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해.

너희들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포기하지 말자.

너희들의 간절한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야“

 

아이들의 얼굴이 금새 환해졌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있다.

죽이는 말은 내가 살자고 다른 사람에게 퍼부어대는 말이다.

살리는 말은 내가 잠시 죽으면 다른 이를 살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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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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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파란상상 | 작성시간 13.02.03 정말 좋은 말씀이신것같아요
    저도 마음 깊이 새겨야겠어요
  • 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04 파란상상님, 감사해요. 정말 오랫만이에요. 잘 지내지요?
    자매님이 후원해주신 많은 물건들로 인해 아이들이 많이 행복해졌어요.
    이제는 그림도 얼마나 잘 그리는지 몰라요. 고마워요.
  • 작성자펠라 | 작성시간 13.02.10 사람을 살리는 말.. ^^
    정말 인내심을 느끼게하는 반복적인 레슨..
    림바니와 필립에게도 그러셨듯이..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으시길..
    몸도 챙기시면서 하세요~ 화이팅!!
  • 작성자선생님딸 | 작성시간 13.02.10 죽이는 말과 살리는 말..제가 더 많이 참아야 하나봐요. 선생님은 역시 멋지세요. 모든걸 알고도 인내하기가 더 힘든데 말이에요♡
  • 작성자항빈 | 작성시간 13.03.02 선생님, 너무도 공감이 가는 상황이 그려지네요.
    선생님께서 인내로 지도하신 아이들이 미래에 아프리카를 살리는 귀한 영혼으로 커갈 것임에 의심이 없습니다.
    화이팅, 나의 사랑하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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