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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의 이야기

삶의 시작과 끝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3.10.23|조회수137 목록 댓글 0

며칠 전 독일에 사는 아들 다니엘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았다.

“괴핑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들 죠나단이 첫 걸음마를 했어요.”

놀랍다. 한 생명이 이 지구를 떠나던 날, 또 한 생명은 첫 발을 떼었다.

떠나시는 증조할머니의 마지막 사랑, 즉 에너지가 증손자 죠나단으로 옮겨진 것이다.

사랑은 에너지다.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사랑한 만큼의 에너지를 이 땅에 두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괴핑엔 할머니는 나의 전 남편 미하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시어머니셨다.

작년에 100세 잔치를 하셨으니 101살에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다니엘에게 아름다운 화환을 내 이름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 후,아주 특별한 삶을 살고 가신 그분에 관해 잠시 시간을 멈췄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컨트롤하며 살아가신 분,

겉으로 들어나는 아름다움을 너무도 추구하신 분, 그래서 자신 안에 묶여 계셨던 분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 그분이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과 자유함을 얻으시라는 기도였다.

 

"에르나" 라는 이름을 가졌던 시어머니를 내가 만난 것은 31년 전, 1982년 가을이었다.

다니엘 아빠 미하엘이 2년 동안의 미국 삶을 정리하고 내가 오페라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던 뒤셀도르프로

돌아와 나와 합류했던, 나에게는 꿈같이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의사였던 미하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고향인 괴핑엔에 혼자 살고 계신 어머니께 인사를

가자고해서 나는 처음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다.

남부 독일, 슈트트가르트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괴핑엔은 미하엘 고향이었고 미하엘은 그 도시에서도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자손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집에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를 맞이하신 60대 후반의 그의 어머니는 은빛나는 머리를 숏커트 하시고 멋진 흰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고 계셨다. 미모는 아니셨지만, 지적이면서도 냉정한 눈빛을 지닌 세련된 그분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나는 미하엘이 자라난 환경이 어떠했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넓은 정원에는 예술가들의 조각품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렇게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그 집안에는 많은 유명한

현대 화가들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고가구들과 현대화가들의 그림으로 장식된 미하엘의 집은 정말

아름다웠고 품위가 있어 나를 압도했다.  그 당시 그런 환경에서 자란 미하엘이 왠지 더 멋져 보였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날 커피와 케익을 준비하신 그의 어머니는 너무도 아름다운 식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식탁위의 꽃과 초, 테이블보와 냎킨 까지 완전히 매치되는 완벽함에 나는 매료됬다.

아,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미하엘이 그렇게 미에 대한 감각이 발달되었구나, 얼마나 행복한 청년인가!

나는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그런 분위기에 사는 사람들과 합류한 사실에 기쁨이 넘쳤다.

나는 미하엘의 어머니가 아닌 한 여인으로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여 그분의 과거를 미하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과연 그의 어머니는 그 시대에서도 아주 특별하게 살이온 여인이었다.

 

미하엘의 아버지는 그지역에서도 가장 큰, 600명을 수용할 수있는 정신병원의 원장이셨다고 한다. 

미하엘의 할아버지가 세우신 병원으로 큰 아들이 그 병원을 물려받아 운영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아들이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미술대학생인 미하엘의 어머니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아들은 사랑하는 여인을 데리고 와서 부모님께 인사를 시켰지만, 가문이 좋고 완고한 부모님이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그 여인과 헤어져야만 했다. 그후 그 여인, 즉 미하엘의 어머니는 심한 상처를 받았지만 운명에 굴복하지않고 또 다른 길을 택했다. 상심한 나머지 다른 남자를 만나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혼모로서 딸을 낳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미술 공부를 계속하다가 결국 또 다른 의사를 만나 이번에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딸을 낳고 잘 지냈는데,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첫사랑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었다고 한다.

 

그후 어떤 기회에 미하엘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미하엘의 아버지는 그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다가 다시 첫 사랑을 만나게 됨으로 이들은 다시 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하엘의 어머니는 의사 남편과 이혼하고 그렇게 반대했던 시어머니를 설득하여 첫 사랑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두사람의 간절한 열망이 이루어 낸 러브스토리일것이다.

그후 그렇게 반대하던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미하엘의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시집을 왔는데

마음이 너그러운 미하엘의 아버지 사이에서는 미하엘과 동생 크리스토프를 낳아서 2남 2녀의 어머니로서

살아가셨다. 결국 두 딸은 엄마와의 갈등으로 오래 견디지 못하고 각 각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무리 서양이라고 해도 80년 전에 미혼모가 되고, 이혼녀로서  결혼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미하엘의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특별한 길을 선택해서 살아가신것 같다..

본인은 아름다움을 극도로 추구하신 분이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늘 강조해서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시던 분, 책과 명상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던 분, 내가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너무도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분, 미하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으셨지만, 40년을 꿋꿋하게 

홀로 큰 집을 지키면서도 결코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던 분,

요리라고는 할 줄 모르시고 병원 일등실에서  공급되는 음식으로  날마다 가족을 먹이시던 분,

그래서 미하엘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그렇게 행복해 하며 맛있게 먹었었다. 

100살을 사시고난 후에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101살에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성격이 외유내강하셨던 분, 하느님을 믿지 않으셨지만, 절대자의 존재를 알고 계셨던 분,

자신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던 분,

지적이면서도 예술가의 기질을 소유하셨던 분,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이 항상 우선이셨던 분,

그 긴 세월동안 왜 마음을 열지 못하시고 그렇게 홀로 지내시다가 떠나셨을까?

 

우리는 한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말한다. 나역시 그렇다.

다니엘의 할머니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다만 한 부분 일 텐데 말이다. 그 나머지 진실은 오직 하느님과

다니엘의 할머니가 알고 계신다. 그 할머니의 한 부분이 다니엘을 통해서 계속되듯이 나의 손자 죠나단을

통해서 내 삶의 한부분이 계속 되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시작과 끝이 없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왔고  자녀들을 통해 우리들의 삶은 

그 어디에선가 계속되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삶을, 좋은 에너지를 자녀들에게  전해줘야 한다.사랑한 만큼 이 땅에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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