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건기가 끝났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건기는 7개월 만에 물러가고
생명을 가져다주는 우기가 시작 되는 것이다.
12월이면 우기가 시작된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어제까지도 그렇게 뜨겁던 태양이
언제 사라지고 먹구름이 밀려와 비를 가져올 것인가 나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은 정말 충실하다. 자신들의 때가 되면 틀림없이 찾아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요즘 아직도 계속되는 기침 때문에 아침기도를 못나가고 늦잠을 자고 있다.
눈은 떴는데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하며 뒤척이는 게으름이 아주 달콤하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요란히 울려왔다. 아주 장엄한, 깊은 울림이 계속 되더니 드디어
양철지붕에서 빗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와우, 비가 오는구나, 12월이 되니 정말 비는 오는구나,
나는 감격해서 잠옷 바람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인기가수 비의 팬들이여 오해하지말라,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
손을 내밀어 비를 담아본다. 아니 그것도 성에 안차서 그냥 비를 맞으로 정원으로 나갔다.
한국 장맛비가 아니다.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았는데 잔잔한 비가 내린다.
사막처럼 메말라있는 대지를 애무하듯 사뿐사뿐 비가 내려주고 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검정색이다, 그동안 쌓여진 흙들이 씻기어 내려온다.
정원에 말라 들어가는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니 윤기가나면서 생명을 얻는듯했다.
그렇게 뜨겁던 대지의 열기가 잔잔히 내려주는 빗방울의 힘으로 빠져 나간다.
생명이 없는 듯 느껴지던 이 마을에 활기가 도는듯했다. 아이들도 기뻐하며 나와 노는데,
그들의 걸음템포에는 변화가 없이 느리다. 우산? 그렇게 기다리던 비를 왜 가리겠는가?
아마도 내가 우산을 쓰고 나갔다가는 몰매 맞을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있다.
요즘 내가 또 하나의 일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집 근처가 너무 허전해서 대나무로 담을
만들려고 인부들과 작업중이다. 그리고 나의 오랜 꿈이었던(양지에서도 이루지 못한),
밖에다 화덕을 만들어 요리하고 정원 한가운데 놓여진 아프리카식의 정자(Summer Hot)에서 밥을 먹는 것이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나의 삶이 자연 안에서 어우러져 살기를 늘 바라면서 양지에 전원주택을 지었지만,
여전히 집안에서 요리하고 집안에서 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 꿈을 접지 않고 있다가 날씨가 항상 따뜻하고 좋은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살리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작은 가마솥 2개를 준비해서 컨테이너에 가지고 왔다.한국에서 오실 손님들에게 가마솥밥을
대접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더위를 식히면서 앉아 담소하는 공간으로 정자를 만들어 놓은 곳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 집에도 정자는 이미 서 있는데 지붕이 낡아서 밀집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화덕이 놓인 곳에도 밀집으로 지붕을 만들어야 비가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다.
몇 주 전부터 정원사에게 우기 전에 만들어야한다고 당부를 했음에도 어제서야 작업할 밀집이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 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이기적인 내 마음에는 “우리집 공사가 다 끝난 다음에 비가 와주었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조급해진 나를 보고 정원사가 웃으면서 “걱정 하지마세요. 곧 끝날 것입니다.”
선하기 짝이 없는 우리집 정원사 가운다 아저씨의 말이다.
나는 아프리카의 “곧” 이라는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지만, 또 속아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헌데 갑자기 오던 비가 멈추면서 태양이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우기라더니?
아프리카의 우기는 우리나라 장마철과는 달리 5개월 동안 꾸준히, 간간히 비가 내린다고 한다.
특히 밤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비가 오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해가 뜨는 느긋한 우기인 것이다.
아마도 기후가 사람의 성격을 만드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우리민족의 성격처럼 화끈하다.
3주정도 장대비를 쏟아, 온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고 달아났다가, 폭풍을 몰고 올 때가
있는가하면, 겨울에는 폭설로 인해 우리를 꽁꽁 묶어놓았다가 봄이 되면 과거의 온갖 횡포를
잊게 하는 꽂 바람을 가져다주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기후다.정말 기후가 사람을 만드나보다.
우기와 건기밖에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성격이 마냥 온유하고 느리며 단순하듯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음식이 또한 단순하고 변화가 없다. 맛으로 먹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오늘 뭐 먹었니?” 하고 물으면“ ”시마(옥수수로 만든 된죽)와 콩“ 내일 다시 물으면
“시마와 콩”, 다음날 물으면 여전히 시마와 콩, 어쩌다가 밥,푸른야채 볶은것"
그것을 하루 한끼가 아닌 세끼를 같은 것으로 먹는다는 것이다.(물론 잘사는 사람들이야기지만...)
이것이 결코 물질의 결핍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시아 사람들의 미각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느끼는 것 뿐이다.
음식점을 가도 메뉴는 아주 간단하다. 튀긴 생선, 튀긴 닭, 소고기 스튜 정도다.
그 어디를 가도 거의 같은 메뉴이니 같은 생선요리를 계속 먹어야 할 때가 있다.
그동안 너무 가난에 시달리다보니 음식문화라는 것이 없을 수밖에 없겠지만,
양념도 양파, 소금 정도밖에는 쓰지 않으니 그 무엇을 먹어도 그 맛이 그 맛이다.
한국 음식의 다양함을 생각해보라, 삶고, 찌고, 굽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날로
먹는 우리들의 혀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아프리카에 살려면 이 단순함에 길들여져야 하는데, 참으로 어렵다.
특히 나처럼 변화를 좋아하고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아프리카는 도전이 된다.
변화없는 기후, 같은 맛의 음식의 반복, 틀에 박힌 생활 습관, 음악의 멜로디도 리듬도
같은 것이 반복된다. 그들이 선호하는 삶의 패턴이다. 이 단순함에도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깰 생각은 없다. 깰 힘이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처럼 동화되어
살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나의 삶과 그들의 삶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함께 승리하는 것이다.
우기가 시작되면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야채 씨를 뿌려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그것도 몇 가지의 야채를 섞어서, 여러 가지 샐러드 소스를 만들어 그들을 초대하고싶다.
달고, 쓰고. 짜고, 맵고, 시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삶의 다양함을 맛본 자 만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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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03 사랑하는 루시아 자매님,감사해요, 항상 보내주시는 격려의 말씀,힘이 되는거 아시죠? 전하는 사람은 있는데, 들을 귀가 없어 못들으면 얼마나 힘이 빠지겠습니까?ㅎㅎ 감기몹시 들었을 때 자매님이 추천하신 생선 매운탕,음~ 그맛이 어찌나 그립던지요!결국
신 라면으로 위로를 했지만....내년 4월에 나가서는 자매님께 꼭 생선매운탕 한번 사달라고 지금부터 신청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0.12.03 4월엔 한국에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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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Lucy714 작성시간 10.12.03 어머*^~ 넘..감사해요 가슴 설래며 기다릴께요.4월이 빨리 오라고....^*^ 노랑나비랑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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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기사슴 작성시간 10.12.03 무미건조한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었군요. 새로운 계절의 묘미를 맛 볼 수 가 있겠군요. 가마솥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군요. 좀더 큰 가마솥이었으면 좋으련만.... 많이 아쉽습니다. 곧 가마솥의 진가가 발휘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감기가 좀 나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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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랑나비 작성시간 10.12.03 어제는 Lucy714와 옛날 압구정 친구들의 모임에 이해 마지막이라고 갔었어요 내가 다친 이야기에 모두 걱정하고 그대의 아프리카 이야기로 감동 가~암동 하고....ㅎㅎㅎ비가 오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야채 키우고 가마솥까지 준비한 그대의 정열을 하느님도 못 말라시지요 ㅋㅋㅋ그분의 복음화를 위해서 얼마나 좋아 하실까!!!!가마솥 잔치의 초대에 우짜꼬...ㅋㅋ 멋쟁이 우리 아녜스님 아프리카 정자에서 꼭 맛있는 음식해서 주님은 이렇게 오늘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일을 하고 당신이 주신 음식과 집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모습을 함께 하시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