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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자의 이야기

변화는 간절히 바라는 자들에게만 일어난다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1.02.14|조회수397 목록 댓글 5

 

루카 복음 18장 41절에 주님께서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에리코의 눈 먼 이를

만나주시면서 이렇게 물으신다.“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묵상제목으로 부각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을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주님께

다가와 청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에리코의 눈 먼 이처럼 크게 소리 지르며 주님께로

달려가야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치유해주시며 눈 먼 이가 이 세상 빛을 다시 보게

된다. 하느님을 만나기 이전에 우리들은 모두 정신적인 눈 먼 이들이다. 하느님의 빛을

보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눈 먼 이가 아니라 빛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 받는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 눈 먼 이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병이나

사고로 중간에 시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세상이나 사랑스런 사람들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기에 더욱 시력을 되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평생을 종살이를 해온 사람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던 사람은 그 자유를 박탈당할 때, 너무 고통스러워하며 그 자유를

얻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변화는 곧 우리의 의지이며 우리의 선택임을 분명히 알려주시는 말씀이다.

 

내가 말라위에서 말라위사람들과 생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진정 변화 되고자하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교육을 받지 못해 대 물림하는 가난과 무지 등, 우리의 생각으로는 “더 이상 안 돼”하며

뛰쳐나올 것만 같은데,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하루 종일 이웃들과 수다를 떨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이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위장된 평화라고 보고 있다.

 

말라위 사람들이 영적인 부분도 많이 있지만 물질에 대한 탐욕도 대단한 것을 체험하게된다.

물론 그것이 결핍에서 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 보다는 물질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동기를 소개하고 싶다.

 

말라위 남자들이 결혼을 하려면 처갓집에 돈이나 소를 사줘야만 여자를 데려 올수 있는데,

소 몇 마리를 사주었느냐에 따라 그 남자의 능력이 과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결혼은 하고 싶어도 돈도 없고 소도 없는 딱한 처지의 남자들이 있다.

그 남자들은 결혼은 하되 처갓집에 빚을 지고 살게 되는 셈이다. 언젠가 그 빚을 갚아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다가 여자가 죽으면 처갓집에서 와서 부인의 시신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여자를 외상으로 데리고 살았으니 죽은 여자의 몸은 남자의 소유가 아니라 친정

소유가 되어 그 집 땅에 묻히게 된다고 한다. 말라위 사람들의 묘지는 바로 자기 집 정원이기 때문에

죽은 자나 산자가 다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 제도이다.

죽은 여자에게 자녀들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엄마의 시신을 자기 집으로 모시기 위해

돈이나 소를 마련해서 엄마의 시신을 외갓집에서 사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얼마나 가혹한 전통인가! 죽은 자의 몸이 돈으로 계산되는 사회,

인간의 정 보다는 계산이 앞서는 철저한 물질주의자들!  손자 손녀들의 엄마를 빼앗아가는 냉혹함,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전통의식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말라위처럼 철저한 물질주의적인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선교사들이 말라위에 와서 선교를 하여 국민의 50%이상을

크리스챤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은 진정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변화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변화 되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다르게 살아온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만나는 선배 선교사님들 마다 내게 주는 충고는 “ 그래도 100%는 믿지 마세요” 이다.

이분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이런 충고를 할까, 상상이 간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는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주관을 펼치면서 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때로는 정신 번쩍 나게 야단도 치면서, 때로는 칭찬도 해주면서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힐 때, 그들은 더 이상 머리로 계산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사는 동안 그들이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변화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나의 또 다른 소망이기도 하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멘 (마르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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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기사슴 | 작성시간 11.02.14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해야겠다는 반성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노랑나비 | 작성시간 11.02.14 맞아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는 소중한 체험이 있어야만 변화될수 있어요 오늘 가톨릭 신문에 안셀름 그륀 신부님과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어요 신부님의 말씀 가운데 현대인들은 성공하는 인생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영성을 찾고 영적 체험 단절 시키고 잇다 이세상에서 자기의 고유한 영적 갈구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는 나에게 주어진 도전 이라고 ....그래서 먼저 수도자 성직자와 우리모두는 하느님을 체험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영성은 하느님을 경험 하는 장소다 또 영성은 치유 차원과 신비 차원을 지니며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 하는 장소다 라고 하셨어요그대의 소망을 하느님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작성자Junhee Kim | 작성시간 11.02.14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멘
  • 작성자Lucy714 | 작성시간 11.02.16 번쩍나게 야단도 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베인 사랑으로 루수빌로를 변화시킬..!! 아네스님, 힘짱..!!!
    예수님께서도 변화하지 않는 ,지식 층 바리사이들에게 " 이 회칠 할 무덤 " 이라시며 질책하시며 당신 가까이
    매번 부르십니다. 그들의 변화도 주님께서 기다리며 부르고 계십니다. 아녜스님을 통하여...!! 샬롬~~~ ^*~
  • 작성자펠라 | 작성시간 11.02.17 선생님의 사랑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진심으로 와닫아 전해지는 그날까지..
    멀고도 힘든 길이겠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길 저희도 모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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