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을 자주 여행과 비교한다. 물론 영적인 측면에서는 여행보다는 순례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어찌되었던 여행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 한다. 그리고 즐긴다.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에 그 장거리 여행을, 그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물어오지만, 내게는 여행이 아직은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상을 떠나 그 어딘가로, 다른 목적을 향해 떠나는 것이 그렇게
흥분될 수 없다. 또 하나는 내가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곧 비행기 안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교수로 재작하던 시절에도 나의 삶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무척
분주했다. 때로는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나의 성격인지라 스스로 “쉼”을 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퇴임을 하고 아프리카에 오면
나의 삶은 좀 느긋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 졌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쉼”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좋다. 하느님께서 건강을 주시는 동안
나는 온 힘을 다하여, 마치 나의 마지막 날을 살 듯,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런 나의 삶의 패턴이 깨어지는 것이 곧 내가 여행을 떠나는 순간이다.
모든 수속을 끝내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 지정된 나의 좌석에 앉을 때 느끼는 자유함,
이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마음이 즐겁다. 이제부터 나의 공간, 나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리가 좁은 것도
결코 문제가 되질 않는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나의 생각도 정리해서
글을 쓰기도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보면서 10시간 이상의 비행기 여행을 거뜬히 해낸다.
때로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구촌 가족임을 재확인할 수도 있다.
내가 지난 3월 26일 토요일에 부활절 음악회를 성황리에 끝내고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학생들과
헤어진 후, 밤새도록 여행 가방을 꾸려서 다음날 아침 7시 주일 미사를 하고는 카롱가를 떠나왔다.
7시간을 운전하는 기사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제 여기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냥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초록색 자연의 아름다움만
즐기면 된다. 릴롱궤에 도착해 늘 나의 힘이 되어주는 보스코 형제님과 말따 자매님의 집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틀을 묵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나의 본당이기도 한 요하네스버그 믿음의 공동체에 너무도 좋은 새로운 신부님이
부임하셔서 모든 교우들이 행복해하니 꼭 들려 가달라는 소식을 받고 나도 공동체의 일원인지라
여행 스케쥴을 변경해서라도 찾아뵙기로 한 것이다.
화요일 오후 1시 15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출발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우리는 릴롱궤 공항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3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알려진 소식은 남아공에서
특별기를 보내는데 밤 11시가 되어야 이곳에 도착 할 수 있으니 그동안 밖에 나가 있다가
밤 9시30분에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보스코 형제님께 못 떠났다고 전화를 했더니 급히
공항으로 와주어 다시 형제님 집으로 들어가 2시간 정도 조각 잠을 잔 후, 다시 공항으로 나왔다.
밤 12시가 넘어서 비행기는 출발했고 새벽 2시 30분에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은 몹시 추워서 담요를 청했지만 없다고 하니 추운대로 잠을 청해야했다.
부활절 음악회를 하고난 후부터 쌓였던 피곤이 겹쳐 콧물이 흐르면서 감기가 재발 되었다.
이 밤에 약속된 교우 집을 갈 수가 없어서 비행사에서 제공한 호텔에 도착하여 수속을 끝내고
방에 들어오니 거의 새벽 5시가 다되었다. 다시 일어날 시간이 되니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 아침 9시까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커틴을 제치고 창을 여니 밖에는 아프리카의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맘 놓고 샤워를 할 수 있어서 기분이 몹시 좋았다.
호텔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황홀할 정도로 잘 차려진 아침 뷔페 식탁을 만났다.
몇 달 만에 맛보는 여러 종류의 과일과 빵, 치즈, 요거트 등을 먹으면서 마냥 행복했다.
긴 기다림 끝에 준비된 선물을 받는 듯,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주님은 좋으시다. 참 좋으시다.
고장난 비행기를 탔더라면 우리 모두 지금 이렇게 살아남아 좋은 음식과 편한 잠자리를
누릴 수 없으리라. 하루쯤 기다렸다가 늦게 도착 했다 해도 잃은 것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여행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보장된 것이 없다.
때로는 짜증나는 일, 때로는 삶을 뒤집어 놓는 중요한 만남도 여행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여행은 매력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삶에서처럼 우리는 여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냥 받아들이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가 있다.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조각 잠을 자고난 후라 몸은 많이 피곤하고 감기기운은 계속 되었지만
나는 다음날 아침에 요하네스버그 한인 성당으로 가서 새로 오신 인천교구 소속 손광배 도미니꼬
신부님을 뵙고 은혜로운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가 4년 전에 봉헌한 오르갠으로
반주하면서 찬양을 드리니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흘렸다. 요하네스버그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시고자
그렇게 바라며 기도했던 이상적인 사제를 보내주신 것이다. 진정 하느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다.
비록 나의 여행길은 순탄치가 않았지만 그것을 잘 견디어내니 이토록 많은 기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의 삶이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결코 불평하면 안 됨을 깨닫는다. 그 뒤에 올 우리들을
위해 준비하신 하느님의 선물을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지나갈 것임을 또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아기사슴 작성시간 11.04.01 여행을 저도 무지 좋아합니다. 교수님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순례길이라 함이 더 어울릴것 같군요.
빨리 뵙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작성자노랑나비 작성시간 11.04.01 내게 주어진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안음이 기쁨과 감사를 드리게 해주심을 매사에 체험하시는 아녜스님의 주님사랑이 모든이에게 향기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오셔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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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과땅 작성시간 11.04.02 아침에 성당에서 뵙는데, 저녁에 집에와서 보니....- 언제 이렇게 글을 남기셨나요? - 우리 남아공 한인성당의 7번째 구역인, 말라위 구역장님(?) 파이팅 !!!!
항상 건강하십시요 - 다윗 올림 - -
작성자펠라 작성시간 11.04.02 설레이는 여행길~
예측하지 못한 어떤일들이 벌어질지 몰라 때론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바로 여행의 묘미라 생각합니다.
이제 곧 뵐수있겟네요! ^^ -
작성자Lucy714 작성시간 11.04.02 샬롬..^*^지금쯤, 태평양 상공이 아닐런지요..!! 7곱교회를 종횡무진으로 복음전파하신 바오로 사도를 연상케 합니다..^^
장하신 아녜스님 ..!! 감기에 제가 약속했지요..?? 노랑 나비랑 만날날 기다립니다..^*~
여행체질..!! -저도그렇지만..^^ - 복음 전파에 오히려 대담하게 수행하신 바오로사도의 수제자이십니다..!! 힘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