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자살은 사회적 문제이자 우리 인간의 가장 본질을 묻는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일을 죽어라 해도 궁핍한 노동자들, 죽어라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 당하는 청소년들이 밖으로 돌면서 결국 사회에 부적응자가 되는 매서운 현실, 매서운 사회에서 내몰리는 외톨이들...의 문제이자, 자살은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밑바닥을 치면서 까지 결국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못하고 죽는 우리 모두의 현실입니다. 게다가 옛적에 우리를 위로해 주고 정신을 풍성하게 꾸며주던 자연도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사람은 자신의 정신을 스마트폰과 게임같은 문명에 기댐으로서 정신이 피폐하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너무 먼 길을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죽을 수는 없지요. 자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따스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말랐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방황을 하다가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환경은 여전히 차갑고 매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매서움을 녹이는 것이 필요한데, 바로 그것이...그렇게 밑바닥을 치는 사람들이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이해와 따스함입니다. 지금의 사회는...나도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 걸 어떻게 신경 써!라고 하고 길거리에서 누가 죽어가도...냉혹한 무관심을 뿜으며 거리를 횡보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경제적으로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꽝 얼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의 사회는 우리 모두를 갈라 놓았고 우리는 그런 경계와 벽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갑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돈 때문에 친구를 사기치고 권력자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그 권력을 거머쥡니다.
만약...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에 진 응어리가 녹았더라면, 그 사람이 자살을 했을까요? 아니요, 아무도 그 응어리를 녹이지 못했고 그렇게 얼은 사회를 살아가다가 그 사람은 결국 자살을 택한 것입니다.
자살은 사회적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인간으로서의 문제입니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어도 그 인간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문명에 기대에 자신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살 것이 아니라 책을 보고 자연을 친구하며 인간의 정신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봄 같이 따스하다면...자살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그렇게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 봅니다, 참 아프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깊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파랑찬 대한민국의 행복한 강혜경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