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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필

그해 겨울(정인옥)

작성자조희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18 목록 댓글 0

   40년 전 겨울 몹시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넓고 넓은 벌판 한 가운데 우뚝 선 건물은 부실해서 복도에 둔 요강 오줌이 수시로 얼음이 된다. 운동장 빨랫줄에 빨래는 널자마자 말린 북어처럼 되어버린다. 손이 시리다 못해 얼어버릴 것 같은, 정말 춥던 그 옛 시절 이야기다.

   내가 성인이 되며 품고 있던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한다고 가족들에게 갑자기 일방적인 통보를 하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가까운 곳도 아닌 먼 곳으로 간다니 그것도 결혼할 나이에 말이다. 재활원 봉사활동을, 떠난다니 놀라며 반대할 것이 뻔했다. 어머니께서 펄쩍 뛰셨다. 절대 안 된다며 눈물로 만류하시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왔다.

   지금은 없어진 충청북도 00재활원이다. 일반 차들은 들어가지 않는 외딴곳, 기차역에서 내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 들어갔다. 논두렁 같은 좁은 길, 겨우 차 한 대는 다닐 수 있는 진흙탕 길이다. 걸어가는 첫길이 험하여 긴 고행길 시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예감처럼 재활원 분위기는 너무도 열악했다. 먹거리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나 자신이 견뎌낼 수 있을는지 의문스럽다. 연약함을 버리자, 아이들도 잘 견디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니.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재활시키려고 온 아이들보다 부모가 뒷바라지하기 힘들어 맡겨놓고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아이는 대체로 중증 장애로 누워 지낸다. 내가 맡은 아이는 12명이었다. 둘은 내 손길이 가야 했고 그 외는 스스로 저들이 잘했다.

   그중 한 아이는 나이가 6세인데 6개월 정도 아기 키에 늘 누워만 지낸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 미소로 대신한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알아듣고 미소로 대신하는 것이다. 엄마가 곧 산달이고 아빠는 원양어선을 타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고, 동생까지 있어 힘들다며 이곳에 맡기고 갔다. 갓안아기처럼 피부가 뽀얗고 창백한 모습이 하얀 꽃송이 같아 백합이라 불렀다. 모든 것을 눈으로 말하기에 눈이 더 초롱초롱한 것 같다. 무엇을 묻거나 얘길 하면 방긋방긋 웃음으로 대답한다. 눈짓도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근육 모두 사용하여야 웃을 수 있는 가련한 아이,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백합이 재활원에 온 지 7개월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창밖에는 눈이 부슬부슬 내렸다. 방 정리하느라 오가며 스치듯 바라본 백합, 미소를 멈추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있다. 놀라서 다가가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도 이미 굳어버린 얼굴은 변함이 없다.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거리다가 스치는 생각이 병원이다. 병원을 가야 한다. 아이를 눕혀두고 사무실에 달려갔다. 위급상황을 이야기하고 차를 부탁하니 외근을 나가고 없다. 큰일이다. 이곳 재활원은 택시 부르기도 힘든 곳이다. 아니 잘 오지도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재활원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숙소로 와 백합을 안고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 그저 백합을 안고 방을 돌고만 있다. 어제만 해도 천사같이 잘 웃던 아이가 갑자기 이럴 수가 있을까. 하염없이 쏟아지는 내 눈물이 아이의 하얀 볼에 떨어져 흘러내린다. 마치 아이가 우는 것처럼 보여 내 가슴을 더 미어지게 했다. 태어나 누워 지낸 6년 세월을 순식간에 뒤로하고 10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떠났다. 아이들 돌본다면서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무능력함이 더 슬펐다. 아이 집에 연락하니 갓난아기가 태어나 못 온다고 재활원의 처분에 맡긴단다. 이럴 수도 있구나, 장애가 있어도 자식이 죽었다는데 부모가 외면할 수도 있구나 참 매정하다.

   싸늘히 식은 아이 가슴 위에 백합꽃 한 묶음을 올려 안고, 대형 장의차에 재활원 간호사와 함께 차에 올랐다. 버스는 눈보라 속을 헤집고 비포장도로, 그 험한 길을 잘도 달린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차창 밖이 보이질 않는다. 그곳으로 오는 길도 그곳에서 나가는 길도 이렇게 험한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눈앞에서 맴도는 백합의 미소 띤 얼굴이 내 시야에 맴돌며 나를 힐책하는 듯하다.

   화장지(火葬地)에 사람이라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없었다. 누워 자다가 나온 듯한 남자는 우리를 흘깃 쳐다보더니 한마디 말도 없다. 부식된 중후한 철문을 짜증스럽듯 밀어붙인다. 억지로 밀려가며 삐꺽거리는 소리가 마치 음산한 폐가에서 나는 듯한 소리 같다. 섬뜩함에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길기만 했던 백합의 6년이 순식간에 훨훨 나른다. 연기와 재가 되었다. 다음 세상에서는 장애아로 태어나지 말고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홀로 보내기 힘든 내 마음 연기와 함께 너울너울 나른다. 백합은 걷지 못했던 한을 풀며 하늘을 날았다. 육신은 유골이 되어 내 품으로 돌아왔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내가 아이 엄마처럼 서슴없이 유골함을 받아 안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었다. 그날따라 눈보라가 무섭도록 세차게 얼굴에 와 부딪혔다. 눈썹과 눈물이 얼어 작은 고드름이 되어 매달렸다. 세찬 눈보라가 마치 나를 힐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름 모를 산기슭에 고이 내려앉았다. 백합아. 이젠 편히 쉬거라,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간호사가 유골을 받아들고 뿌려주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이곳에서는 수시로 있는 일이니까요.” 간호사의 위로 말이 들렸으나 내 눈물샘은 고장이 났는지 멈추지를 않는다. 차에 올라타는데 자구만 뒤가 돌아다 보인다. 이제 백합을 영영 못 보는구나, 볼 수 없는 이별이 제일 슬픈 이별이다.

   그날 이후 나는 몸살감기로 며칠을 앓아누웠다. 눈물로 만류하시던 어머니 얼굴과 방긋방긋 웃던 백합 얼굴이 오버랩되어 몰려온다. 후회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게 어려웠다. 이런 내게 동료들이 와서 위로해 주었다.

   다시 얻는 용기에, 후회도 포기도 다 거두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자며 일어났다. 재활원 아이들이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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