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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필

첫 번째 버킷리스트(최금숙)

작성자조희자|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0

 

    새까만 얼굴에 마른버짐이 덕지덕지 핀 소녀가 바다를 바라본다. 물결 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막연한 소녀의 꿈은 파도에 휩쓸려 부서진다. 섬고 섬 사이로 하루 한 번 육지를 연결해주는 연락선이 허옇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섬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의 집은 처마가 낮다. 태풍이나 강한 비바람으로 집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광대한 바다 뒤로는 높은 산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다. 봄을 맞이한 산에는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인다. 참꽃 잎을 따 먹는 입술은 곱디곱다. 가끔은 어머니를 따라 고사리와 취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속을 누비고 다니기도 한다. 여름에는 산딸기와 망개를 따서 부드러운 칡잎에 사카린 한 알 넣어 쌈을 싸서 먹는다. 가을이면 머루 다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산은 소녀들의 간식 창고이고 놀이터이다. 겨울은 어린이 손도 필요한 재래식 김 건조를 위하여 부모님을 도와드린다. 어설픈 손과 발은 꽁꽁 언다.

학교 가는 길 야쪽에는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그 너머에 바다가 있다. 갯바람이 바다 향기를 품고 코끝을 스쳐 지나간다.       어린 청보리가 바람결에 춤을 추던 어는 날 소녀의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불어온다. 허리춤에 책보자기를 두르고 바람과 싸우며 학교 가던 날이다. 미끄러운 보자기는 어설프게 말아진 물건들을 순식간에 모두 토해낸다. 놀라고 당황한 소녀는 눈물을 훔치며 바람에 날아간 책과 노트를 잡으러 이러저리 뛰어다닌다.

   어느덧 섬 소녀는 몸과 마음이 성장하며 섬 탈출을 꿈꾼다. 뚜렷이 하니 않은 그 무엇인가를 품은 현실과 높은 이상이 차이가 느껴진다.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그녀 또한 알 수가 없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고 모든 일은 서툴기만 하다. 고립된 섬에서 문명을 접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 섬을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고 사색하는 것, 막연하지만 도시를 동경하는 것이다. TV도 없고 신문도 들오지 않고 책도 귀한 물건이라서 문명은 언제나 높은 절벽이었다. 라디오가 세상을 소통하는 유일한 매체였다. 자아의 눈을 뜬 소녀에게 섬마을은 이제 더 이상의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섬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외할머니와 언니가 살고있는, 육지에 입성했다. 미래의 알 수 없는 꿈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것 외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지루한 나날이었다. 수많은 고뇌를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러나 신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무지한 그녀의 무모한 상경, 도시를 찾아온 용기에 선물이었을까. 코엘료의 장편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산티아고는 부모 품을 벗어나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떠난다.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 하던 양치기 소년에게 늘 협조자를 보내 주듯이, 그녀에게도 보호자를 보내 주신 것일까, 험한 세상에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더 이상 막연히 떠돌지 말고 안주하라는 의미였을까 산티아고가 운명의 파티마를 만난 것처럼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고단한 삶도 행복이라는 꽃은 피우며 살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소중한 꽃이었다. 그들을 살피며 병이 들지는 않은지 호기심에 어둠을 길에 들어서지는 않는지 폭풍을 만나지는 않는지 늘 노심초사하였다. 그렇게 키워낸 꽃들이다. 어느덧 아이들도 스스로 세상에 나아가 직접 경험하고 부딪쳐볼 만큼 키워졌다. 그녀는 둥지에서 성장한 아이들을 세상으로 날려 보냈다.

   빈둥지 증후군을 심하게 앓았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아 보자, 심연에 있는 섬 처녀의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인연 중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 설렘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분명 그녀가 찾던 것이다.

그때 지인 추천으로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 참가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특별한 사람만 참가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한번 도전해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해 보지 않으면 영원히활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극복이, 안되는 것이 있다. 대중앞에 서는 것이다. 수줍음이 많아서 노래 한 곡도 자신 있게 부르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가슴은 두근두근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고 목소리는 기어들어 간다. 이제라도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어 보고 싶었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시니어 모델 도전이었다. 이것을 해내면 울렁증까지 극복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 결심하고 나니 반을 해낸 듯했다. 신청 접수하고 드레스와 한복 코드 심사를 위해 맞는 의상을 고른다. 너머지 액세서리 굽 높은 신발 등 필요한 것을 준비한다. 무엇을 도전하려면 돈과 시간과 발품 수고가 필수이다.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대에 올라가서 해야 할 인사말이다.

   초겨울 어는 날 롯데 첫 번째 버킷리스트 팡파르가 울렸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무대 리허설, 처음 신어보는 굽 높은 구두의 피로감, 화장과 머리 손질, 점심 식사는 주체 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전국에서 도전한 용기 있는 여인들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이런 도전을 했을까. 무대 뒤에 다채로운 모습을 경험하는 좋은 시간이다.

   드디어 무게감 있고 노련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긴장되는 입장 소개 멘트다. “참가번호 10, 골프를 즐기고 수영, 독서가 취미인 최금숙 씨를 무대로 모십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준비한 대로 넓은 무대를 워킹한다. 중앙무대로 쭈욱 간다. 그곳에서 멈춰서서 인사를 한다. 화려한 라이트는 오직 그녀를 향하여 비춘다. 방송 록화 카메라도 눈이 부시도록 주시한다. 무대 아래쪽에는 심사위원과 초청 손님과 관객으로 넓은 공간은 자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숨이 멎을 것 같다. ‘이것이 너 안에 있던 꿈 중의 하나라면 너는 지금 이루고 있는거야.’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다. 넌 잘할 수 있어,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다시 한번 호흡을 깊게 하고 침을 삼킨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참가번호 10, 입니다.” 떨림은 여기까지였다.

   입상과 함께 첫 버킷리스트는 끝났다. 우리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하찮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간절히 이루고 싶다면 용기를 재서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새로운 도전으로 소박한 성취를 이루며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을까, 오늘도 그녀는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찾아 내면의 섬 처녀와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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