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땅의 기운을 뿜어 올려 생명의 환희를 돋워낸다. 굳건한 뿌리로 대지를 품어 생명체들이 살아갈 터전으로 묵묵히 사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온갖 것을 따뜻이 순화시키는 나무들이 수도자나 성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동나무는 세월을 가늠하는 나무다. 늦가을 이맘때면 커다란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예스러운 감성에 젖어 든다. 옆으로 뻗은 부드러운 잎사귀가 하늘을 향해 너울거림은 어느새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직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집 주변에 대부분이 나무를 심었다. 물오름이 좋고 잎이 아주 넓어 따가운 햇볕을 가리는데 그만이다. 거기다 가지가 성글어서 겨울에는 방 안쪽까지 볕이 들어오면 집안이 훤하고 따뜻하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오동잎에 듣는 빗소리가 얼마나 상쾌하던지, 대청마루에 등을 깔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정취가 아닌가. 새소리를 듣고 싶으면 새장을 사지 말고 나무를 심으라던 선인들의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조상들은 이 나무를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해 왔다. 목재 중에 가장 가볍고 탄성이 좋아서 울림을 이용해 가야금, 거문고, 비파, 장구 같은 악기를 만들었다. 그 독보적인 소리는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멋스러운 국악으로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이다. 물방울을 튕기듯 투명한 음색은 마치 애조 띤 파란 가을 하늘을 닮았다. 이처럼 맑은 음이 절묘하게 잘 어울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나뭇결이 곧고 갈라지거나 뒤틀림이 없으니 가구 제작, 귀중품 보관함, 고급 포장지로 쓰였다. 또한 달의 혼례용품인 장롱과 문갑, 목침은 물론이고 습기에 강하고 단단하여 훗날 장례를 치를 때 관을 짜서 사용하기도 했었다.
용도와 쓰임도 다채롭다. 통증, 위산, 구내염, 소화불량 등 위를 건강하게 하고 기를 순화시키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맛은 쓰고 차갑다. 풍을 제거하고 수분 배출과 독을 풀어주며 화상 치료에 효과가 있는 꽃잎은, 말려서 가루를 내어 환부에 바르면 새살이 돋아 잘 아문다. 씨앗은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껍질은 관절염, 디스크 요통에, 뿌리는 뼈와 타박상에 효과가 탁월하다. 그리고 입술에 생긴 염증을 가라앉게 한다. 이같이 이로움이 많으니, 우리와 더욱 밀접하게 생활하지 않았나 싶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도 이 나무가 그려져 있다. 김득신이 그린 〈출문간월도(出文看月圖)〉를 보면 사립문 앞 오동나무 아래서 개가 달을 보고 짖는 흥미로운 그림이다. ‘개 한 마리가 짖으니 온 동내 개들이 따라 짓네, 아이 불러 문밖에 나가 살피라 했더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있네’라고 즐겁게 표현하고 있다. 한용운 시[알 수 없어요] 에서도 ‘수직의 파문을 일으키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라며 시어로 표현했다.
앙증스러운 종을 닮은 꽃도 참으로 어여쁘다. 땅에 흩뿌려진 은은한 보라색 꽃잎은 포근한 꽃이불을 펼쳐놓은 듯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향은 약간 톡 쏘는 듯 알싸하다. 화관을 얹은 자태는 고아한 품위마저 느껴진다. 그윽한 눈매와 신비스러운 보랏빛 색, 이끼가 돋아난 기와지붕과 나뭇잎 그림자가 드리워진 풍경은 고풍스런 고가가 연상된다. 지중해 연안의 마로니에 가로수가 그토록 아름답다지만, 길운의 상징 봉황이 깃든다는 참 오동에 비하겠는가.
요즘 나무을 볼 때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올곧은 몸체와 표정은 제각각 다르다. 언제나 곧은 자세로 제 자리를 지켜낸다. 소나무에는 지사(志士)의 충절과 기개, 느티나무는 인자(仁者)의 덕성이, 세죽은 여인의 기품과 정한, 오죽은 문사의 재기가 번득이며 모과나무는 서민의 애환이 서린다. 짙은 초록으로 선비의 굳은 지조와 고고함이 서리는 대나무, 고혹적인 향을 품은 선각자의 고독이 향기로 머무는 매화, 화사한 배롱나무에 핀 분홍 꽃잎에는 소녀의 애틋한 기도가 맺힌다. 이같이 아름답지, 않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마음에 와닿는 나무를 고르라면 오동나무와 배롱나무다. 이 나무들은 회화적이며 고결함과 절제를 지녔기 때문이다.
서리가 내린 어느 날 아침, 마당 가득 스산한 갈바람에 날리는 잎들은 우수마져 자아낸다. 작은 잎보다 큰 나뭇잎이 지는 모습은 더욱 비애감에 젖게 한다. 사각대는 바람결에 한 잎씩 차례로 떨어질 때면 마음 한편이 텅 빈 듯 한없이 공허함이 몰려온다. 가냘픈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빈 뜨락에 투욱 하고 지는 소리는 허무한 관 위에 망자를 위해 흙을 뿌리는 소리만큼이나 처연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화려한 꽃을 감상하려고 가구는 이도 후드득거리며 내리는 빗소리를 듣기 위해 오동나무를 심은 이들 모두 가을이 되면 허전해진다. 아마도 그만큼 오동잎 지는 소리가 쓸쓸하기 때문이라라.
그 어떤 나무보다 오동나무는 때를 알리는 상징적인 나무다. 이같이 너그러운 풍모로 제때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치에 맞게 산다는 의미가 아닌가. 시기, 험담으로 인하여 온갖 아픔의 상처마저도 굴하지 않는 나무이고 싶다. 세상 살아가기를 의연한 나무처럼 되고픈 꿈을 꾸어본다. 우리의 일상이 나무를 닮아간다면 자신의 미래는 희망으로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끔 산길과 정원을 걷다가 무심히 바라본 나무 곁에서 절제와 인내하는 법을 배운다. 나무 곁에 다가가 가만히 등을 기대니 편안하다. 여태 숨 가쁜 순간의 날들이 그저 허망하고 무상할 뿐이다. 더 원하고 바라던 것, 더 많이 갖고 누리고자 하는 소유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라라. 하늘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은 비어있음의 일부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온갖 상념들이 신선한 울림으로 나를 깨우친다.
벌써 가을도 반이나 지났다. 내가 오동잎 지는 소리를 들은 지가 언제였던가. 아주 오래전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가을밤 짙푸른 달빛에 오동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풍경이 지금도 내 눈앞에 아른아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