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달라스 중앙 연합감리교회 이성철 목사

작성자맑은소리|작성시간02.10.25|조회수335 목록 댓글 0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요5:17-20)

이성철 목사

8-25-2002

들어가는 말

인간은 누구나 다 열등감들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데, 저에게도 몇 가지 열등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저의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던 열등감 하나는 이름 때문에 얻게 되었습니다. <성>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에 14가지의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 이름의 성이란 단어는 거룩할 성자입니다. 성경 또는 성인을 말할 때 사용되는 성자입니다. 철자는 밝을 철자입니다. 어떤 이치나 일에 대하여 밝히 안다는 말입니다. 즉 제 이름의 의미는 거룩하고 명철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이름과 정반대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 앞에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청결이라는 뜻의 이름대로 살지 못했던 삭개오의 고뇌를 저는 쉽게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 다스려 진 것은 아니지만, 10년 전 만해도 저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쓰레기들과 같은 마음들 즉 미움, 질투, 세상자랑, 물질 욕심, 명예욕, 부정적이고 추한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자신의 모습이 발견될 때마다 저는 이름 값도 못하는 사람 그것도 목사라는 사실 앞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저는 명철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명철하지 못합니다. 저는 입학시험이란 시험은 다 치루었는데, 딱 두 번 유치원 입학시험과 목사고시를 빼고는 매번 낙방했습니다. 중학교 입학시험 낙방, 고등하고 입학시험낙방, 대학교 입학시험 두 번 낙방, 저는 낙방에 은사가 있었으면 있었지 명철의 은사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름이 불러지든지 제 이름을 생각하게 될 때면 그렇게 제 이름이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이름이 너무 좋으면 그 이름에 눌려서 인생이 피어나지 못한다>라고 던진 한마디 말이 진리의 말처럼 제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저는 목사안수를 10년만에 받았습니다. 3년이면 받을 수 있었던 안수가 늦어질수록 저는 무거운 이름때문이라는 비신앙적인 생각이 저의 마음에 맴돌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10년 전 기도원에서 90이 넘으신 목사님을 뜻밖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름 있는 은퇴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아름다운 축시를 쓰시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그 분의 축시를 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언짢은 마음으로 이성철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께서 갑자기 반색을 하시면서 "목사님은 태어날 때부터 목사하도록 태어났구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름이 목사하라는 이름입니다"라고 말하시면서 붓을 들어서 제 이름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축시를 지어주셨습니다. <이> 이화만개- 가는 곳마다 꽃을 피우고 <성> 성지전파-땅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철> 철리위인 -많은 사람들을 깨우쳐서 <세세귀영> -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저는 이 축시를 받아드는 순간 그렇게 강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저를 억누르고 있었던 거대한 바윗덩이가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통하여 저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축시가 적힌 종이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동안 부정적인 자화상으로 채워져 있던 제 마음을 조금씩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귀한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과 하나님께 처음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이 조그마한 사건은 저의 목회를 좀더 건강하고 밝은 목회가 되도록 서서히 바꾸어 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인생은 수많은 만남을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 사건과의 만남, 일과의 만남, 어떤 상황과의 만남들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복된 만남은 복된 인생을 불행한 만남은 불행한 인생을 경험하게 합니다. 진실로 우리의 삶 속에 만남이란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만남을 지속하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만남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에 아름답고 복된 만남들을 허락하시기를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

오늘 본문은 우리의 만남의 대상가운데 가장 귀하고 가장 우선적인 만남의 대상을 소개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셨다><나도 일한다><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나는 아버지께서 이미 행하고 계신 일을 주시하여 보고 행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아버지께서는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다 보이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도 적용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만큼은 이해할 수 있고 확신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우리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주시하여 보며 행동해야 한다><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친히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위의 말들을 더 간단히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행할 일들을 친히 명령하시고 가르쳐 주신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직도 어설프고 연약한 것은 이 진리를 무시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평화와 기쁨과 감사와 승리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 진리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단계부터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는 승리보다는 패배가 더 많이 차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만나야할 제 일의 대상은 좋은 사람도 아니요, 복된 사건도 아니요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지금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제일의 과업입니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사귐을 갖는 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지속적인 사귐을 갖는 다는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여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을 현실 속에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하여 날마다 조금씩 더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사귐과 그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함은 우리의 삶을 참으로 강건케 하고 부요케 하는 영적인 길이요 세상에는 드려나지 않은 복된 비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만 만족하고 맙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밑에 머물러 있기만을 원합니다. 물론 구원의 사건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항상 우리의 가슴에 지속적으로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에 힘을 입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도 없습니다. 오랜 기간의 사귐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무한히 풍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 가운데서 가장 뜨겁게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은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들과의 사귐의 이야기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하고 믿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하기를 더 갈망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또렷이 들었고,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손을 사람의 손처럼 붙잡고 걸었고, 하나님과 평생을 함께 씨름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그 친구들과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들의 목자였듯이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처럼 뜨겁게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의 원천으로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그리고 자신의 삶의 보호자시요 인도자로 뜨겁게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경험한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1>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뜨거운 믿음의 열정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다음부터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앞에 불꽃처럼 타올랐습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사자굴도 불못도 두렵지 않았고 뜨겁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열정이 너무나 강열하고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매질도 이웃의 배반도 그리고 죽음의 공포까지도 사도 바울의 입을 막지 못했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그의 믿음의 열정이 거대한 활화산처럼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이 땅의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위대하고 거룩한 생각들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별하게 되고, 어린아이의 일과 장성한자의 일을 분별하게 되고, 찰라적인 일과 영원한 일을 구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일들을 꿈꾸게 됩니다. 철없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가슴에 품고 위대한 순교의 길을 가게 된 이유가 다락방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3>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 만족과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는 만족이나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참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다윗이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4>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 뜨겁게 경험하기를 갈망했습니다.


엄마의 따뜻하고 포근한 가슴의 맛을 알고 난 어린아이는 자꾸만 엄마의 품을 파고들듯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자꾸만 하나님을 더 경험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찾고 찾았던 이유도, 사무엘이 기도하지 않음을 죄로 여길 정도로 열심히 기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맺는 말

저는 국민학교 1학년 때 축구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학교 주변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운동장에 다시 모여서 할 줄도 모르는 축구를 한답시고 공을 차고 다니기보다는 공을 좇아 다니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편을 짜서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면 항상 중간에 끼여드는 유치원 선생님이 한 분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축구도 무척이나 좋아하셨지만 그 유치원 졸업생인 저를 유독 귀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 있는 팀을 돕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 쪽에서 제일 잘 뛰는 녀석을 상대 쪽으로 보내고, 그 선생임은 우리들을 위해서 열심히 뛰셨습니다. 당연히 우리들은 사기나 솟아났고 상대 쪽은 기가 죽고 맙니다. 선생님이 지키는 골문에 누가 골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이 공을 몰고 가는데 누구 감히 가로막겠습니까? 아무리 잘해도 이제 국민학교 1학년이니 누가 감히 선생님의 실력을 저지하겠습니까? 우리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은 그 선생님의 눈부신 활약으로 항상 넉넉히 이기곤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법칙도 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일하시면 그 누가 이를 막겠습니까? 모든 문제에는 분명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극복한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안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과 모든 고난을 극복한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다음과 같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인간의 힘으로서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산과 같은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을 도우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네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사귐을 통해서 하나님을 때마다 일마다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들은 삶은 진실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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