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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스크랩] [여행][강릉/초당] 붉은연꽃 스물일곱송이가 지다. 허난설헌(許蘭雪軒)

작성자길손旅客|작성시간11.12.14|조회수114 목록 댓글 0

조선의 여인으로 한스런 삶을 살아간 천재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3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475-3  /  033-640-4114

 

난설헌의 세가지의 한(悍),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

그리고,

왜 김성립의 아내였는가 이다.

앞의 둘은 시대적인 상황을,

후자는 현실을 직시한 한(悍)이되었다.

철저히 버림받은 시대, 천재시인으로 살다간 그녀를 기린다. 

 

 

 

 

어린시절부터 재주와 학식이 풍부했던 난설헌,

화담 서경적에게서 익힌 당나라의 자유분방한 시를 배웠으며, 작은 오빠 하곡과 천재적인 시인이면서도 서얼이라는 신분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던 하곡의 친구, 손곡에게서 글을 배웠다. 손곡은 양반의 아들이었지만, 미천한 기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 세상에 쓰이질 못했다. 글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시를 짓는 솜씨 또한 뛰어 나 한리학관이 되었으나 더 이상 오를수 없는 직관이기에 자리를 던지고 세상을 한탄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송나라 소동파의 시를 배웠으며, 박순에게서 당나라의 시를 접한후에는 자유분방한 시를 지어 냄으로 고북 최경창, 옥봉 배광훈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다. 

작은 오빠인 하곡도 당나라의 시를 주로 접하였으니 스승격이었던 오빠를 따라 난설헌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를 배우게 된다. 이는 동생 허균도 마찬가지인지라, 훗날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결국 손곡이었음을 알게 되는 대목이다.  

 

타고난 시인의 기질을 가졌으나 그에 그치지 않았던 난설헌,

글을 잃고 시를 지었으며, 다시 글을 잃고 문장을 쌓았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제 주위의 책은 모조리 잃어 내려갔다. 자유스러운 분방함, 사회적 제도에 대한 반항이 그녀를 그려 내었으며, 그녀 스스로 신선이 되었고, 글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유독 '신선'과 '꿈'에 대한 내용이 많은 이유다.

 

그러나, 글과시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처자라 할지라도 당시 여인들이 피할수 없는 것이 시집이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작은 오빠의 하곡의 친구인 김첨의 자제로 둘은 같은 호당에 드나들며 친분을 쌓았으며 문과에 급제하였으니 아마도 혼담이 오갔을 것이다. 그리 난설헌의 나이 15세때에 김성립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대의 결혼이란것이 어떠한가, 생면부지의 남자임은 물론이고, 집안이 정해준 인물이 아니던가, 이미 이때부터 난설헌의 운명은 불운한 운명이었음을 점쳤을 것이다.

 

그녀가 품은 세가지의 한 중, 세번째가

'왜 수많은 남자가운데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이다. 결국 난설헌은 김성립과 혼인을 한 이후부터 짙은 먹구름이 가로막는 길을 걸었으며, 세대를 거스를 수 없는 담담한 운명속에 버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난설헌에 관한 이야기들중의 대부분은 남편인 김성립에 대해 방탕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그도 그럴것이 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며 밖으로만 돌며 난설헌을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장본인기 때문일것이다.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

1570년경, 난설헌이 8살때 지어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상량문이다.

이 내용속에 스스로 선녀이었으며, 이세상에 귀양을 왔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 자신이 쉴 집을 짓기 시작하는데, 그 대들보에 올릴 축복의 내용으로,

죽어 마침내 하늘로 돌아갈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듯 지어졌다.

 

그러나, 김성립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안동김씨의 가문은 그야 말로 양반가로 5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한 문벌가문이다. 그러나 그중 김성립만이 과거에 계속 낙장하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자신 보다 더 똑똑하며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마음은 어떠 했을까? 좋게 생각하여 마음 붙이고 살았다면 처음부터 그럴 일이 없었겠으나 김성립 스스로의 과거 낙방에 대한 죄책감에 가문의 수치스러움이라 생각하고 있는 터, 스스로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더욱 힘들었을 나날이었을것이란 뜻이다. 흔히들 속 좁은 인간이라는 말이을 하지만 당 시대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기보다 너무도 뛰어난 난설헌에 대한 비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자존심을 그리 쉽게 허물어 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도 김성립은 난설헌이 죽고 난 이후에야 병과로 급제한 것을 본다면 그 자신 스스로의 마음도 자유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탐탁하지 않았으니 고부간의 갈등은 그 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성립의 어머니 송씨는 당대 경학으로 이름난 이조판서 송기수의 딸로 여느 아녀자보다 더 깐깐한 성격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눈에 아들보다 더 잘난 며느리로 인하여 밖으로만 돌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난설헌이 그리 탑탐치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상황이라면 환영받고 좋아할 일이겠지만, 작금의 시대 상황은 여자 스스로도 스스로를 낮추는것이 예의 라고 배운 시절이 아니었겠는가, 이처럼 난설헌에게 결혼 생활은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어린 딸과 어린 아들을 연이어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잃는 처절한 슬픔이 있었으며,

아버지의 죽음과 스승이자 오빠인 작은 오빠의 죽음을 접하면서 더 이상의 삶을 헤쳐 나아가지 못했던 삶, 그것이 난설헌의 삶이었다. 조선조 봉건사회의 폐쇄성에서 자신의 재주를 펼칠 수 없던 시대, 결혼과 동시에 모든것을 잃게 되는 비운, 난설헌은 스스로의 끝을 알게 된다. 39수의 해(3,9수 : 3×9=27), 제 나이 27곱 되는 해 생명이 다할것이라 예견하는 시를 짓고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마쳤다.

 

유난히 누이를 따르던 동생 허균은 누이의 재능을 나깝게 여기고 기억을 더듬어 누이의 시를 되살렸으며,

친정에 있던 몇편의 시를 엮어 내었다. 이를 중국에서 온 사신이자 시인 주지번에게 건네게 된다. 시 210수와 부 1편, 산문 2편으로 주지번은 이 시집에 서문을 쓰면서 "그녀는 봉래섬을 떠나 인간세계로 우연히 귀양을 온 소녀다. 그리하여 그녀가 지은 시들은 모두 아름다운 구슬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조선의 여인으로 살다간 여인,

제 이름과 자신의 호를 모두 남긴 여성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이자, 대우 받지 못하는 아내와 며느리였다. 스스로의 죽음앞에 평생 쓴 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린 여인, 허난설헌. 

시대의 슬픔이자,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천재시인의 한(悍), 

길손은 그녀를 그러한 모습으로 만났다. 바람 찬 오늘, 난설헌의 생가 사랑방에서 고운 볕 받으며 따스한 차를 한잔 들고 싶다.  

   

 

 

 

 

 

 

 

 

 

 

 

허난설헌생가의 사랑방은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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