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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은혼 진선조 동란편 관련 부연 설명

작성자S::은빛영혼|작성시간09.04.26|조회수435 목록 댓글 6

 

 

이토 카시타로(伊東甲子太郎)(1835-1867)

[은혼 : 伊東鴨太郎 (이토 카모타로)]

  신선조 참모. 문학사범. 후에 어릉위사(御陵衛士) 맹주(盟主).

휘는 다케아키(武明). 정식 이름은 호즈미노 다케아키(穗積武明)





출신(出自)

  원래 이름은 스즈키 오오쿠라(鈴木大藏). 히타치(常陸) · 시즈키(志筑藩)번 출생. 탈번(脫藩)하여 미토(水戶)로 나가, 카네코 켄시로(金子健四郞-후지타 토코(藤田東湖)의 천거로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에게 기용된 인물)의 도장에 입문.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검술과 미토학(水戶學)을 배워, 근왕사상(勤王思想)에 심취했다.

도장(道場)

  그 후 에도로 나와, 후카가와 사가마을(深川佐賀町)의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검술 이토(伊東) 도장에 입문. 문무 모두에 능한 인물이었던 스즈키 오오쿠라(鈴木大藏)는, 도장주(主)였던 이토 세이치(伊東精一)에게 인정받게 되어 그 후계자가 되어, 이토 성(姓)을 따라 이토 오오쿠라(伊東大藏)로 칭하였다. 후카가와의 도장은 번성하여 문하생도 많았다고 한다.

신선조(新選組)

  元治 원년(1864년) 10월, 동문이었던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의 소개로 신선조에 입대. 같은 해 11월, 동생인 스즈키 미키사부로(鈴木三樹三郞), 동료 시노하라 타이노신(篠原泰之進), 카노 와시오(加納鷲雄), 핫토리 다케오(服部武雄), 제자 우츠미 지로(內海二郞), 나카니시 노보루(中西昇)등과 함께 쿄토로 상경.
상경한 해가 갑자년(甲子)이었기 때문에, 이토 카시타로(伊東甲子太郞)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선조에서는, 문무 모두에 뛰어나고, 이토도장(伊東道場) 도장주(主)라는 점을 들어, 참모 겸 문학사범에 발탁되었다. 콘도 이사미(近藤勇)는 처음에는 환영하였지만,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歲三)는 그 못지않은 책사(策士)라 보고 경계하였다고 한다. 야마나미 케이스케(山南敬助)가 할복하여 죽자 이토는 5수의 와카(和歌)를 남겼다.
  이토의 언변은 교묘하여 사람을 납득시키는 것이 뛰었났다고 한다.
이토와 신선조는 양이(攘夷)라는 점으로 맺어졌지만, 신선조는 막부파로, 근왕(勤王-타도 막부)을 하려고 한 이토와는 방침을 둘러싸고 은밀히 대립.

어릉위사(御陵衛士)

  慶應 3년(1867년) 3월 20일, 사츠마(薩摩)의 동향을 살핀다는 명목으로, 코메이 천황(孝明天皇)으로부터 어릉 경비임무가 내려져, 신선조를 이탈. 어릉위사를 새로이 결성. 신선조 결맹 이래의 대원들로 팔번대 조장인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도 어릉위사에 참가한다.
그 후, 신선조 내에서 입지가 계속 실추하고 있던 타케다 칸류사이(武田觀柳齊) 등은 어릉위사에 참가하려고 하였으나, 이토는 거절했다.
 
이토는, 삿쵸(薩長-사츠마薩摩와 쵸슈長州) 등의 타도(打倒) 막부파에 접근하기 위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죽인 범인이 신선조의 하라다 사노스케(原田左之助)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아직 신선조를 막 탈퇴한 이토는, 이 정보를 가지고도 타도 막부파에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콘도 이사미(近藤勇)의 암살을 꾀하여 신선조와는 연을 끊었음을 증명하려고 하였으나, 어릉위사에 참가하고 있던 사이토 하지메(齊藤一)가 신선조의 첩자였기 때문에, 이토의 계획은 바로 콘도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토는 대화를 매우 신중히 하였기 때문에, 콘도를 암살하려한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고 했었다는 說도 있다. 또 사이토가 내통자였다는 것에도 이견이 있음)
  慶應 3년 (1867년) 11월 18일, 콘도는 자신의 소실 집(妾宅)으로 이토를 불러내 술에 취하게 한 뒤, 귀가 도중인 아부라노코지(油小路)에서 신선조의 오오이시 쿠와지로(大石鍬次郞)에게 암살시켰다(아부라노코지 사건). ‘이 간사한 놈들!’ 이라고 외치며 쓰러졌다고 한다. 향년 33세. 술에 취하게 하고 어두운 곳에서 베는 신중한 암살방법을 취한 것은,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검술의 도장주였던 카시타로의 검 실력을, 콘도나 히지카타가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토의 유체는 아부라노코지에 방치되어, 어릉위사들이 수습하기 위해 왔을 때, 매복하고 있던 신선조와 칼을 겨누게 되어 토도(藤堂) 등이 사망했다. 그 후 유체는 얼마간 방치되어, 신선조에 의해 코엔사(光緣寺)에 매장되었다.

 

 


출처 : toro0525님 네이버 블로그

->ドクロ兵長의 자막 작업실  http://sgdk.wo.tc/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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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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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이스바 | 작성시간 09.04.26 부연설명 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몇몇 아는이름이~
  • 작성자silver | 작성시간 09.04.26 아는 이름들이 쑹쑹~
  • 작성자팥맛딸기우유 | 작성시간 09.04.26 은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역사 공부도 함께 하고 있는거 같은 이 기분...흐흐
  • 작성자자주국방만세 | 작성시간 09.04.28 그러고보면 이제 나올일은 보신전쟁인건가 쩝
  • 작성자도마뱀국장 | 작성시간 09.04.29 와오... 장난아니네여..! 역시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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