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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방

[스크랩] 사탄이 주는 마음을 이겨내며 살아요 = 누가복음12;13-15(260607)

작성자조약돌|작성시간26.06.08|조회수2 목록 댓글 0

 

PW : 믿음           BIW : 탐심을 버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사탄이 주는 마음을 이기며 사는 것이다.

 

 

천사와 악마의 차이

 

어떤 사람이 안경을 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왜 안경을 쓰셨나요?”

그러자 한 사람은 눈이 나쁘니까 썼죠!”라고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 잘 보려고요.”라고 노래하듯이 대답합니다.

똑같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썼지만 자신이 쓴 안경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은 차이가 큽니다.

긍정적인 말의 힘이라는 책을 쓴 할 어반이라는 사람은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명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한 명은 늘 이거 안 되면 어떡하지?”라고 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즐겨 합니다.

하지만, 다른 청년은 이거...잘 되면 이것으로 행복하게 살거야!”라고 긍정적인 말을 즐겨합니다.

툭툭 튀어나오는 한마디에 이미 천사 같은 결과와 악마 같은 결과가 다르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똑같이 흙탕물에 넘어져도 더러운 진흙탕만을 보면서 불평해야 할까요?

아니면 일어서면서 호주머니에 미꾸라지, 붕어, 메기를 가득 채워야 할까요?

밝음과 어둠을 다 볼 줄 아는 것은 지식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밝음을 입에 올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지혜의 영역입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의 마음, 행복의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악마, 사탄, 마귀의 말에는 입술에 재갈을 물리고, 믿음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용기와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말에는 입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려고 노력하면 가능해집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인류 최초의 죄악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들어주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시킨 선악과를 따먹는 죄악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으로 기록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선포하신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물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하는 뱀의 입을 사용한 사단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하면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하와는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탐욕, 탐심이 발동한다.

이런 마음이 들자마자 선악과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금지시킨 선악과로만 보였는데, 사탄이 주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는 그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이에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 신랑에게도 따주어서 먹도록 한다.

결국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탐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절대 금지시킨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인류의 죄악이 들어왔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각각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데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해 주셨지만, 가인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해 주시지 않는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해 주시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열납해 주시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오르는 원망으로 동생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사건이 되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죄악과 살인사건은 바로 탐욕, 탐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탐욕, 탐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게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서는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게 만든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과 국가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죄는 바로 탐욕, 탐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는 야고보서1:14-15에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정의를 내리고 계신다.

죄악을 낳고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욕심, 탐욕, 탐심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만큼 욕심, 탐욕, 탐심은 인류의 적이요 신앙인의 적이란 개념으로 등장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하여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하여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는 말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라는 말씀일까?

 

D4.

 

예수님께 몰려든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라고 응대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무리들을 향하여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부모의 재산을 분할하여 상속하는 규례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해주신 말씀은 없다.

단지 신명기21:17의 말씀에서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기록하신다.

신명기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여러 부인이 있고, 여러 부인들 중에는 좋아하는 부인도 있을 수 있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부인도 있을 수 있다.

만약에 좋아하는 부인이 낳은 아들이 첫째 아들, 장남이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워하고 싫어하는 부인이 낳은 아들이 첫째 아들, 장남이 되고 좋아하는 부인이 낳은 아들이 둘째나 셋째가 되었을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평범한 말에 의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 낳은 자식에게 하나를 주어도 더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부인이 낳은 아들에게 좀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처음부터 왕위를 자신의 첫째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면 1,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가 첫째 부인인 한씨의 아들이 아닌 둘째 부인인 강씨의 아들,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니까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그 난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형제들끼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여인이 낳은 장자가 진짜 장자이기 때문에 진짜 장자에게 다른 형제들의 두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상속해 주어야 한다고 규례를 정해주었다는 말씀이다.

사무엘상1장에 등장하는 엘가나와 브닌나와 한나의 경우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엘가나는 한나 여인을 브닌나 여인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브닌나는 이미 자녀를 출산하지만, 한나는 자녀를 출산하지 못한다.

한나는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지만, 브닌나는 자녀를 출산하였기 때문에 브닌나 여인이 낳은 아들이 엘가나의 장자의 신분이 되어 엘가나의 재산을 두 몫에 해당하는 분량을 상속받을 자격이 된다는 말씀이다.

한나는 나중에 사무엘을 비롯하여 많은 자녀를 낳았지만,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맞지만, 이미 장자의 신분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엘가나의 장자는 브닌나가 낳은 아들이 장자의 신분을 상속하는 것이다.

브닌나가 낳은 아들이 장자의 신분으로 엘가나의 재산을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어떤 재산상의 손해를 보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신명기21장에서 정해주신 규례대로 아버지의 재산분할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수님께 찾아와서 재산을 제대로 분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형님이 있었기 때문에 장자의 신분은 아니다.

장자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은 없다.

장자에게 두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분할해 주고 남은 것으로 다른 형제들이 똑같이 1/N형식으로 분할하여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식을 물리치라.”고 하시는 말씀을 잘 음미해 보면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산을 분할하여 상속을 받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욕심으로 발전하여 탐심이 되어 예수님께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분량의 재산을 상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앞서면서 예수님께 부탁하여 좀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탐심이 앞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사람이 가진 마음의 상태, 탐욕, 탐심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 사람은 자신의 욕심, 탐욕, 탐심을 채우려고 자신을 끌어들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오늘 처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나온 사람일까? 아니면 전에도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이적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들었던 사람일까?

아무래도 이 사람은 오늘 처음 예수님 앞으로 나온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사람은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이적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었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도 많이 들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미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이적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탁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이적이나 전하시는 말씀을 악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챙기려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면서 아주 착실한 신앙인인 척하면서 가면을 쓴 이들도 많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정치인들, 한 손님이라도 더 자신의 가계로 오도록 하려는 장사꾼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은 어느 어느 큰 교회에 다니고 무슨 무슨 직분자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선거를 위해서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장사를 위해서 교회를 다녀도 안 되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영원한 주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여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세계,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욕망, 탐심, 탐욕을 챙기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라면 교회를 잘 못 다니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우리 교회에 있다면 그 사람은 돈 낭비, 시간 낭비, 정열 낭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믿음도 없으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가면을 써야 하고, 외식을 해야 하니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말이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탐심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그 사람에게 해당하는 분량을 주시고 보내신다고 믿는 민족이다.

그 사람이 먹고 입고 살아갈 수 있는 땅과 음식과 의복의 분량을 이미 주시고 태어나게 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아들로 태어났건, 딸로 태어났건, 장자로 태어났건, 차자, 삼자, 사자로, 막내로 태어났건, 얼마든지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분량을 주시면서 태어나서 자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재산의 분량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재산의 분량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형편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분량에 감사하고 자족하면 더 이상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 가지려는 욕심이 없으면 탐욕, 탐심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욕심, 탐욕, 탐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해당하는 분량에 불만족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에 자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다른 것을 더 챙기고 가져와야지. 하는 탐욕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빌립보서4:11-13에서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물질이란 반드시 필요하고 굉장히 중요하다.

물질이 없으면, 재물이 없으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기에 너무나 힘들고 불편하다.

하지만 재물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물만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물이 없으면 다툼도 싸움도 전쟁도 이별도 미움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재물이 많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불행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재물로 인하여 다투고 분쟁하고 싸우고 전쟁하고 이별하여 갈라지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 형제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재산싸움으로 인하여 서로 원수지간이 되고, 고소 고발하고 재판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그 사람도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형제지간의 재산분할을 위해서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물질의 넉넉함, 풍족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돈 많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다고 건강한 것도 아니다.

돈 많다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다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 것도 아니다.

돈 없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돈 없다고 건강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돈 없다고 신앙생활 못하는 것도 아니고, 돈 없다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게 하시는 영생, 생명, 하늘의 상급, 행복, 기쁨과 소망, 꿈과 비전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잠언30:7-9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8:18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학개서2:8에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은이나 금이란 돈은 본래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래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과 모든 신앙인들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좀 더 잘 되려고 하는 욕구와 탐심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인본주의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라는 학자는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욕구의 단계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매슬로우라는 학자가 말하는 인간의 5가지 욕구를 살펴보면

1단계 ;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이다. 음식, , 공기, 수면, 성적인 욕구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란 이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욕구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2단계 ; 안전의 욕구(Safety Needs)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안정과 안전을 추구하는 욕구이다.

가령 주거지, 직장 안정성, 건강 보험, 자연재해로부터의 보호와 같은 욕구이다.

 

3단계 ; 사랑과 소속의 사회적 욕구(Love and Belonging Needs)

사람이란 사회적인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애정, 소속감을 느끼려는 욕구를 가진다.

가족, 친구, 연인 관계, 사회적 지지 시스템과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4단계 ; 존경의 욕구(Esteem Needs)

인간이란 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받고 자존감 및 자아 존중감을 추구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성취감, 타인의 존경, 지위, 자랑스러운 직업에 관한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5단계 ; 자아 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

사람이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로 살아간다.

자신이 이루고 싶어하는 꿈과 소망, 비전을 통하여 예술적 표현과 창의성과 지적인 성취와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며 살고 싶어하는 욕구로 살아간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인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더 높은 상위의 욕구를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라고 인식한 것이다.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은 안전의 욕구를 생각할 수 없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에 신경 쓸 여유가 없고 존경의 욕구를 추구할 수 없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향해서 나아갈 수 없다.

 

오늘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탐심과 매슬로우가 말하는 욕구는 다른 것일까?

탐심이나 욕구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뿌리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 탐심에는 강한 정도의 탐심도 있을 수 있고, 중간 정도의 탐심도 있을 수 있고, 약한 탐심도 있을 수 있다는 늬앙스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말에 다르고,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중동지역의 문화에도 같은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느냐?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뱀이라는 동물을 보면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창세기3;1에서처럼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라고 기록하면서 뱀을 가장 간교한 동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태복음10;16에서 제자들을 전도 보내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전도하러 보내는 제자들을 향하여 뱀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뱀을 지혜로운 동물로 표현하는 것이다.

똑같은 뱀이라는 동물이지만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사탄이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간교한 동물이 되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지혜로운 동물이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탐심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가진 마음을 부정적으로 사탄이 사용하는 단어로 사용하면 탐심이 된다.
탐심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만들어내는 탐욕, 욕심이란 단어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풍족하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가령 꿈, 비전, 소망, 희망, 욕구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는 말씀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사탄이 사용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가진 마음의 상태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면 욕심, 탐심, 탐욕이라는 사탄이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죄를 만들어내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탐욕, 탐심, 욕심은 사탄이 주는 마음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꿈과 비전과 소망과 희망과 욕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다.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은 물리치라고 하시는 말씀은 인간이 탐심이나 탐욕이나 욕심에 빠지면 사탄이 주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L4 & B4

 

욕심, 탐욕, 탐심은 마귀, 사탄, 어둠의 세력들이 주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욕구, , 소망, 비전, 희망이라는 마음을 주신다.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더욱더 발전시키고 계발하고 성장하고 성숙시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사탄이 주는 마음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어떤 마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과 목적과 질과 영생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적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단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더욱더 개발하고 성장하고 성숙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사탄, 마귀, 어둠의 세력들이 가져다주는 탐심, 탐욕, 욕심은 어떤 마음이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내고 물리쳐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능력과 축복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물질을 이미 다 배분해 주셨다.

각자에게 합당한 분량을 공궤해 주셨다.

탐욕이나 탐심은 이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믿지 못하여 불신하고 의심하고 원망하면서 발생하는 마음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새벽이슬과 함께 필요한 만큼의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만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아도 감사, 적어도 감사하면서 매사에, 범사에,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탐욕, 탐심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된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연한 결단과 의지로 살아야 한다.

 

어떤 종류의 탐욕이 되었든, 탐심이 되었든, 욕심이 되었든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탄, 마귀, 어둠의 세력들이 주는 마음이기 때문에 적당하게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고, 반드시 물리쳐야만 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도록 미혹한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의 마음에 탐욕, 탐심이란 죄악의 마음을 넣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사탄이 주는 악한 탐심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믿음으로 반드시 이겨내리라 하는 결연한 결단과 의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탐욕, 탐심을 이겨내지 못하면 탐욕의 노예, 탐심의 노예, 사탄의 노예로 전락당하고 마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예수님의 사람답게, 신앙인답게, 주님의 일꾼답게 살아야 할 신앙인들이 신앙인의 옷은 그럴싸하게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탐욕의 노예가 되고, 탐심의 노예가 되고,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탐욕을 이겨내며 살리라는 강한 의지, 결연한 결단이 부족하면 사탄의 노예가 될 확률이 너무나 많다.

 

신앙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무장하여 악한 영들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사람으로, 하늘의 신령한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로, 예수그리스도의 증언자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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