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1. 혀로 인한 불씨(3: 1-12)
①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②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③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④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⑥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⑦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⑧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⑨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⑩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⑪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⑫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3: 1 -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성경을 가르치고 영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매우 귀한 일이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이 크고 그 벌이 무거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나 가르치는 일을 사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가르치는 직분을 사모하는 자는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과 건전하고 선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한다(Tasker, Burdick). 여기에서 '심판'(크리마)은 '재판을 통하여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Dibelius, Greeven, Robertson).
* 롬 13: 2 -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 히 9: 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계 20: 12,13 -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선생들이 받을 '더 큰 심판'은 단순히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책임'을 수반한 '은사'로서의 '선생'의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심판의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시사한다(Moo, Adamson).
* 눅 12: 47,48 -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고후 5: 10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벧전 1: 17 -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서 선생으로서의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Moo).
야고보 사도는 심판도 책임에 따라 더 큰 심판과 더 작은 심판이 있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더 큰 책임을 맡은 자들은 더 크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을 가르치는 지위에 있는 선생되는 자가 거짓 가르침을 전한다면 그는 성도들의 전체 그룹을 파괴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어떤 특권을 바라고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더 큰 심판의 위험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면서 그들의 잘못된 동기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가하고 있다.
2]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되지 말라'(메 기네스데)는 부정어 '메'와 '... 이 되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현재 중간태 명령법인 '기네스데'가 결합된 것으로 선택적인 권고의 성격이 아니라 금지를 요구하는 명령이다(Robertson, Burdick).
이러한 어휘들은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이 지위 향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선생'이라는 직임의 권위와 명성에 매료되어 영성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는 갈망이 공동체 전반에 편만했음을 추측하게 한다(Burdick, Moo).
더욱이 바울이 교회 직임에 대해 진술한 것을 살펴 볼 때, 당시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추측하기에 충분하다(Tasker, Moo, Mayor).
* 고전 12: 5-11 -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 엡 4: 11,12 -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3: 2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많이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다 실수가 많고 특히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인격의 온전함은 말의 온전함에서 증거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말, 덕스러운 말, 참되고 진실한 말만 하고 남에 대한 오해의 말이나 잘못된 비난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당히 성숙하고 온전한 인격일 것이다.
혀는 사람의 몸을 통제하며 말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자는 선한 말을 하며 악한 자는 악한 말을 한다.
예수께서는 그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 34-37).
1]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원문에는 본 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어서 많이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고 특히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수긍할 만한 말씀이다.
원문에 있는 '폴라'(많은, 많은 것에)라는 단어를 개역성경에서는 삽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Robertson, Martin, Moo, Dibelius-Greeven).
'폴라'의 의미에 대해 혹자는 죄의 '수량'(RSV)이나 죄의 '다양성'(NIV, 잠 10: 19), 또는 두 가지 모두 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Martin).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의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본문을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한다.' 혹은 '우리는 모두 많은 것에 실수를 범한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실수하다'(프타이오멘)는 유대 문헌이나 신약성경에서 영적인 실패, 즉 모든 죄의 행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2:10, Moo, Burdick).
* 벧후 1: 10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프타이오멘'의 인칭 어미인 '-오멘'은 1인칭 복수 주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야고보가 경고 받는 '선생들'의 부류에 자신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실수하는 '우리' 가운데도 역시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나타낸다(Robertson, Moo, Martin).
2]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본문의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은 '실수하다'라는 의미의 '프타이에이'와 '... 아니다'를 의미하는 '우'가 연결되어 말의 실수를 부정하고 있는 조건문으로서 어떤 사람이든 말에 실수가 없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을 암시한다(Martin).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조차 때때로 죄를 범하게 되는 죄의 보편성을 시사한다(Burdick).
1절에서의 선생들에 대한 경고가 2절에서 '말'에 대한 주의로 연결되어, 본 절의 '말'은 후속절의 초점이 되는 '혀'에 대한 이야기에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본문은 '만일 말로 범죄하지 않는 자면'을 의미한다(Burdick, Martin, Moo).
'온전한 사람'은 죄가 없거나 결백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이 아니라 잘 갖추어지고 성숙한 '온전함'을 나타낸다(1: 4, Martin).
야고보는 말로 행하는 범죄는 누구든지 쉽게 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통제하여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성숙되고 온전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더불어 언어생활을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세상에 완전한 자는 없다. 성경 역사에도 그렇다. 심지어 모범적이었던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흠과 실수와 부족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격자로 여김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인격의 온전함은 말에서 증거 된다. 여기에 혀의 중요성이 있다. 우리가 혀로 남에 대한 오해의 말이나 잘못된 비난의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른 말, 덕스러운 말만 한다면, 우리는 상당히 성숙한 인격자일 것이다.
온전한 말을 하는 혀는 그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온전한 말은 온전한 인격의 표현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셨다(마 12: 34-37).
3]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는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서 상이해 보이는 듯한 1절과 3절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Dibelius-Greeven).
'굴레 씌우리라'(칼리나고게사이)는 '재갈을 물리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 1: 26절에서 '혀'와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Robertson) 본문도 역시 다음절부터 전개될 혀에 관한 진술과 관련 하여 권면을 전개하려 한 듯하다.
사실상 본문은 1-12절까지의 내용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으로, 선생들에게서 시작된 경고를 전체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확대시키고 있다.
즉 야고보의 이러한 진술은 지도자들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Matin)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에 전반적인 적용을 의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Moo).
선생이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혀를 제어(制御)하여 말의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은 결국 온몸에 굴레를 씌워 죄짓는 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Burdick, Tasker).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사람에게 있어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 마 12: 34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온전함은 성숙함이다.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점차 성숙하여져서 마침내 주님의 온전함에 이르기 까지 힘써야 한다.
3: 3 -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야고보는 혀의 중요성을 말의 재갈이나 배의 키에 비교한다. 말은 힘이 센 동물이지만, 사람은 말의 입에 재갈 즉 쇠토막을 물려 자기 뜻대로 말들을 이끌고 사용한다.
헬라어 본문에서 본 절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에이 데'(만약, if, When)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이데'(보라)라고 주장한다(C P, Mayor, Ropes).
Ⓑ '에이 데'(만약)라고 주장한다(A, B, K, L, RV, NIV, Martin, Moo, Dibelius- Greeve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데'(보라)가 4,5절에서 등장하여 '이데'가 조화를 이룬다 할지라도 '이데'는 본서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 절의 재갈 예는 말(馬)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의 '입'에 물려진 재갈에 있음을 나타낸다. 즉 재갈이 말의 '입'에 채워짐으로 말이 통제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Moo). 야고보는 이렇게 해서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예화들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뤄간다.
3: 4 -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큰 배도 배 밑에 달려 있는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된다.본 절은 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이전에 그 예로 배와 키의 관계를 나타낸다(Moo,Tasker). 야고보는 작은 부분을 통해 커다란 몸체를 조종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Moo, Dibelius-Greeven) 배와 키의 관계를 제시한다.
큰 몸체가 '광풍에 밀려갈 때' 일지라도 사공은 자그마한 키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 야고보는 말과 재갈, 배와 키, 몸과 혀를 비교시켜서 혀가 작지만 혀를 제어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게 됨을 강조한다.
3: 5 -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또 야고보는 혀를 불에 비교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큰 것을 자랑하며 큰 일을 행한다.
잠언은 의인의 혀가 천은(天銀)과 같고(잠 10: 20) 지혜로운 자의 혀가 양약(良藥) 같다고 말하며(잠 12: 18), 또 확실한 증인의 말이 힘이 있다고 말한다(잠 21: 28).
1]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이와 같이'로 연결되는 것은 앞의 두 예화가 본 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뒷받침 해준다(Burdick, Mayor). 이것은 본 절이 3,4절의 예화를 완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tin).
재갈과 키가 그 자체의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말의 온 몸과 배의 진로를 좌우한다. 우리의 혀 역시 비록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역할은 매우 크다(Moo, Tasker).
헬라어 본문에는 '큰 것을 자랑하도다.'(메갈라 아우케이)로 되어있으나 다른 사본에는 '메갈라우케이'(자랑하다, 뽐내다)로 되어있어(P 20, k, L,)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mayor, Tasker).
'메갈라우케이'로 보게 될 경우 '자랑하는 혀'의 의미가 강조 되는 반면에 '메갈라 아우케이'로 이해할 경우 '큰 것을 자랑하다'라는 의미로 '작은 혀'와 '큰 역할'이 대조된다(boasts of great things, RVS, Tasker, Robertson).
'메갈라우케이'와 '메갈라 아우케이' 두 경우 중 후자의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예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 것'과 '큰 것'이 대조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비록 혀가 작을지라도 큰 역할을 하여 엄청난 힘, 곧 잠재된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Moo, Martin, Burdick).
2]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본문의 '어떻게 작은'과 '어떻게 많은'은 동일한 단어 '헬리콘'으로 한 단어가 두 상반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일종의 균형과 대칭의 효과를 내고 있다(Moo, Martin).
'나무'(휠렌)은 메마른 지중해 기후로 인한 불꽃에 의해서 쉽사리 재가 되어 버릴 수 있는 팔레스타인 언덕의 산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SV, Moo, Martin).
야고보 사도는 본 절에서 산림이 작은 불씨에 의해 파괴되어 버림을 예로 들어 혀의 잠재적인 파괴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Burdick).
이와 같이 사람의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하며 큰 일을 행한다.
* 잠 10: 20 -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 잠 12: 18 -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良藥) 같으니라.
* 잠 21: 28 -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