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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약 3 장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4)

작성자조약돌|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약 3 장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4)

 

 

3: 15 -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 곧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세상적이라는 표현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 16에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정욕적(프쉬키코스)은 육욕적이라는 말로서 육신의 죄악 된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따르는 것이라는 뜻이며 마귀적이라는 말은 귀신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이 있다.

 

 

1]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본 절은 앞 절에서 언급한 내용인 이기적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지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다(Burdick). 즉 그것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가 아니다(Martin, Moo).

 

* 잠 2: 6 -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지혜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닌다.

 

 

2] 땅 위의 것이요

 

이것은 하늘과 비교하여 부정적인 의미의 땅을 지칭하는 표현이다.(Moo, Martin)

 

* 고전 15: 40 -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 고후 5: 1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상의 제한된 사고와 견해로 평가하는 지혜를 나타낸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인침을 받은 일련의 모든 활동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Adamson, Martin).

 

* 고전 1: 20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 고전 2: 5,6 -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세상적'이라는 표현은 죄악 된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 요일 2: 16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적 지혜는 어떤 점에서는 성도의 지혜보다 더 나아 보인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다(눅 16: 8).

 

 

3] 정욕의 것이요

 

이에 해당하는 '프쉬키케'는 '영적'인 것과 비교되는 '육신적'인 것을 의미한다(Adamson, Martin, Moo).

 

* 고전 2: 14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고전 15: 44,46 -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 즉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특성 이다(Burdick).

 

'정욕적'(프쉬키코스)은 '육욕적'이라는 말로서 육신의 죄악 된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따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4] 귀신의 것이니

 

이것은 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하지만(잠 2: 6)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혀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소유하는 지혜는 마귀에 의해서 그 행동과 생각을 지배받고 선동됨을 나타낸다(Martin, Moo, Adamson).

 

'마귀적'(다이모니오데스)은 '귀신들 혹은 악령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3: 16 -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개역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절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거짓된 지혜의 특성을 정의한 것(15절)에 대한 근거임을 시사한다.

 

'요란'(아카타스타시아)는 '무질서함'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무정부 상태와 정치적인 소동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Robertson, Burdick).

 

* 고전 14: 33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악한'(파울론)은 요 5: 39의 '아가다'(선함)와 반대 개념으로 하나님과는 전혀 가까워질 수 없는 악한 행위를 나타낸다.

 

'시기'와 '다툼' 즉 이기적인 욕망과 열정 그리고 야망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생명과 사업을 파괴시키는 무질서와 악한 행위만 생산할 뿐이다(Burdick).

 

그러기에 그러한 것을 유발시키는 거짓된 지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다(15절).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 시기와 다툼이라는 마음의 악이 혼란과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들이라는 현실로 표현된다. 이것은 분명히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가 아니다.

 

 

3: 17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와 대조적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

 

그것은 죄악 된 일을 버리고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다.

 

둘째,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들과 비슷하다(갈 5:19-23).

 

셋째,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공정하고 진실하다. 신적 지혜는 의로움과 선함과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를 가르치는 책인데, 거기에서 말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1]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본 절은 앞서 언급된 거짓 지혜와 대조되는 참된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특성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지혜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적인 것이다.

 

 

2] 첫째 성결하고

 

이에 해당하는 '하그네'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기본적 특성으로 성적인 순결의 의미보다는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한다.

 

'거짓된 지혜'의 이기적인 동기와 대조를 이룬다(Robertson, Burdick).

 

 

3] 다음에 화평하고(에이레니케)

 

이는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 히 12: 11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Tasker).

 

 

4] 관용하고

 

이로 번역된 '에피에이케스'는 주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온유와 자비를 나타낸다.

 

 

5] 양순하며

 

이의 '유페이데스'는 '유'(잘, 좋게)와 '페이도마이(순종하다)의 합성어로 '잘 순종하는'이나 '유순한'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을 소유케 한다.

 

 

6]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관계를 갖는다.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주는 마음 자새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이다(2: 13). 이러한 긍휼을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 된다.(Martin, Burdick).

 

* 마 7: 17,18 -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하다.

 

* 출 23: 3 -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 레 19: 35,36 - 35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다시 말해, 신적 지혜의 특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의 삶을 가르치는 책이다.

 

* 잠 1: 2-6 -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거기에서 강조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 잠 1: 7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잠 2: 16 -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 잠 2: 20 -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 잠 3: 7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잠 8: 13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3: 18 -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본문은 '위로 난 지혜'에 대한 결론이다.

 

'의의 열매'(카르포스 디카이오쉬네스)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한다(Laws, Ropes).

 

'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Moo) '화평'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닌다(Tasker).

 

* 시 85: 10 -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 사 32: 17 -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이러한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으며 오직 화평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하고 닮은 자녀이기에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마 5: 9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결론적으로, 야고보서 3: 13-18의 내용은 두 종류의 지혜를 가르친다.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으로 표현되는 것은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이다.

 

그러나 그와 대조되는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우리는 세상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지혜를 구하여 가져야 하겠다. 참된 지혜의 내용은 성결과 의와 선과 진실이다.

 

* 잠 3: 13-18 -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우리는 참된 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구하여 얻음으로써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들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고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귀한 것이지만, 잘못 가르치면 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혀는 가장 길들이지 않는 것이지만,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과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성화는 말의 온전함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하고 특히 남을 비난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버려야 한다.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가진 자들 가운데는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이 있다.

 

말에 있어서 악하고 거짓되고 부덕한 것은 다 이런 지혜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지혜자인지 모르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는 자이다.

 

셋째, 성도들은 위로부터 나는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위로부터 나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온유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잠언이 가르친 지혜와 같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성령의 열매들과도 같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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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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