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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방

[스크랩] 약 4 장 :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1)

작성자조약돌|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약 4 장 :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1)

 

 

1. 세상의 벗은 하나님의 원수(4: 1-5)

 

①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②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③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④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4: 1 -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본 절은 두 개의 수사학적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질문은 야고보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수신자들이 동의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며 3장과 깊은 논리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Adamson, Burdick, Tasker, Lenski).

 

사람들 간의 싸움은 대체로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대체로 욕심 때문이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정욕(헤도네)은 '쾌락, 욕망'을 의미한다. 욕심이 분쟁의 원인이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싸움'(폴레모이)은 본래 국가 간의 큰 전쟁을 의미하며, '다툼'(마카이)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분쟁을 뜻한다.

 

* 민 1: 3 -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 민 31: 14 - 모세가 군대의 장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 왕하 24: 16 -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곧 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 잠 22: 10 -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 사 13: 4 -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 계 20: 8 -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 고후 7: 5 -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 딤후 2: 23 -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 딛 3: 9 -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야고보는 동의어에 가까운 두 단어를 사용하여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분쟁이나 불화를 지적하면서(Burdick, Gibson, Moo, Martin) 수신자들로 하여금 그 불화의 진원지에 대해 재고하도록 한다.

 

 

2]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지체'는 고유한 기능을 가진 몸의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 롬 7: 23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 엡 4: 13-16 -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정욕'(헤도논)은 '쾌락'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육체 내에서 단순히 일어나는 '욕망'이 아니라 쾌락 그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함을 뜻한다.(Tasker, Manton, Calvin).

 

* 딛 3: 3 -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 벧전 2: 11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렇듯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필연코 다툼을 초래하게 된다. 성도들 간에도 싸움과 다툼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원인은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다. '정욕'(헤도논)은 '쾌락, 욕망'을 의미한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운다.'는 말은 신자의 본성 속에 선악 간의 싸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그것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대립으로 말씀하였다(갈 5: 16,17). 베드로전서 2: 11에는 '영혼(프쉬케)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했다. 여기에서 '영혼'이라고 한 말은 중생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가리키며, 그 성향은 범죄 할 수 없는 원리이며, 경건과 의와 선만을 지향하는 성질이다.

 

욕심은 이 세상 중심적인 것이다. 천국을 바라는 자는 이 세상의 욕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성도는 자신을 비움으로써 그 선물을 감사히 거저 받는다.

 

성도의 순종 생활은 대가성 순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응답하는 감사의 순종이다. 신자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 이 세상적인 이기심과 명예심 등의 욕심을 가진다면 싸움과 다툼이 생길 것이다. 각 사람이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인정하고 모든 욕심을 버린다면 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이라는 말은 중생한 신자의 본성 속에도 거룩한 마음과 성향을 대항하여 싸우는 육신적 욕망이 있음을 보인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원하시는 것과 싸우는 육체의 욕구라고 말했다(갈 5: 16-17). 이 둘이 서로 싸운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 11에서 '영혼을 거스려[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영혼은 중생한 영혼의 변화된 성향을 가리킨다. 그 성향은 경건과 의와 선과 진실만을 지향하는 성질이다. 중생한 성도들의 이런 변화된 새 성향과 육신의 죄악 된 본성의 욕심이 서로 싸운다. 또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남아 있는 이런 죄악 된 욕심이 교우들 간의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다.

 

육신의 죄악 된 욕심들이란 세상 중심적인 것들로서 육신의 정욕, 물질욕, 명예심, 자존심 등이다. 천국을 바라는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런 세상의 욕심들을 버릴 수 있다.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성도는 자신을 부정하고 빈 마음으로 그것을 감사히 거저 받는다. 성도의 순종은 결코 대가를 바라는 순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응답하는 감사의 순종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자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 세상적 이기심과 명예심 등의 욕심을 가진다면 여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도 싸움과 다툼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인정하고 그런 세상적 욕심들을 다 버린다면 서로 다투고 싸울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4: 2 -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성도는 무엇이든지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얻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을 수 있고, 또 이렇게 기도의 효력을 아는 자들은 시시때때로 또 비상한 때에 기도하기를 힘쓰며 또 기도한 바를 얻으며 따라서 영육의 부족이 조금도 없는 삶을 살 것이다.

 

다윗은 시편 65: 2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주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고 또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7: 7-8). 이것은 놀라운 약속이며 성도의 특권이다.

 

 

1]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에피뒤메이테 카이우크 에케테 포뉴에테 카이 젤루테 카이 우 뒤나스데 에피튀케인 마케스데 카이 폴레메이테)

 

헬라어 본문에는 구두점이 없어서 독법이 두 가지로 나뉜다.

 

(1) '살인하며'(포뉴에테) 다음에 나타나는 '카이'(그리고)를 강조할 경우 본문은 세 개의 문장으로 나뉜다(Moffatt, ASV, KJV, NIV, Textus Receptus).

 

①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②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③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이 견해는 '포뉴에테'는 문자적으로 '살인'을 의미 한다기 보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미움'을 의미한다.

 

* 마 5: 21,22 -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요일 3: 15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따라서 본문은 좌절된 욕망 자체를 강조한다.

 

(2) '포뉴에테' 다음에 구두점을 삽입할 경우 본문은 두개의 문장으로 나뉜다(RSV, NEB, NASB, Hort, Cantinat, Ropes).

 

①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한다.

 

②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희가 다투고 싸운다.

 

이 경우 '포뉴에테'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적인 표현 그대로 '살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좌절된 욕망에서 비롯된 결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두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의 수신자가 그리스도인인데(2: 1) 그 가운데서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살인'이 언급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며 3절 역시 좌절된 욕망 자체를 설명하므로 문맥상 일치하기 때문이다(Tasker, Burdick).

 

쾌락 즉 과도한 욕망은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 많은 부족감과 갈증을 유발(誘發)시킬 뿐이다. 그 결과 죄의 욕망은 만족될 수 없으며 오직 좌절의 연속을 겪게 된다.

 

 

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야고보는 앞에서 죄의 욕망은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좌절만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언급하였다. 반면에 본문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에게 구함으로써 실제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구하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강하게 시사한다(Tasker, Manton).

 

성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 주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고 또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7:7,8).

 

 

4: 3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은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또 악한 동기와 의도를 가진 자들의 기도도 결코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악을 품은 기도는 결코 응답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세상적 욕심을 품고 그것을 위해 구하는 것은 잘못 구하는 것이며 그는 결코 구한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즉 그가 구한 것은 그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칼을 달라고 할 때, 엄마가 그것을 그 아이에게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구하는 것들 중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 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은 결코 주지 않으실 것이다.

 

 

1)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본 절에서 야고보는 만족을 채우기 위해 그릇된 동기에서 구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본 절의 '정욕' 역시 1절과 마찬가지로 '쾌락'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서 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의 간구는 외면하시나 의로운 자, 진실하고 참되게 구하는 자,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의 간구는 들으신다.

 

단지 성도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은 얻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성도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칼을 달라고 한다고 그것을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 주시고 해가 되는 것은 주지 않으실 것이다.

 

* 시 34: 15 -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 시 145: 18 -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

 

* 눅 18: 14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요 5: 14 -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4: 4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간음한다는 말은 육신적 의미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 육신적으로 간음하는 것은 육신적인 욕망에 따라 행하는 육체 사랑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영적으로 간음한다는 것은 우상숭배, 이 세상을 사랑, 돈을 사랑, 쾌락을 사랑하는 등 이 세상의 것들, 육신적인 것들, 물질적인 것들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했다.

 

* 골 3: 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그러므로 간음하는 자들은 세상과 벗된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다. 하나님의 원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은 세상의 욕망을 다 버림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다(요일 2: 15-17).

 

 

1] 간음한 여인들아!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이칼리데스'는 여성 명사로 문자적으로 '간음하는 여자들'을 가리키나 실제로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인 불충실성을 나타낸다.(Burdick, Adamson).

 

전통 사본에는 '간음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여'라고 되어 있다.

 

'간음한다.'는 말은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다 적절하다. 육신적으로 간음하는 것은 육신적 욕망을 따라 행하는 육체적 사랑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영적으로 간음한다는 것은 우상숭배, 세상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 등 하나님 대신에 무엇을 더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 5).

 

* 호 2: 2-5 - 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 렘 31: 22 -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 겔 23: 45 - 의인이 음부를 심문함 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 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

 

* 말 3: 5 -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 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야고보는 이 비유를 통해 수신자들의 육신에 속한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Gibson, Tasker, Ma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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