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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방

[스크랩] 약 4 장 :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3)

작성자조약돌|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약 4 장 :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3)

 

 

4: 8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

 

죄인들은 손을 깨끗이 해야 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하려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마음을 성결케 해야 한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

 

* 마 6: 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1]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대적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특권이자 의무인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쾌락을 즐기는 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특권이다.

 

옛 계약 아래서는 동물의 피를 통한 희생 제사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 출 19: 22 -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 레 10: 3 -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 신 4: 7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 겔 43: 19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 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 제물을 삼되

 

* 겔 44: 13 -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Lenski, Tasker, Gibson).

 

* 히 4: 16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습을 좇고 쾌락에 얽매인 모습을 단호히 배격(排擊)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시 19: 10 -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 고전 14: 12 -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 엡 4: 22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벧전 2: 2 -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야고보는 두 가지 호칭으로 수신자들을 부르고 있다.

 

'죄인들아'는 수신자들이 젖어 있었던 죄악 된 성향의 삶을 단호히 지적하는 표현이며 '두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쾌락을 즐기려는 마음을 동시에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 눅 16: 13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따라서 이러한 마음은 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은 외적인 행위를 정결케 하라는 표현이며, '마음을 성결케 하라'는 말은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표현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내적, 외적 정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합당한 삶을 영위해가야 한다(Burdick, Adamson, Moo).

 

* 출 30: 20 -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 마 7: 3,4 -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 요일 1: 7 -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4: 9 -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본문의 권면은 모두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표현들이다.

 

 

1]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슬퍼하며'(탈라이포레오)는 '불행해지다' 혹은 '비참해지다'는 의미를 가진 '탈라이포레오'에서 유래한 단어로 스스로 고행을 통해서 비참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했던 자신의 죄악의 비참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는 근심을 하라는 의미이다(Burdick, Tasker).

 

'애통하며'(펜데사테)와 '울지어다'(클라우사테)는 모두 억누를 수 없이 격앙(激昻)된 뉘우치는 심정의 모습을 묘사한다.

 

* 욥 8: 21 -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 욜 2: 12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 암 8: 10 -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하게 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 마 5: 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요 16: 20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 고후 2: 4 -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 계 18 : 7,8 -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야고보는 위의 세 단어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이 거짓됨이 없이 진실 되게 회개할 것을 권면한다.

 

 

2]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웃음'과 '즐거움'은 수신자들이 죄 아래 있는 삶을 살 때 느낀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쾌락'을 삶의 본질로 좇고 있었음을 비유적으로 시사하는 표현이다(1,2절).

 

야고보는 이렇게 죄에 빠져 즐겼던 삶에서의 '웃음'과 '즐거움'을 예수께서 복된 삶의 기본 요소로 가르치셨던 '애통'과 '근심'으로 바꿀 것을 권면한다.

 

* 마 5: 4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근심'(카테페이안)은 문자적으로 '낙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죄인을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자세를 가리킨다.

 

본문에서 야고보는 어리석게도 쾌락으로 일관하던 죄 아래서의 삶을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할 것을 권면한다(Martin, Lenski, Tasker).

 

 

4: 10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는 세상적 욕망들과 명예심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사랑하고 내세 천국만 바라보아야 한다. 또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과거의 삶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하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자들을 높이실 것이다.

 

본 절은 7절에서 시작된 일련의 권고들에 대한 결론이다. 본 절에서 내적 겸손을 계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낱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지적하려는 의도인 듯하다(Manton).

 

야고보는 8절에서 언급한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권면을 본 절에서 다시금 확인시키며 예수께서 교훈하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참된 기쁨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Martin).

 

* 마 23: 12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눅 14: 10,11 -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눅 18: 10-14 -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세상적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과 천국만 바라고 사랑해야 한다. 또 우리는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과거를 슬퍼하고 애통해야 한다. 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우리가 모든 세상적 욕심을 버리고 세상과 벗이 되지 말고 오직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을 교훈한다.

 

욕심은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탐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큰 은혜를 주셔서 세상 사랑과 세상 욕심을 극복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 세상적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천국만 바라며 살아가자!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세상 욕심들을 버리고 또 세상과 벗이 되지 말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은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또 욕심에서 다툼이 나온다. 우리는 세상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성도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교만은 불신앙, 하나님 거역, 불순종을 만들고 겸손은 하나님 인정과 순종을 만든다. 사람이 교만하면 망하고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케 된다(잠 16:18; 18:12).

 

셋째, 성도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행하며 또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를 꼭 붙들고 따르는 것이다.

 

* 신 10: 12,13,20 -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만 바라자.

 

 

3. 비방하지 말라(4: 11-12)

 

⑪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⑫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4: 11 -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성도들은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7: 1).

 

야고보는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사람을 논단[비방]하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율법의 말씀(레 19: 16,18)에 어긋난다는 뜻일 것이다.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는 결국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자이지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1] 형제들아!

 

이 호칭은 '간음하는 여자들'(4절), '죄인들'(8절)이라는 호칭에 이어서 다시금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야고보의 간절한 사랑을 시사한다(Tasker, Martin).

 

 

2] 서로 비방하지 말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카탈랄레이테 알렐론'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메'와 현재 명령을 나타내는 '카탈랄레이테'가 결합되어 지금 계속되고 있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금지할 것을 권면하는 강한 부정 구문이다.

 

'비방하지'(카탈랄레이테)는 문자적으로 '타인을 멸시하며 말하다' 혹은 '다른 사람을 대적하여 말하다'는 뜻이다.

 

* 시 50: 20 -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 벧전 2: 12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벧전 3: 16 -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연합된 형제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Robertson, Tasker).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셨다(마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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