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 장 :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2)
5: 5 -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셋째, 그들은 사치하고 연락했다.
사치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옷, 신발, 가구, 자동차 등 우리의 모든 것에 적용된다.
'사치하고'(에트뤼페사테)는 이기주의와 정욕을 위한 방탕한 생활을 의미한다.
* 사 47: 8 -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찌어다.
연락(宴樂)은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즐거움 이상의 쾌락을 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오락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빠지면 나쁘다.
가난한 자들이 많은 세상에서 사치와 연락은 죄악이다. 부자들은 사치와 연락으로 그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
'연락하여'는 특별히 도덕적인 방탕을 가리킨다.
* 엡 4: 19 -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 딤전 5: 6 -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엡 5: 18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것은 일반적으로 물질이 풍부해지면 저지르게 되는 보편적인 죄악들을 시사한다(Manton, Mayor, Moo).
'도살의 날'은 '땅에서'와 연결되어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Tasker, Burdick, Moo).
* 사 34: 6 -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육을 행하심이라.
* 겔 21: 15 -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 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살육을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부자들은 도살당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살찌우는 소나 양들과 같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 가운데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였다.
* 시 17: 10 -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요로 사치하고 연락하였다. 사치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집이나 옷이나 자동차나 가구나 신발 등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
연락은 하나님이 주신 정당한 것 이상으로 육신의 욕망과 쾌락을 구하는 것이다. 오락이나 운동이 나쁘지 않지만, 거기에 빠지면 나쁘다.
사치와 연락은 죄악이다. 부자들은 사치와 연락으로 그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두려움과 조심함을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물질생활에 대해서도 판단하실 것이다. 우리는 사치하거나 연락해서는 안 된다.
5: 6 -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넷째, 그들은 옳은 자들을 정죄하고 죽였다.
그들은 그들의 힘을 악한 일에 사용했다. 옳은 자들은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1] 너희는 의인을(옳은 자를)정죄하고 죽였으나(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옳은 자'(톤 디카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 '옳은 자'에 '톤'이란 관사가 사용된 것과 본 절 후반절의 표현을 근거로 해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Feuillet)
* 사 53: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마 26: 63 -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 '의로운 자'가 야고보의 명칭이었고, 또한 몇 년이 못 되어 순교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야고보 자신으로 본다(Bengel, Mayor, Dibelius).
Ⓒ 관사 '톤'을 계층을 나타내는 단수의 총칭 용법으로 보아 의로운 계층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Calvin, Ropes, Burdick, Lenski).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이제까지의 경고 대상은 부자였으며 그 부자가 억압했던 옳은 자는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를 뜻한다. 그런데 그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자는 바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2: 5-7).
2]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안티탓세타이 휘민'은 수사학적 의문문을 통해서 무죄한 사람들의 연약성과 온유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저항하지 않는 의로운 자의 태도와 그들을 죽이는 불의한 자의 죄악성을 대조시켜 불의한 자들의 극악한 죄를 고발한다(Burdick, Manton, Tasker, Martin).
부자들은 또한 옳은 자들을 정죄하고 죽였다. 저 옳은 자들은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여기에 부요함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난다.
부자들의 부요함은 그들을 사치와 연락에 빠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옳은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게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악하게 사용되었는가! 우리는 물질적 부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이런 죄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이다(딤전 6: 10).
* 딤전 3: 3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 딤전 6: 10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딤후 3: 2 -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히 13: 5 -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왜 부자들에게 이토록 심각한 경고를 발했는가?
이는 마치 구약 시대에 선지자의 준엄한 탄핵을 듣는 듯하다.
* 암 6: 1-7 -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 도다.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예수님도 부자가 재물을 부당하게 모으고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동등한 수준으로 책망하셨다.
* 눅 12: 13-21 -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성경은 부자들의 탐욕이나 사치에 대하여 시종일관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과 같고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강조한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2. 인내에의 권면(5: 7-11)
⑦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⑧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⑨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⑩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⑪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5: 7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세상에서는 악한 부자들이 의인들을 핍박할지라도,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바라며 씨를 뿌리고 추수의 때를 오래 기다리듯이, 우리는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여 주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고 기다려야 한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라는 말은 부자들의 불경건하고 방탕하고 불의하고 의인을 핍박하는 환경 속에서도 이 교훈을 받으라는 뜻이다.
'형제들아'라는 말은 악한 부자들과 대조하여 순종하는 진실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형제들아'는 부자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부분에서의 '들으라'(1절, 4: 13)는 명령조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이 어린 어투이다. 야고보는 다시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을 한다(1: 2,19. 2: 1,14. 3: 1,12. 4: 11).
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주의 강림'(테스 파루시아스 투 퀴리우)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을 반영한 종말의 사상을 나타낸다.
* 마 24: 3,27,37,39 -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고전 15: 23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 살전 2: 19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 살전 3: 13 -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살전 4: 15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 살전 5: 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살후 2: 1,8 -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 벧후 1: 16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 벧후 3: 4 -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 요일 2: 28 -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길이 참으라.'(마크로뒤메사테)는 '길다'는 의미를 가진 '마크로스'와 '분노' 혹은 '성냄'을 의미하는 '뒤모스'와의 합성어로 분 냄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압제나 박해 아래서 자신을 포기하거나 성급한 보복을 삼가하고 고통을 참고 자제하는 것을 시사한다.(Trench, Blue, Light foot, Martin, Manton).
* 롬 2: 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 벧전 3: 20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앞서 언급한 인내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당시의 기후를 반영한 것으로 '이른 비'는 10월에서 11월에 오는 비를 가리키며 '늦은 비'는 4월에서 5월간에 오는 추수 직전의 비를 말한다.
이른 비는 파종기에 내리는 비로 건기 동안 메말랐던 땅이 부드럽고 촉촉하게 되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데 좋은 환경이 된다.
늦은 비는 곡물의 추수기에 내리는 비로 이 비가 제때 와야 농작물의 결실이 풍요롭게 된다.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때를 따라 적절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하고 있다.
농부가 생명과도 같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시리라는 약속을 굳게 믿어 기대하고 인내하는 것처럼 불의한 자들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 렘 5: 24 -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 욜 2: 23 -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 슥 10: 1 -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 빌 4: 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기본적 진리이며 그리스도인들의 확실한 첫 번째 소망이다. 현실은 악할지라도 성도는 주의 재림하시기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
마치 농부가 열매를 바라면서 파종할 이른 비와 결심케 할 늦은 비를 참고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는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고 기다려야 한다.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이다.
재림의 임박 의식은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 만일 이런 의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해이해질 것이다. 곧 오시려는 것은 실상 하나님의 심정이다.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단지 모든 택한 자들을 다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