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부터 깨어나 피네스테레 순례에 몰입되어 여념이 없다.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건 이제까지 운이 좋게 비켜간 비다. 그러나 카미노의 산실인 갈리시아 지방은 4,5월에 비가 자주 내리는 걸로 정평이 나있다. 비를 만나게 되면 모든 게 불편해진다. 무엇보다도 판초우비를 써야하는데 열이 발산되지 않아 걷는 게 대단히 힘들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다른 걱정은 신발이 젖는 거다. 걸음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알베르게에 머무는 동안 완전히 말릴 수 없다. 핸드폰을 통해 자기 전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를 들었으나 깨어서 보니 다행히 없다고 한다.
7시 조금 지나 여전히 어둠에 묻힌 길로 나선다. 산티아고 언저리를 30분 만에 벗어나자 아늑하고 조용한 숲길과 정감을 자아내는 마을길이 줄지어 나타난다. 다만 마을과 마을 사이의 차도가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워낙 한적한 지역이라 달리는 차들이 손가락을 꼽을 만큼 적어 안정감을 되찾는다. 너무 조용해 내가 숨쉬는 소리마저도 또렷하게 들린다. 한 톨의 때도 묻지 않은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무심코 터져 나오는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를 제외한 길손은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지저귐 뿐이다. 시골마을의 닭들은 시간을 잊어버린 듯하다. 한낮인데도 끊임없이 울어댄다. 어제 오후에 약간의 짐을 맡긴 탓에 배낭이 가벼워 빠르게 진행한다.
몽환적 경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멋스럽고 제법 큰 네그레이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25km 걸었다. 조금 더 걸어 외곽에 자리잡은 공공 알베르게로 들어간다. 역시 우리가 첫 손님이다. 구간의 시작점과 끝점은 대체로 지방 정부 또는 종교단체가 관리하는 그런 숙소다. 형편없는 부엌 시스템을 알고 있는 터라 들어가자마자 준비해간 빵, 햄과 치즈로 점심을 후딱 해치운다.
외딴 언덕 위에 숙소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심생활을 오히려 비웃으며 도도히 서있다. 심신이 사뭇 지쳤지만 침대에 드러눕자 이내 포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