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가슴 깊은 곳에 남아있을 무시아를 떠나는 날이다. 11시에 산티아고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9시30분 쯤 나선다. 날씨가 무척 맑고 상쾌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정류장 근처 카페에 들어가 편안히 쉬며 아름다운 짧은 추억을 되새겨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스인 듯한 친구가 보인다. 어제 떠날 거라고 들었기에 꽤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손을 흔든다. 바로 마음 아파하고 있던 토마스다. 곧 뛰어나가 인사를 나눈다. 덥수럭했던 수염도 깔끔하게 다듬어 무척 스마트하게 보인다.
내 덕분에 비가 내리는 어제 숙소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단장을 산뜻하게 했다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보여준다. 게다가 같이 묵고 있던 어느 여성이 구입했던 표를 주어 예기치 않은 행운을 받았단다. 아팠던 마음에 20유로를 다시 건네주고 나니 사뭇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는 연신 고맙다며 영국에 돌아가서도 인연을 꼭 이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시에 한두 석을 빼곤 꽉 찬 버스가 출발한다.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작은 아름다운 마을과 들판이 눈길을 잡아맨다. 어떻게 걸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길고도 길다.
마침내 1시간30여분을 지나 산티아고 정류장에 도착한다. 생소하다. 원래의 정류장이 옮겨져 기차역과 연계한 종합교통단지로 탈바꿈한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모레 새벽 일찍 마드리드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려고 역을 찾아보려 했는데 저절로 복이 굴러와 그지없이 기쁘다. 10여분 걸어 묵었던 숙소에 들어가 맡겼던 짐을 찾고 점심을 성급히 해치운다. 2시간여의 휴식을 취하고 선물을 구하러 4시경 나온다. 부담스럽지 않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요일 탓에 큰 슈퍼마켓들이 닫혀있어 작은 상점들을 둘러본다. 그러나 진열된 상품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일을 기다리며 서둘러 나온다. 대신 다섯 살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손자의 선물을 구하기 위해 이골목저골목 다니며 샅샅이 살핀다. 마침내 다양한 색연필, 그림책과 성경이야기 만화를 구입한다. 기뻐할 내 인생의 최고 선물인 유일한 손자를 그리며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을 마치고 침상에 누워 내일 할 일을 꼼꼼하게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모르는 사이 도망다니던 잠놈이 제발로 살며시 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