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산티아고를 떠나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날이다. 워낙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한 밤중 3시30분경 숙소 문을 나서는 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마드리드행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10여분 지나 역에 닿았으나 대합실이 닫혀 쌀쌀한 찬기에 몸을 움츠리고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대합실이 5시에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들어간다. 곧바로 수속을 마치고 승강장에 내려가 정시에 도착한 기차를 탄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없다.
어둠이 걷히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광활하고 고고한 초원이 눈을 온통 사로잡는다. 숨을 자아내는 놀라운 광경이 일곱 번째 온 스페인을 새삼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9시경 정시보다 20여분 늦게 종착점인 차마틴역에 도착한다. 전철과 연계된 복잡한 역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30여분을 탕진하고 난 뒤에야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집어탄다. 12시50분에 코페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엔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에 불안해 한다. 1시간 쯤 후 짐을 붙이고 좌석 표를 손에 쥐고 나서야 편안해진다. 며칠 전부터 성과 이름이 뒤바뀐 문제로 겪고 있던 고민이 항공사의 친절한 여직원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해결해 주자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침내 비행기에 올라 3시간여 지나 환승공항인 코페하겐에 닿는다. 서울로 떠나는 비행기가 한 밤중 12시경 출발하기에 남는 10시간여를 코펜하겐으로 들어가 보내기로 한다. 오로지 덴마크 화폐만 유용한 메트로 티켓을 어렵게 구해 코페하겐 중심 역에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한다. 사방 2km인 수도의 심장은 고색 찬란한 아름다운 건물로 꽉 차있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러나 강탈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환전과 공항에서 겪었던 불편하고 느려빠진 안전검사가 떠올라 한시 바삐 떠나고 싶은 심정도 지울 수가 없다. 성에 차지 않는 일식을 들고 공항으로 5시쯤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원하던 모자도 구할 수 없었다. 무려 6시간여를 지루하게 보낸 후 정시 조금 늦게 출발한 비행기에 오른다. 엄청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길고 긴 12시간 만에 인천공항을 나선다. 빠른 시차 관계로 13일 저녁 6시가 넘었다. 전철에 몸을 싣자 쌓인 피로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오로지 그리운 아내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려는 욕심 외엔 아무런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