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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으로 가는 길

아둘람으로 가는 길 (1) UBF의 태동과 76사건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07.07.31|조회수918 목록 댓글 0

UBF의 태동 그리고 76사건

 

-p46-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부에서는 광주를 중심으로 사라 배리 라는 여선교사를 책임자로 세웠고, 이것이 UBF의 시작이었다. 그 뒤 네비게이토와 성서유니온에서 사역한 적이 있던 이창우 전도사가 거기에 합류하여 그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초기 UBF의 성경공부는 구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신약의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창세기와 요한복음은 학생들에게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 하나님과, 그 앞에 최고의 기쁨과 가치의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찾아 주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과 함께 한국 대학생의 낮은 자존감과 정체성의 부재 그리고 운명적인 열등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또한 창세기1장31절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하나님의 창조 소감은, 60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나는 최고다'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중략)

-p48-

그러나 한 시대의 새 역사의 빗장을 여는 열정적이고 개혁적인 운동을 시작한 UBF는 15년 뒤인 1976년도에 모임의 속성과 한계가 드러나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모임이 삐걱대더니 마침내 깨어지고 말았다. 전체 회원의 절반 이상이 떠나가고, 최고 지도자는 책임목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미국에 선교사로 나갔다. 모임 내에서는 이 사건이 1976년에 일어났다고 '76사건' 으로 불렀다.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개개인의 열정, 건강, 시간, 학문, 직장, 결혼, 장래뿐 아니라 부모형제까지 철저히 희생한 회원들이 받은 상처와 충격들은 엄청났다. 언니 친구 중에는 정신병 증세를 보이거나 전신마비로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건은 진리를 사랑해서 자신을 용감하게 드린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시퍼런 멍 자국을 남겼고, 시대의 싹인 청년들의 창창한 앞날을 찢어 놓았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로운 책임자를 세우는 것으로 이 일은 일단락이 되었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고 물으신 하나님께서 "네 없어진 믿음의 형제자매가 어디 있느냐?" 며 모임의 남은 자들에게 물으셨지만,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였다. 흩어지고 떠나간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온 천지에 호소하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모임의 지도부에서는 이 사건을 몇몇 인본주의자들의 교만과 불신앙으로 일어났으며, 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시기한 사탄의 훼방이라고 해석하고 또 전했다. 책임지도자와 UBF 조직 자체를 미화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점차 이 사건은 잊혀져 갔다. 그러나 '76사건'을 어떻게 비추고 다루는가는, 이 단체의 속성을 진단하고, 이 단체가 건전한 학원 복음단체가 되느냐,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집단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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