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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이야기

희망맨의 일기 : ‘희망맨’의 100퍼센트 희망 만들기

작성자희망맨|작성시간16.01.11|조회수408 목록 댓글 2

‘희망맨’의 100퍼센트 희망 만들기 라는 제목은 아래 책에 실린 제목입니다.

제 글에 출판사에서 이런 제목을 달았네요.(좀 쑥스럽지만 )

 

2015년 여름에 백천재단에서 제 투병수기를 올렸고,

오늘 그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글을 제가 이식 35개월차에 썼던 글이고, 백새모(급성골수백혈병 환우회 까페)에도

일부 내용은 중복되는 게 있습니다.

제 글은 15번째 글인데요. 아래 글은 책의 내용 전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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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맨’의 100퍼센트 희망 만들기

이민석

 

한국혈액암협회에서 봉사하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백혈병을 비롯한 혈액 질환 보호자를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제가 작은 것 하나라도 도움을 더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MDS(골수형성이상증후군)라는 혈액 질환으로 타인 이식을 한 지 7개월째 되신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겪고 있는 그 시간들을 저는 먼저 겪었습니다. 저는 비관해 동종 이식 35개월차(2015년 8월 기준)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모습이 본모습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람에 따라 시간은 다르지만 조금씩 회복되고,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대화를 나누던 중 그분 이야기를 듣고 저도 제 경험을 들려드리게 되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저보고 힘든 시간을 보내왔겠다며……

 

저는 퇴근을 해서 사무실이 아니어도, 휴일에도 제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전화를 받고 상담을 합니다. ‘얼마나 급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혈액암협회 봉사와 더불어 백새모(백혈병 완치로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 백혈병 온라인 카페)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댓글도 달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헤아려보니 지난 4년 동안 백새모에서

‘보리짝’과 ‘희망맨’이라는 닉네임으로 총 2,400여 건의 댓글을 달았더군요.

저에겐 지금도 백혈병과 이식의 잔재인 숙주 반응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힘든 경험을 알고 있고

또 잊을 수 없기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분들의 걱정과 궁금증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제 닉네임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2011년 7월, MDS 진단을 받고 ‘이형성증 이기세’ 카페에 처음 가입했습니다.

닉네임은 ‘굿맨’이었죠. 글을 읽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백혈병에 전이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012년 2월, 그러니까 발병 후 7개월이 지나 2차성 백혈병으로 전이된 다음에는 백새모에 가입했고,

그때 닉네임은 ‘보리짝’이었습니다. ‘보리짝의 일기’를 비롯해 ‘보리짝’이라는 이름으로 게시글과 댓글을 많이 썼습니다.

‘보리짝’…… 어감은 별로 안 좋았지만 저의 전 여친 닉네임이 ‘보리’였고, 저는 그 짝이었으니 딱 맞는 닉네님이었지요.

 

아프기 전, 4년간을 만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백혈병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결혼을 했을 겁니다.

이미 양가 가족과 친척들에게도 인사와 허락을 받은 상태였으니까요. 백혈병 진단 이후로 제 여자 친구는 3년 동안

저를 간호해 주었습니다. ‘회복되겠지’ 기대했지만, 제 상태가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 1월, 집이 부산이었던 저는 혼자서 경기도 파주로 올라왔습니다. 더 이상은 그 사람과 어머니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제 모습은 머리카락은 빠져 있고, 목과 그 아래는 백반증, 얼굴은 부어 있었고,

아직 여러 종류의 숙주가 남아 있는 모습이었지만, 어머니와 그 사람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 친구는 지금까지 힘들게 투병하고 간호했던 그 모든 것이 재발로 더 힘들어질 거라 걱정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2014년 2월, 헤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살리는 대신 연인이었던 관계를 놓았습니다.

저는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동안 ‘보리짝’이라는 닉네임은 계속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지인을 통해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회복되는 게,

그리고 그 사람과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그들을 위하는 것임을.

 

저는 닉네임을 ‘희망맨’으로 바꿨습니다. 백혈병 환우와 보호자들이 가장 바라는 단어가 완치라는 희망이고,

그 희망을 좇는 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은 제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올 거라 생각하셨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혼자 지내는 동안 다시 신앙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백새모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투병 일기로 지금까지 150편의 글을 연재했고, 그 외에 많은 댓글을 달며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과

소통했습니다.

 

최근 어머니께서 지인을 통해 제 SNS 프로필 사진을 보셨습니다. 올 초 설날에 뵙고 몇 개월이 지나도록 가지 않았으니

저의 변한 모습이 많이 반가우셨을 겁니다. 그 사이 저는 파마에 염색도 하고, 붓기도 빠졌으니까요.

“아들, 고마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어머니의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도 저는 면역 억제제와 스테로이드제 두 알씩을 복용하고 있고 식이 조절도 하고 있습니다. 힘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 마음과 생각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살아야 한다. 회복해야 한다!”가 명제라면,

살기 위해서, 회복하기 위해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하고, 단지 바꾸면 됩니다. 정신적인 부분,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은 신앙에 의지합니다.

성경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되뇌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보고 우스갯소리로 능력자라고 합니다. 2차성 백혈병, 관해 실패 후 비관해 동종 이식으로 5퍼센트 미만의

생존율에서 살아난 것, 이식한 지 34개월차에 생존율 95퍼센트 이상이 된 것, 이식 후 1년 4개월부터 파주에서 홀로서기를 한 것,

가장 최근 혈액수치 백혈구 8천대, 호중구 6천대, 적혈구 16대 후반에서 17대 초반, 혈소판 29만대로 유지하게 된 것,

연세대학원을 4.5년 만에 졸업하게 된 것, 운정 신도시 내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내 이름으로 등기한 것,

올 2월부터 새로운 여자 친구와 사귀게 된 것, 올 4월부터 혈액암협회에서 일하게 된 것!

이것이 발병 후 제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백혈병으로 이 모든 것을 잃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백혈병으로 이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할 뿐입니다.

 

생존율이 낮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저는 5퍼센트 미만의 생존율이었지만, 제가 그 5퍼센트 안에 들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럼 그것이 나에게는 100퍼센트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치료와 간호에 임한 덕에 어려움과 지치는 마음을

감당해 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제 가슴에 품은 ‘완치’라는 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고 있음을,

그것이 제 안에 가득 차오르는 자존감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 이민석 님은...........

올해 서른 일곱 살이며, 서울 노원구에 살고 있다. 서른 셋에 MDS(골수형성이상증후군) 처음 진단 받았고,

7개월 후 백혈병으로 전이되어 2012년 9월 비관해 동종 이식을 했다.

현재 한국혈액암협회에서 일하면서 봉사하고 있으며, 다음 까페 ‘백새모’에서 닉네임 ‘희망맨’으로 활동하고,

많은 환우분들과 소통하며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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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삐야 dlbl관해 | 작성시간 16.01.12 대단하네요, 희망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을텐데 끝까지 절망하지않고 이겨내서 행복한 삶을 찾았다니 대단한 의지예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작성자할미꽃 | 작성시간 16.01.12 울아들과 똑같은 사연을 담고 있어 눈물이 나내요
    지금생각하면 여자친구한테 너무 고맙고 행복하게 잘살길 기도하지만 그때당시는 원망 많이 했습니다 아들만 생각한거지요 힘든모습 보여주지 않고 잘이겨내서 지금은 정상이지만 이게 부모마음인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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