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환영했다고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이런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 주간 고난을 당하시다 결국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종려주일이 지난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이 한 주간은 오락을 삼가고 주님의 고난 당하심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것이 오랫동안 교회가 지켜온 관습이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주님의 고난도 묵상하고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도 생각하면서, 우리 앞서 고난 당하신 주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에서 80여 년간의 생애를 바쳤던 전설적인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 선교사들이 조언을 듣고자 방문했습니다. 그는 먼저 젊은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선교를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젊은이들이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 황무지 같은 중국 땅에 교회들이 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중국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미개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테일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중국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 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문명의 불모지가 무엇이 그리 좋습니까? 이처럼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즐거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내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붙잡히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하게 됩니다. 조금도 즐겁지 않은 것을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합니다. 또한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그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강권하시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우리 주님의 고난이 있기 약 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올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을 미리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의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3가지의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고난을 당하신 이유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가시관을 눌러쓰신채 또 매를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시다가 그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하셨습니다. 조롱하는 자들로부터 침맺음을 당하고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리한 창에 찔려 보배로운 피와 물을 다 흘려주셨습니다. 뜨거운 태양볕에 혀가 타들어가는 목마음과 갈증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당하신 고난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고난은 실제로 당하지거나 맛보지 아니한 우리들로서는 말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쓸개 맛 보다 더 쓰디쓴 고난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왜 이같은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1)우리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죄인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해 곡해를 했습니다. 저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매를 맞는다. 그리고 고난을 당한다. 이렇게 엉뚱한 생각들을 했습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사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사53: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의 죄악 때문에 주님이 징계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난은 바로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의 결과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 4-6절에 보면 "우리"라는 말이 9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우리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나'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나의 허물, 나의 죄악 때문입니다. 나를 떼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 값인 십자가를 내가 져야할텐데 주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각각 제 길로 간 양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서 죄의 길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그 죄의 값을 바로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초라하게 된 것, 그렇게 볼품 없게 된 것, 아니 그렇게 말로 다할 수 없이 고통당하게 되신 것이 다 우리를 위해서이고 우리를 죄에게 건지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곧 나를 죄값으로 인한 저주와 죽음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해 주님은 이런 고난을 당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스코틀랜드의 한 지방에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있었는데 간밤에 불어닥친 태풍과 폭우로 철교를 바치고 있던 큰 기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침 일찍이 한 목동이 그 옆을 지나다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기차가 달려오는 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마침 멀리서 수백명의 손님을 실은 기차가 이 사실을 모르고 달려옵니다. 이 목동 소년은 옷을 벗어들고 기차를 향해 흔들며 멈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기차 운전사는 장난하는 줄 알고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다가 가까이 와도 소년이 비끼지 않으니까 브레이크를 잡고 급정거를 했습니다. 내려보니까 그 소년은 토막이 난채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고 그 앞에 철교가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여든 승객을 향해 그 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 목동이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 모두는 죽었을 것입니다."라고 할 때 모두 머리를 숙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곧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와 지옥사이에 뛰어들어 십자가에 달려 그 고귀한 피를 흘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어느 날 달리는 기차 안에서 흑인 노예와 백인이 싸우다가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에 마침 옆에 있던 백인 목사님 한 분이 순간적으로 흑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칼을 한 손으로 막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흑인노예의 가슴에는 칼이 안꽂혔으나 그 목사님의 손에는 심한 칼자국으로 상처가 나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흑인 노예는 자기가 죽을 대신에 살려준 목사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내가 어디를 가나 노예생활을 할텐데 이왕이면 목사님을 모시고 일평생을 바쳐 충성할 것을 다짐하오니 나를 데려가 주시오 하고 간청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 흑인노예를 집에 데려가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흑인은 원래 난폭하기 때문에 가끔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고집만 부리고 거만하게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목사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 언제인가 흑인 때문에 다친 손의 칼자국을 가만히 들어 보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이 흑인은 고집만 부리고 말을 잘 듣지 않다가도 그 손을 보기만 하면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순종을 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갈 1: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모든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질고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가 당하지 않아도 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했지마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묵묵히 그 뜻을 따르셨던 것입니다.
3)기꺼히 당하신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지만 억지로 마지못해서 겪으신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도전을 줍니다.
요 10:14-18,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1절 상반절입니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담당하신 고난은 10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뜻으로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흔쾌히 따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억지로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기꺼이 만족하게 여기셨기에 담당하신 사역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룬 사역의 결과로 얻어질 이 땅의 축복을 보셨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고난의 결과로 얻어질 축복을 아셨기에 기꺼이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인격적인 순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고난당하신 주님의 태도
1)7절에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그 다음날 군병들에게 끌려 가시면서도 그들에게 대항하지도 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자원해서 스스로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가야바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할 때도 침묵하여 마치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끌려다니며 잠잠하셨습니다. 나중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갈 때도 잠잠히 십자가만 지고 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도, 양 쪽에 같이 못박힌 강도들은 소리를 지르며 아우성이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는 군인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조그만 고난 가운데서도 쉽게 입을 벌리지 않습니까? 쉬 원망하고 낙심하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입니까? 주님처럼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큰 은혜주실 줄 믿습니다.
2)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히 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 가운 데 으뜸가는 믿음이 있다면 참는 믿음입니다. 참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실패를 참는 자 가 성공을 가져옵니다. 성공이 무엇입니까? 실패의 뿌리에서 맺혀진 열매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것, 고통, 견딜 수 없는 것, 마음속에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고난의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했습니다. 희망과 꿈이 무르익은 나이 30대의 청년 예수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이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저주스럽고 낭패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참으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 다. 그렇습니다. 참는 우리에게 도 이처럼 열매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이요, 칭찬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과 같은 영광스럽고 신령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다시 부활 및 변화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누릴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앞의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앞의 즐거움을 바라보고 우리 앞에 당한 고난을 잘 참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롬5:3-5,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30년 동안 선교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위험과 질병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맹수(사자)한테 물려서 어깨가 부서질뻔한 위험을 당하여 큰 상처가 나기도 했습니다. 30년 만에 잠깐 영국에 다니려 왔을 때 그의 희생과 헌신을 치하하니까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은헤의 빚에 비하면 무슨 희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나의 특권입니다.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겸손히 대답하였다고 했습니다.
3.고난 당하신 결과입니다.
1)우리의 구속사역을 온전히 이룰수 있었습니다.
5절을 다시 봅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고 하였습니다.
사 53:11,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맞으셨으며,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골고다 언덕에서 끝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마지막에는 옆구리를 창에 찔리셨기에 여러분과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후5:21에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예수)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딛2:14에는 "그가(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19:30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중 에 있는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속의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승리의 선언입니다. 어떤 그림이 한 박물관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그림 저런 그림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때 독일의 젊은 백작 중의 한 사람이 여러 그림을 보다가 어떤 구석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무심히 성화를 많이 보았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 무심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말하자면 그 젊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서 물러 갈래야 물러갈 수가 없어서 오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일을 하였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나냐" 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그 글자가 예수님께서 친히 자기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생각되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생을 당하시고 죽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고 온전히 그 몸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이 분이 우리가 잘 기억하는 모라비안 교회의 진젠돌프라는 사람입니다. 18세기에 많은 피난민을 모아 가지고 그 사람들과 같이 기도하며 그 사람들과 같이 교회를 조직하여 몇 사람 안되지만 온 천하에 선교 운동과 경건 운동을 일으킨 유명한 백작 진젠돌프인 것입니다
2)부활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그로 존귀한 자 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 고난 그것으로 끝나 버리게 하지 아니하시고 마침내는 승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실패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히12:2을 보면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참았습니다. 그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라보는 그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사셨네 사셨 네 예수 다시 사셨네"입니다. 고난을 생각하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참지 못하면 부활의 금메달의 영광을 딸 수 없습니다. 고난을 참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참지 못하면 부활이 없습니다. 고로 사랑하는 성도여, 고난을 당했습니까? 환난을 만났습니까? 질고를 당했습니까? 예수님의 인내를 보십시오. 우리 모두는 성격이 별나서 아주 하찮고 적은 일에도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교훈 합니다. 고난주간에 우리에게 교훈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 고난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벗기고, 때리고, 조롱하고, 끌고 가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침 뱉음을 당하신 주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멸시와 굴욕과 천대를 받으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며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아 계시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와같은 주님을 바라볼 때에 내가 만난 고난이나 절망가운데서도 크게 힘을 얻으시고 용기를 내셔서 다시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우리 앞에 당한 십자가의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뿌리와 신앙의 뿌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제외하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음주일 주님의 부활주일을 준비하면서 고난주간을 지킬 것입니다. 고난 당한 성도여, 참으십시다. 굉장히 힘든 일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참으십시다. 고난 당하신 우리 주님.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참으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