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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감사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골4:2-14)

작성자바다라기|작성시간12.05.10|조회수878 목록 댓글 0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은 '누가'라고 하는 의사입니다. '누가'에 대한 기록은 성경 가운데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골4:14에 보면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 1:24에 보면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디모데후서 4:10-11에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미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누가'는 복음 전도가 거둔 귀한 열매였습니다. "빛나다, 총명하다"라는 뜻의 ‘누가’는 이방사람으로 이방인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안디옥에서 예수 믿고 안디옥 교인이 되었습니다. 안디옥은 '바울'과 '바나바'가 목회하던 곳입니다. 거기서 '바울'과 '바나바'를 만나 새롭게 영혼이 거듭났습니다. 그는 의학과 학식을 갖춘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 땅인 수리아 안디옥 출신의 '누가'는 유능한 의원이었고, 동시에 뛰어난 필치를 지닌 문장가였습니다.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한 헬라인으로서 그는 이처럼 이방인으로서 성경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눅1:3, 행1:1).

 

 그는 '바울'에게 사랑 받은 의사로서,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A.D.50-52년) '바울'과 함께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동행하며 전도에 참여하였고,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 가이사랴로 가서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함께 있을 정도로 그는 열심 있고 의리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딤후4:11, 몬24). 그는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할때까지 함께 있었으며 그후 20년동안 헬라지역에서 복음을 중거하다 불신자들에 의해 붙잡혀 80-84세 때 올리브 나무에 달려 교수형을 당함으로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1. 의학적인 재능을 선용하여 '바울'의 복음사역에 동역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골 4:14)고 기록하여 '누가'가 의사(의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는 안정된 수입과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포기하고 바울과 함께 복음전파 일선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특별히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바울'이 순교하는 순간까지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바울'과 제2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면서 이처럼 '바울'의 지병을 담당한 의사이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의 연약함을 아시고,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의사를 동역자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로마제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했던 '바울' 일행은 각종 풍토병과 계절병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고된 전도여행을 하며 크고 작은 육신의 질병도 앓았습니다.


 이럴 때마다 '누가'는 자신의 의술로 '바울'을 정성껏 돌봐주었고, 다른 믿음의 형제들도 돌봐주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투옥 생활을 할 때에도 '누가'는 곁에서 정성껏 그를 돌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누가'를 가리켜 ‘사랑 받는 의원’이라 칭했습니다. 자신의 사랑과 형제들의 사랑 뿐 아니라 정녕 주님의 사랑도 듬뿍 받는 의원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렇게 '누가'는 가장 의미 있게 자신의 의술을 펼친 복된 의원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철학박사였고, 음악박사였습니다. 신학박사였습니다. 유명한 저술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실력은 온 유럽이 흠모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의과 대학에 들어가서 5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람바레네에 가서 일평생동안 흑인들을 위해서 살다가 삶을 마쳤습니다. '리빙스턴'도 대부분 탐험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 온 선교사인 '알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의사였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자식 잘 키우면서 살 수 있었지만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이 열악한 나라에 와서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일신기독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 선교부에서 이 땅에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 생각하고 많은 의료선교사들이 들어 와 남겨놓은 흔적들인 것입니다. 이런 의사들이 돈을 얼마든지 많이 벌수 있는데, 편안한데, 자기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자기 직업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이고, 또 그들 때문에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것입니다.


2. 문학적(지삭적)재능을 선용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초대교회의 유일한 자료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으며 그 두 권의 책은 신약 중에 가장 문학성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여러 차례 전도여행에 따라다니며 '바울'의 의사이자 뛰어난 저술가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에서 저술은 탁월한 은사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누가'를 통하여 이 땅에 주신 최대의 걸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들은 불후의 기록이 되어 오늘도 잠든 영혼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누가'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유일하게 신약성경의 한 저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복음서(누가복음)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외에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도 썼습니다. 이 두 책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누가'는 '예수'의 삶을 좇아 복음서 한 권을 썼고(누가복음), 사도들의 행적을 따라 역사서 한 권을 기록했습니다(사도행전).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누가'는 다른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알리기 위한 불타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모은 자료를 면밀히 검증하여 위대한 책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탁월한 문장력과 정교한 운율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거듭 기도의 중요성과 성령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누가'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러한 기도에 대해서 강조했으며 기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진정 기도는 우리를 세상풍파에 쓰러지지 않게 하는 영적 활력소인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11:9).

 

3. 변함없이 충성된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변함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성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얼마 못되어 스스로 시험에 빠져 형편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언제나 변함없이 충성된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바울'과 '누가'와 '바나바'와 '마가'가 함께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당시 좀 젊었던 '마가'는 밤빌리아 버가라는 지방에 와서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복음전도가 어려웠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에서는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돌로 바울을 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돌에 맞아서 '바울'이 죽게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던져버렸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다시 살아서 복음을 계속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들의 전도여행은 밥을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재워주면 자고 안 재워주면 노숙하고, 때리면 맞고 쫓겨다니는 그러한 삶을 감당해야 하였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바울'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6:11에 보면 그가 드로아에서 합류해서 2차 전도여행을 갑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을 합니다.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갑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며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약 2년 동안 '바울'을 돌보며 같이 있었습니다. 행27장 이하에 보면 '바울'을 따라서 로마로 가는데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열 나흘 동안 살 소망이 끊어질만큼 극심한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골로새서에는 '바울'이 로마에 와서 옥에 갇혀있는데 '누가'도 함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으면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쓸 때 있었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1차 투옥되었다가 그 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소위 옥중 서신이라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잠시 석방되었다가 다시 투옥되어 두 번 째 투옥되었을 때에 디모데전서와 후서를 쓰는데 이것은 마치 자기의 유언장과 같은, 최후의 진술같은 글들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보면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미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옥중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여서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첫 번째도 함께 옥에 갇혔지만, 두 번째 로마 옥에도 함께 갇혔습니다. '누가'는 옥에 갇힐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바울'을 도와주느라고 같이 있는 것뿐입니다. 그 두 번째 옥에서도 끝까지 '바울'을 도와서 위로하며, 모두가 떠난 그 장소에서 '바울'을 도왔습니다.


 요즘도 교도소 생활이 어려운데 그 당시에는 어떠했겠습니까? '바울'이 그 때 수감된 감옥은 지하감옥이었습니다. 얼마나 습기가 많고 또 차가운지, 파피루스에 쓴 종이성경은 떨어지고 처질 수밖에 없어서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지하감옥이 얼마나 습기가 많이 찼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바울'이 갇혀있는 지하감옥은 습기가 차서 축축했고 너무도 추운 감옥이었습니다. 이런 고생 때문에 다 떠나갔습니다. 오직 '누가'만이 그의 곁에 남아서 그를 위로해주고 그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누가'는 이처럼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바울'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런 생활을 일 이년만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바울'곁에서 위로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디모데'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떠났지만 '누가'만은 끝까지 있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숱한 고난 속에서도 낙망치 않고 '바울'의 위로자가 되어주었고, 모든 수고를 감내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바울'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누가'였습니다. 무능하기 때문에 '바울'에게 빌어먹기 위해서 끝까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갈 때가 없어서 '바울'에게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좋은 의술을 가진 의원(의사)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속적인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대우받고 어디서나 존경받고, 어디서나 편안하고, 어디서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의사인 '누가'였지만 그는 복음을 위해서, 바울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모든 기득권을 다 포기해 버리고 배고픔과 헐벗음과 생명의 위험과 갖가지 멸시와 천대를 복음 때문에, '바울' 때문에, 주님 때문에 받기로 결단하고, 순교의 자리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4. 복음을 전한 '누가'였습니다.
 '누가'는 복음전파를 도울 뿐 아니라 직접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의사로서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헬라의 문장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숫자를 정확하게 압니다. 보통사람이 그냥 넘기기 쉬운 것도 자세하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글을 써서 한 사람을 믿게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쓴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하게 은혜를 주셔서 온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지만 그가 본래 펜을 들어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데오빌로'라는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데오빌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의 믿음이 더 장성하게 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4분의 1이나 되어집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이처럼 그는 많은 시간과 물질과 그의 정력을 쏟아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한 영혼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힘을 기울인 '누가'였습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지체 높은 '데오빌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인맥을 통하여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주어진 직장이나 삶의 환경 가운데서 어찌하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누가의 삶을 본 받아서 우리도 내 직장이나 나의 삶의 환경을 통하여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한번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겸손한 누가였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누가'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전도여행의 여러 코스를 동행하면서 '바울'을 극진히 수종들었습니다. 사도행전 곳곳에 보면 '누가'는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행16:11-17,20:5-15,21:1-18,27:1-28:16). '우리'라는 이 명칭은 사도행전의 저자로서의 '누가'가 '바울'이 가는 사역지마다 동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도중 드로아에서 '바울'을 따라나섰습니다(행16:10-11). 그리고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귀로에서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같이 갔습니다(행20:6,21:17). 그 후 로마로 '바울'이 호송될 때도 동행하였습니다(행27:1-28:16). 그리고 '바울'의 최후 로마 옥중생활까지 함께 하였습니다(몬24절,딤후4:11). 그는 신체적으로 허약한 '바울'의 건강을 철저하게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마다 수많은 성도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였습니다.


 '누가'는 언제나 자신의 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바울'의 목적이 자기의 목적이었고, '바울'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었습니다. '바울'의 소원이 자기의 소원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서 '바울'을 그와같이 돌봐주지 않았다고 하면 '바울'의 선교에는 심각한 차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바울'을 따라서 수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자기가 무슨 공적을 세웠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어 생색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고작 하는 말은 '우리'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는 '바울'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항상 '바울'의 조력자로서 만족하며 '바울'을 돕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고, 목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가 '바울'에게 있으면서 '바울'에게 듣고 배운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이 탄생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장에 있어 사도행전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누가'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처럼 아주 겸손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삶을 산 '누가'였지만, 그리고 그렇게 긴 성경을 썼지만 저자인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 속에서 "사랑 받는 의원 누가"라고만 소개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으로 큰 일을 하고도 자랑하는 것 때문에 다 까먹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마 안되는 봉사를 하고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 때문에 남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렇게 큰 희생을 하고도, 이렇게 큰 일을 하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의원 누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무리 큰일과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누가'처럼 사랑 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 성(聖) 누가 병원이 얼마나 많이 세워졌습니까? 누가복음을 통하여 예수 믿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교회가 얼마나 성장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들도 나의 직장과 나의 환경과 나의 삶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여서 제 2의 누가, 제 3의 누가. 제 4의 누가로 사랑 받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의술로 아픈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준 사랑받는 의사요, 하나님이 주신 뛰어난 필치로 예수의 탄생에서 부활까지 사도들의 전도에서 순교까지 그리고 초대 교회 불멸의 기록들을 고이 기록한 당대의 문장가였고, 바울과 더불어 끝까지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의 낱낱의 행적을 옮겨 적어 인류 앞에 불멸의 증거를 남기었습니다. 그는 이름 뜻 그대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총명한 인물이 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작은 재능들이 누가처럼 아름답게 쓰여져서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을 일깨울 수 있고, '누가'처럼 성령 충만하고 굳세고 충성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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