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세가지로 성경에 나타나는데 '마가라 하는 요한'(행 12:25)으로, '요한'으로(행 13:5), '마가'로(행 15:39)로 쓰여졌습니다. 이는 히브리식 이름인 '요한'이 본명이고 '마가'는 로마식으로 개명한 이름으로 그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 하에서 이방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함으로 흔히들 두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가'(Mark)라는 이름은 '망치'를 의미하는 '마루크스(Marcus)'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의미는 돌을 깨뜨릴 만큼 강한 정신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어려서 죽었음으로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바나바'와 친척간으로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었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와 아저씨의 영향을 받아 신앙으로 자라나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가 다락방"이라 불리우는 자기 집에서, 자주 신앙적인 모임을 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했습니다. 그중 많은 모임 가운데서도 특히 예수님의 최후만찬의 모임을 비롯해서 오순절 120문도가 성령충만함을 받은 장소도 바로 이곳이었음으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도 주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갈망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많았음으로 자연히 사도들의 하는 일에 수종드는 것을 행해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도 70인 제자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말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기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아(막14:50-52) 그가 열심히 주님을 좇았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0세 정도였을 것이며 그의 공생애의 출발은 오순절 이후 13년경, 유대지방에 큰 기근이 있을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전하러 내려온 그들과 함께 안다옥 교회로 따라가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대략 33세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1차전도여행을 떠나서 구브로 섬을 거쳐 밥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전도팀을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마가의 그의 이런 결정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작 전에 크게 싸우고 다투는 계기를 야기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미숙함으로 인해 자신은 아저씨인 '바나바'와 더불어 구브로섬으로 다시 선교여행을 떠난 반면에, 바울은 실라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며 그들은 결국 이 시점에서 사역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주로 사역지가 블레셋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던 '베드로'를 따라 다니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룬 후 10년 후쯤 '사도바울'을 다시 만나 성실히 섬긴 결과 '바울'이 아끼는 인정받는 일꾼중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로마 옥중 생활에도 함께 지내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골4:10).
그후 '베드로'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장면을 보았고 (A.D.65) 이어서 사도바울이 또한 로마에서 목이 잘리는 순간을(A.D.67) 목격한 그는 "마가복음"을 집필하고(55세), 여러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A.D.68), 그 이후에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로 내려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창립하고 그곳에 감독으로 생활하다가 나중에는 그의 나이 60-70세 때, 사도들의 뒤를 이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분골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니스로 옮겨져 "성 마가 성당"에 묻혔다고 합니다. 비록 실수로 시작한 사역이었으나 나중에는 대 사도들 못지않게 훌륭한 업적을 남긴 '마가'였습니다.
1.열심을 갖고 따라나선 마가였지만, 중도에서 되돌아갔습니다.
1)주님을 따를 때에도
'마가'는 인간적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열심과 사랑은 있었지만 그는 큰 시험과 핌박이 올 때는 넘어지고 물러가는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베훗이불(고급 세마포옷)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던 사람입니다(막14:51-52). 그는 원수들에게 잡혀가시는 주님을 따르다가 군병 하나가 마가를 이상히 여겨 잡으려고 했습니다. 순간 마가는 두려웠습니다. 그래해서 그는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여 따랐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주님 따르기를 포기하는 경우를 봅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온전한 신앙은 변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온전한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히3: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처음 시작한 것을 확실히 끝까지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의 약점은 시작은 잘했으나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싶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벗은 몸으로라도 주님을 따라나서는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2)사도바울의 전도팀을 따를 때에도
이런 '마가'의 약점은 '바울'과 전도 여행을 동행하였을 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1차 전도여행시 도중에 힘들어 '바울'의 곁을 떠났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전도 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예루살렘의 집에 머물던 '마가'는 그 삼촌인 '바나바'를 따라 안디옥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행12:25). '마가'는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사울'과 함께 지내다가 두 사도가 안디옥 교회에 의해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갈 때 함께 나갔다가 살라미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거기서 두 사도는 마침내 '마가'를 자신들의 "수종자"로 선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행 13:4-5).
"수종자"는 "받들어 섬기는 자" 또는 "협조자"라는 뜻입니다. '알포드'라는 신학자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세례 베푸는 일을 도왔으며 전도 여행의 경비를 관리하고 전도사역의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맡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를 수종자로 두고 '바울' 선교팀은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루기아에서 배타고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살라미에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구브로 섬을 중앙으로 약 180km를 횡단하여 남서쪽에 위치한 바보라는 도시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라는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마가 요한'이 일행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마가'가 이처럼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를 성경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바울' 전도팀을 이탈하여 예루살렘의 자기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당시 '바울' 전도팀의 구브로섬의 사역은 순탄하였으나 소아시아의 밤빌리아 버가는 해안에서 130Km 떨어진 곳이며 그 일대는 험난한 산악지대로 다음 선교지로 이동하는데 엄청난 도보의 고통과 위험이 수반되는 길이었다는 것을 볼 때 당시 그들의 전도여행의 노정은 힘들었으며, 역경과 궁핍을 수시로 당했고 사방으로 위험을 당했으므로, 그로인한 어려움에 익숙지 않았던 '마가'는 선교지의 여행과 수고와 위험보다는 가정의 안락과 안전을 더 선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 사건은 은혜 가운데 선교활동을 하던 바울 일행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마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교팀 전체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가'를 대단히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팀에 참여했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전도팀을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마가'는 그 후 자신의 경솔한 행실과 처신을 반성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가'는 이전의 연약함과 실수를 만회하고 주님의 일에 다시 한번 귀중하게 헌신하기 위하여 2차 전도여행시에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다시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가'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행15:36-41에 보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다시 2차 전도여행을 계획할 때 "마가 요한"이 2차 전도 여행 때 다시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바울'에 의해 거절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는 '바나바'의 말을 용납치 않고 심한 의견 대립을 벌이다가 결국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결별하여 따로 따로 전도 여행(바울은 실라와 바나바는 마가와)을 하는 것을 보면 '마가'는 '바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쓰십니다. 실수하고 실패한 사람 마가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귀중하게 하나님의 사역에 쓰셨습니다.
1) 바나바와 함께 쓰셨습니다.
2차 전도여행시에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제멋대로 행동한 '마가'를 다시 데려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한 번 실수했지만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심한 의견 대립을 보이다가 결국은 서로 갈라서서 전도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습니다(행15:39). 그리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갈리기아로 떠났습니다.
2) 바울과 함께 쓰셨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도무지 못마땅해 했지만 오래 동안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마가'가 한 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심기일전하여 '바나바'와 더불어서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마가'를 자신의 사자로 골로새 교회에 파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바울'이 이미 '마가'를 용서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아니 단지 용서하는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가'를 신임하여 자신의 사자로, 즉 자신을 대표하여 그를 골로새 교회로 파송하였던 것으로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골4: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리스다고'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와 함께 '마가'를 언급하며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과 함께 역사하는 자들로서 자신의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후4: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볼 때 현재 '마가'는 '바울'과 떨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마가'를 소아시아 교회에 파송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하여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디모데'에게 부탁하여 자기에게로 올 때 '마가'도 함께 데려오도록 부탁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표현대로 "저가 나의 일(사역)에 유익하니라" 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 '마가'는 분명 '바울' 자신에게는 무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확실히 변화되고 성숙한 마가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서 24절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자신의 동역자로 자신있게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가'의 실추된 명예는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보입니다.
3) 베드로와 함께 쓰셨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와도 깊은 동역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전5:13에서 '베드로'는 '마가'를 가리켜서 "내 아들 마가"라고 표현합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마가'를 자신의 아들로 부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베드로'와 '마가'는 영적인 부자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마가'가 '베드로'에게도 유익한 인물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편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이었다고 전해집니다.
4) 마가 복음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증거한 것처럼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이었기에 '베드로'의 순교 후 '베드로'가 설교한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달라는 로마교회의 요청을 받고 기록한 것이 바로 "마가복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결국 '마가'는 성경의 저자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도 의하면 복음서 중에 두 번째 책인 "마가 복음"을 이 '마가 요한'이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을 읽고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은혜를 받았을까!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창립하고 감독으로 생활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후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로 내려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창립하고 그곳에 감독으로 생활하였습니다.
6)순교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그의 나이 60-70세 때, 사도들의 뒤를 이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분골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니스로 옮겨져 "성 마가 성당"에 묻혔다고 합니다.
'마가'는 이와 같이 실패와 실수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마가'를 하나님의 사역에 귀중하게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번의 실수와 실패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실패가운데서도 다시 재기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변함없이 귀중하게 헌신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가'처럼 쉽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다시 귀중하게 들어 쓰십니다. 비록 '마가'는 실수가 많고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바나바'와 '베드로'와 '바울'을 도와 함께 사역했으며, "마가복음"을 저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창립하고 감독으로 생활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순교로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던 것입니다. '마가'는 이처럼 비록 실수로 시작한 사역이었으나 나중에는 대 사도들 못지않게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