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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성도들의 영적인 신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으로(마5:13), "세상의 빛"으로(마5:14), "그리스도의 종"으로(고전7:22), "그리스도의 편지"로(고후3:3), "그리스도의 사신"으로(고후5:20), "그리스도의 군사"로(딤후2:3),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성도들의 신분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주유소에 가면 기름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병원에 가면 소독약인 크레졸의 냄새가 풍겨납니다. 식당에 가면 반찬냄새, 국냄새가 어우러져서 납니다. 절간에 가면 향냄새가 독하게 납니다. 이렇게 각 장소마다 그 특유의 냄새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많은 냄세와 숱한 향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향기도 있지만 악취도 있습니다. 똑같은 병에 참기름을 넣으면 참기름 냄새가 날 것이고, 간장을 담으면 간장 냄새가 날 것이고, 화장품을 담으면 화장품 냄새가 날 것입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각각 다른 냄새가 납니다. 사람도 그 속에 부처가 있으면 부처의 냄새가 날 것이고, 공자가 그 인격을 지배하면 공자의 냄새가 날 것이고, 공산주의자의 창시자인 칼 막스가 그 마음을 지배하면 칼 막스의 냄새가 날 것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지배하면 예수님의 냄새가 우리에게서 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어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성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야 합니다. 향기는 만질 수도 없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무게를 달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향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이 향기는 내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생명과 성령으로 살아계시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하나님이 나게 하십니다(고후2:14).
페르시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순례자가 한 덩이의 진흙을 발견했는데, 그 진흙이 몹시나 향기로워서 온 방안에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순례자는 놀라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한 덩이의 진흙에서 나는 이 놀라운 향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드디어 순례자는 그 이유를 찾아내었습니다. 이 진흙은 백합과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진흙은 단순한 진흙에 불과했지만, 백합과 함께 있으므로써 백합이 가지고 있었던 그 아름답고 놀라운 향취를 방안에 가득 풍길수 있는 흙이 되었던 것입니다. 진흙 속에 배어 있는 백합의 향기,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인의 향기인 것입니다.
1.그리스도의 냄새를 가진 성도 고린도교회는 매우 타락한 도시에 세워졌습니다. 항구도시들이 그러하듯이 성적타락과 우상숭배가 극성스러웠던 곳이 고린도 도시였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고린도 교회도 처음에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고린도후서를 다시 쓰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고후2:14,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고유의 냄새를 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고유의 냄새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냄새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예수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냄새가 나는 삶이 무엇입니까? 복음적인 삶입니다. 복음에 의하여 사는 삶, 복음이 이끌어 가는 대로 사는 삶. 복음으로 살고 복음을 전하고 사는 삶,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복음의 향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에게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길만한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와 마귀와 사망의 지배를 받아 악취만을 풍기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이제는 그리스도의 냄새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 생명을 지배하고, 차지하셨기에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입니다.
2.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1)주님이 우리속에서 왕노릇해야 합니다. '노먼 필' 박사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헐값으로 조그마한 토기를 샀습니다. 그 토기 속에 장미 향수를 넣어 두었는데 얼마 후에 보니 향수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어느날 그 토기를 잘못 관리해서 마루 위에 떨어뜨렸는데 산산조각 났는데, 하나 하나의 파편이 계속해서 장미 향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사람도 토기처럼 평범한 흙으로 지어진 질그릇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질그릇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향기의 내용이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질그릇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고 하면 그의 말이나 눈짓이나 얼굴, 행동에는 온통 고상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가 풍겨 나오지만 시기, 질투, 미움이 속에 가득 담겨있다면 말이나 눈짓이나 얼굴, 행동에도 온통 고상하지 못한 미움의 악취가 풍겨 나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며 나올 때마다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어들어 이제는 더 이상 진흙의 냄새가 아닌, 더 이상 토기의 냄세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와 향기가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속에 누가 있습니까? 정말 나의 속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으며 땅 끝까지 낮아져서 나의 구주가 되신 그 사랑과 겸손과 은총의 주님이 나를 지배하고 나의 왕이 될 때, 나의 구주가 될 때, 나의 생명이 될 때, 나의 빛이 될 때, 나는 그 예수가 나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향기로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오 주님,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가고 들어가게 하소서. 그리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속에 깊이 배어들게 하소서. 십자가의 향기가 배어들게 하소서. 그래서 온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자신을 비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낮추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서 오직 예수님의 냄새, 예수의 향기만 나게 하소서."
2)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그리스도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의 전도팀들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승리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이지 날마다 죄와 세속에 묻혀 살면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만이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성도는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나타낼수 있는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그리스도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에 성도는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불평을 감사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는 성도가 향기를 나타내는 성도입니다. 요셉의 경우, 욥의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어떤 영국 목사 한 분이 월요일 아침 일찍 교회에 있는 집을 나와 런던 시내 중심가에 있는 교회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사에게 차비를 내면서도 그 목사는 교회 일 생각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에 앉아서야 그 운전사가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은 "하나님께서 내게 돈을 더 주시는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양심이 소리높여 아우성을 쳤습니다. 드디어 교회 근처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서 걸어나온 이 목사는 운전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까 기사 양반이 잘못해서 내게 거스름돈을 더 주었더군요." 이때 운전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못 거슬러 드린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제 목사님 교회에 가서 정직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시험 해 보려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1930년,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 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걸고 한 모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는 조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서른 몇 시간 동안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다음에 파리를 한번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 회사 사장이 "이것 참 좋은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기 회사 담배를 광고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린드버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담배 한 개피를 주면서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잡아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불을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반세기 전에 5만 불이라면 대단한 액수입니다. 담배라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담배라는 용어가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피워도 그만이고 안 피워도 그만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죄가 된다, 안 된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반세기 전에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철저히 금했고, 심지어 죄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사회를 더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깨끗한 공기만 들이쉬라고 구멍 두개를 뚫어 주셨는데 그것으로 연기통을 만들고 있으니 좋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할 수 있으면 피우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담배 회사 사장이 그렇게 엄청난 제안을 하자 '린드버그'가 얼굴 표정을 싹 바꾸고 이런 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받은 교인입니다." 이 말이 파리 신문에 기사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당시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자기들이 성금을 모아서 10만 불을 린드버그에게 갖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3.이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각처에서'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향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가진 약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각처에서 향기를 나타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각처란 가정과 교회와 세상,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모릅니다. 모두가 성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교회 문만 벗어나면 세상사람으로 둔갑을 합니다. 집에서는 완전히 불신자로 살아갑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각처에서 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예수 향기", 가정에서도 "예수 향기", 세상에서도 "예수 향기"를 고루고루 나타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향기는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용서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승리하시는 생활과 함께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지으신 우리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4.그리스도의 향기의 반응 본문 16절에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향기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향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군대의 개선행진을 연상하면서 복음의 양면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은 로마의 개선행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에게는 개선식을 베풀어 최고의 영예를 안겨 주었습니다. 물론 이런 대대적인 환영식을 통해 다른 장군들에게나 부대에게 큰 도전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최고의 영예를 주는 개선식에는 로마의 원로들이 앞장서서 나가고, 그 뒤에는 나팔수들이 승전가를 부르며 가고, 다음에는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들이 운반되고, 그 뒤에는 포로들이 쇠사슬에 매인 체 끌려갑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로마의 군인들이 행진을 하고, 군인들의 뒤에는 향기로운 향을 태우는 향로를 가진 제사장들이 행진을 합니다. 맨 마지막에는 네 마리의 흰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탄 개선장군이 머리에는 월계관을 쓰고 위풍당당하게 행진을 합니다.
바울은 이런 개선행렬을 보면서 개선행렬에서 풍겨지는 향이 승리한 군인들에게는 생명의 냄새요, 기쁨의 냄새로 작용하는 것을 보았고, 포로들에게는 그 향이 풍겨질 때 죽음에 이르는 냄새였음을 익히 알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건을 통해서 복음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도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을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멸망 받을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토리'(R. A. Torry)박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중 옆에 앉은 청년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였더니 그 청년은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가 있는 상점 주인은 어느 교회의 유력한 교인인데 그 사람이 믿는다는 것과 그 사람의 실행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그것을 보면 기독교라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종교가 아닌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고 노력을 드리며 예수를 믿을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며 예수 믿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유명한 탐험가이며 유명한 선교사인 '리빙스턴'의 사업을 실지로 목격하고 그것을 세계에 보고한 '헨리 스텐리'의 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는 런던에서 유명한 무신론자였는데 중앙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리빙스턴'을 찾아가서 4개월간을 같이 지냈습니다. 왜 '리빙스턴'이 호화로운 영국에서의 생활을 등지고 그 암흑의 대륙에 가서 저렇게 외로이 지내며 불철주야 심혈을 기울여 전도를 하는가 이상히 여겼고, 무엇으로 인해 문명한 런던을 버리고 야만의 아프리카에서 저렇게 고생을 하며 복음을 전할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물론 명예도 돈도 권리도 지위도 아님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와 4개월을 지나는 동안에 "너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렇게 암흑의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백인이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전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리빙스턴'은 고의로 '스텐리'를 회개시키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의 사랑, 열심, 온유, 겸손, 섬김, 경건을 통하여 발산된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였던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헌신한 '맥스웰'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도 선교를 하기 위해서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말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가 한 지방에서 그곳 힌두교인을 붙잡고 그 지방말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수고비는 원하는대로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힌두교인은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었습니다. "당신하고 함께 있어서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입니까?
한번은 '피터보로우'라는 회의주의자가 한 여관에서 '훼네론'이란 신자와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자고나서 아침에 떠나며 하는 말이 "저 사람과 하루만 더 있으면 나도 기독교인이 될 염려가 있으니 떠나야겠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훼네론'이란 신자가 어찌나 진실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던지 그 얼굴과, 그 음성과, 그 태도만 보고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만큼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구원받도록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아니면 아무리 그리스 예수의 좋은 향기를 이처럼 풍겨도 예수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인생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를 맡을 때 예수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하는 것은 복음이 가장 기쁘고 유익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망에서 자유하였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신분의 변화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복음, 똑같은 향기지만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저들은 복음을 듣고 고의적으로 복음을 배척합니다. 교만하여 생명의 복음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똑같은 복음을 전하는데 어떤 무리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며 생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베드로가 전하는 복음, 행2:37).
그런데 똑같은 복음을 들으면서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가는' 무리들이 있습니다(스데반이 전하는 복음, 행7:54). 똑같은 복음의 똑같은 예수의 향기를 맡고 회개하는 무리는 생명에 이르는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향기를 맡고 전도자를 향하여 이를 갈고 배척하는 무리들은 사망을 선물로 얻는 저주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이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생명으로 약동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복음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면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예수의 냄새, 예수의 향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 인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각처에서 예수의 냄세,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예수의 인격을 닮아가서 예수의 냄세,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나의 삶 속에 왕으로 모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와 사단과 시험의 역사와 싸와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은 생애를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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