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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그리고 감상

외딴방 - 신경숙

작성자천병남|작성시간26.06.13|조회수23 목록 댓글 0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정릉에서 구로동으로 이사를 왔다. 밤 늦게 야반도주를 하듯 이사를 했다. 어머니와 나 아비지와 형 우리는 네 식구였지만 이사는 어머니와 나 둘이서만 했다. 늦은시간 트럭을 타고 왔는지 기억이 없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담벼락 너머에서 아이들이 떠들던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나는 한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행정실인지 교문실에 갔을 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어머니는 공단에 있는 애자공장에 다니셨다. 며칠이 지난 후 어디선가 돈을 마련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어린시절 무척 외뤄웠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 집에 오셨고 그때까지 어머니를 기다리며 외로움을 달랬다. 점점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있다. 그 친구들과 아직도 산도 다니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으며 내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형님도 공돌이였고 어머니도 공단에서 일하셨다. 국민학교 6학년에 아버지를 여의였던 나는 새벽에 신문을 배달했다. 나는 겁이 많은 어린 소년을 생각해본다. 어두운 새벽길을 더듬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깜짝 놀라던, 신문사절이란 팻말이 붙허있던 문틈으로 살짝 신문을 집어 넣던 모습을 힘들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나는 공장을 다니지 않았고 상고를 나와 은행에 입행하는 행운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순간 결혼하고 얘를 낳고 60이 넘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나, 되돌아보면 그 소년시절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신경숙처럼 소녀시절을 건너 뛰고 처녀가 되진 않았다. 그녀의 아픔이 죽음을 마지한 친구에 대한 회한과 슬프인지 그 시절을 힘겹게 살았던 본인의 생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시절 우리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시절의 어려움이 추억이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아프다, 빛나야 할 어린 청춘들이 기계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분투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세월을 버텨왔고 우리의 역사를 써왔다. 시간이 좀더 흐르면 바래진 그 시절이 추억으로 내 얼굴에 미소로 찾아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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