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씀’이 나에 대한 그대의 사랑을,
그 믿음을 깨뜨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그대에게 말하노니,
2천 년쯤 전에,
‘나의 이데아’가 표현되는 과정에서,
‘내 신성의 실재’를 보여줌으로써
‘나의 인간적인 속성들’에게
그들의 지상적인 업무를 다시 한 번
호소할 필요가 있게 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의 신성한 속성들’이 개성을 입은
한 인간으로 표현되어 나타날 필요가 있었다.
그들 인간의 마음과 지성이 ‘내 신성의 실재’를 알아보고,
기억하고, ‘내면의 나’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들 인간의 개성들을 통해서도
‘나의 이데아’가 표현되고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러한 목적으로 내가 창조했던
‘그’의 인간적인 개성을
상징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개성을 입은 모든 인간들이
통과해야만 하는 것들을 그대 앞에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나의 인간적인 속성들’이 다시 한 번 ‘나’와 더불어,
‘내 이데아’를 깨어 있는 마음으로 충분히 표현할 만큼,
‘초자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면에 있는 ‘내가’,
‘나’에 대한 현존으로 그대들 모두를,
‘나의 인간적인 속성들’을 흔들어 깨우기 이전에,
그대의 ‘신적인 자아’는 ‘순결한 사랑’으로,
남루한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나는 것이
마땅하리라(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장소,
이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진 겸손하고도
회개하는 마음의 장소요,
인간이나 짐승의 성품이 도달해야만 하는 존재의 상태이다).
그대의 ‘신적인 자아‘는 어둠의 장소(분별하고 헤아리는 지성의 장소)로
달아나는 것이 그 다음의 순서이다.
거기에서 그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나고,
내면에서 ’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
그대가 ’나의 권능‘과 ’나의 사랑‘을 충분히 의식하게 될 때,
’나‘는 그대를 통하여 ’지혜‘와 ’진리‘의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것은 세상에 배운 자들을,
심지어는 율법학자들마저도 당황하게 만든다.
뒤이어, 탐구와 명상의 기나긴 기간이 오개 되고,
그런 기간을 통해 마음이 성숙되고,
’영혼‘이 계발된다.
그대는 이제 내면에서 ’진정한 나’를 의식할 만큼 충분히 무르익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나’에게로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다.
‘그대와 내가 하나‘라는 의식에 완전히 깨어 있게 되고,
아무런 분리도 없게 되며,
’내가 곧 그대의 참자아‘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때부터는 그 동안 숨어 있기만 했던
’참다운 내가‘ 전면에 나서서,
그대의 삶의 온전한 주인공이 된다.
그때 나는 그대를 바깥으로 이끌어내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내가‘ 드러내어 보여진 다른 책에서는,
’광야‘라고 불렸던 그곳으로,
거기에서 ’나‘는 그대를 시험하여
더 강하게 단련시킨다.
’나의 신적인 속성들‘을
’초자아적으로‘ 사용하도록 그대를 길들인다.
’권력‘과,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과,
’돈‘이라는 세 가지 큰 유혹을 그대 앞에 끠운다.
그리하여 그대는, 덧없는 지식이, 덧없는 자아가,
밖에서부터 오는 덧없는 것들이,
내면에 있는 ’나‘를 잊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내 목소리‘임을 나타내 보인다.
’내 목소리‘만이, 그대의 가슴안에서든 그대 형제들의 가슴안에서든,
오직 ’내 목소리‘만이,
그대가 지금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임을 나타내 보인다.
이렇게 그대가 입증해 보이고 나면,
그대는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되고,
군중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믿지 않는 자들과
세상을 조롱하는 자들의 비난과 학대가 뒤따른다.
’세상의 법‘을 상징하는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의 재판,
사형 판결,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에 오르는 여정,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
극심한 고통과 탄식, 무덤 속에 갇힌 사흘,
그리고는 마침내는 부활에 이르게 된다.
그때에야 그대는 ’나‘와 더불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적인 의미를 지니고,
’영혼‘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대가 만약 ’나‘를 향해 가슴이 열려 있다면,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그대가 걸어야 할 ’길‘이.
’나의 가르침‘을 탐구하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걸어야 할 ’길‘이,
과거엔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 때가 왔다.
나는 그대와 다른 많은 이들을 위하여 새로운 ’섭리‘를 예비해 왔으니,
그대는 이제 ’초자아적인 길‘을 걸음으로써,
직접, 그리고 ’즉각’,
‘나’에 대한 의식으로 들어설 수 있다.
인간적인 개성이 아우성치며 요구하는 것들을
치워 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기만 하다면,
그대의 ‘진정한 나’는,
그런 개성들에게 힘을 부여함과 동시에
바깥세상의 유혹과 영향에서 벗어나
초월할 수 있는 힘 또한 주신
근원적인 존재와 ‘하나’임을 알기만 한다면,
그들이야말로 ‘내 신성한 이데아’의 영광과
경이로움을 세상에 펴기 위해 내가 선택한 자들이다.
‘참자아 의식’인 그리스도는,
그대의 가슴에서,
모든 인간의 가슴에서 태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자라고, 성숙하여,
예수가 자신의 삶 속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모든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야만 한다.
그대가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그의 삶 속에서 보여주었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본보기는,
그대가 저 ‘사랑’의 과즙을 맛볼 수 있기 위해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든지 구현해야 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 사랑을 단지 사랑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랑과 지혜와 권능’의 삼위일체이다.
‘초자아적 생명’의 표현이다.
그대는 지금껏 ‘초자아적 생명’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초자아적 사랑’의 의미 또한 알지 못했다.
그대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의미를 가만히 느껴보라.
그 느낌을 주의 깊게 분석해 본다면,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정이나
표현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인간이나 그대 개인의 흥미나 관심에
집착함이 없이 사랑의 감정을 품을 수 있는가?
이제, 그대가 가슴으로 ‘나’를 느끼기 시작함에 따라,
‘나’를 품을 수 있을 만큼 가슴을 활짝 열어 놓음에 따라,
나는 경이롭고도 낯선 느낌으로 그대를 채울 것이고,
그것은 그대 존재의 구석구석을 창조적인 충동으로 이끌어,
진정한 ‘생명의 묘약‘을 세상으로 흘려보낼 때,
그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신성한 초자아적 사랑‘의 달콤함을 맛보게 되리라.
또한, 마음이 밝아져서
아무런 한계 없는 무한한 힘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대에게는 에고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리하여 ’나의 신성한 이데아‘를
’초자아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완전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대는 그때 깨우치게 되리라.
그대는 ’나‘의 일부이며,
모든 다른 존재의 일부라는 것을,
그대가 가진 모든 것,
그대의 전 존재가 그대의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내가‘ 지시하는 대로 쓰여지기 위한
’나의 것‘임을 깨우치게 되리라.
그대의 삶은 더 이상 그대 자신의
에고에 초점을 맞추지 않게 되리라.
그대의 에고는 길을 잃고,
그대의 다른 ’자아들‘에 통합되리라.
그리하여 그대에게 ’생명‘과 ’깨달음‘과
’힘‘과 ’본질‘을 기꺼이 선물하리라.
그 모든 것은, 오직 그러한 쓰임새만을 위하여
내가 그대에게 가리켜 보여 왔던
’나의 초자아적 생명‘,
’나의 초자아적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내 안의 나"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