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의 개성을 통하여,
사랑의 ‘초자아적인’ 것임을 많은 부분 보여주었다.
‘그의 삶’과 ‘그의 개성’을 닮으려고
애쓰도록 그대를 이끌어 왔고,
영감을 불어넣어 왔다.
그렇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그대 안에 있는 그리스도 의식이 깨어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는 안지 ‘나’를 향해 열린 문일 뿐이고
통로일 뿐이라는 깨우침을 통하여,
나는 그대를 그 문 앞에까지 데려왔다.
그 문 안으로 들어서서,
깨어있는 마음으로
‘나의 초자아적 생명’의 일부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여기에서 그대에게 분명히 말한다.
‘나의 초자아적 사랑’이란
개인적인 삶이나
개인적인 사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그대 ‘인간성’의 가슴에
‘나의 진정한 사랑’을 퍼부어 주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만물을 포용하고,
만물에 생명을 주고, 만물을 고양시키는 ‘힘’을 표현하는
그 ‘진정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사용하는 것들일 뿐이다.
‘나의 사랑’은
개인이나 개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체스판의 졸(卒)에 지나지 않아서,
‘나의 신성한 이데아’를
인간 안에 완전하게 표현한다는
‘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들이다.
나는 ‘나의 이데아’를
‘인간성’ 안에서만 표현할 수 있다.
그대가 자신의 생각을
인간적인 개성 안에서만,
개성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인간’ 안에 살고,
움직이고, ‘나의 존재’를 가진다.
‘인간’이란
‘나의 불멸의 자아’의 죽어질 개성이요 몸이다.
그대의 개성과 몸이
그대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그대가 사용하는 것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몸을 가진 인간
하나하나의 개성이란,
‘인간이라는 내 몸’의 세포들일 뿐이다.
그대 안의 ‘진정한 내가’,
그대의 ‘진정한 자아’를,
‘그대 안에 있는
나의 이데아’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대의 몸을 지금 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나 자신’의 ‘내 이데아’를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인간’을 점차적으로 지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내 몸’의 세포들 하나하나는,
그대 인간의 세포들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내 생명’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들이 형성하는 기관의 ‘초자아적이고’ 조화로운 부분이 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 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세포가
그 기관의 일반적인 법칙에 반대하거나
거스르는 행동을 한다면,
그래서 그 기관의 조화로운 기능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결국엔 전체 몸에 영향을 미쳐,
질병에 걸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 기관의 세포들 하나하나는
그 기관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하는 일은,
그 기관이 완벽하게 작동되는 데에 기여하고,
결국엔 ‘내 몸’의 완전한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된다.
세포들 하나하나가 내가 준 속성들인
자신의 모든 힘과 지성을,
‘내 몸’ 전체의
완전한 기능을 위해 사용하는 일을
포기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 몸’은 부조화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질병, 고통, 죄, 속박, 가난, 이해의 결핍,
분열, 즉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기관이 내가 부여한
모든 지성과 힘을,
‘내 몸’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조직의 파괴, 분열, 반역,
그리하여 결국엔 전쟁 상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관과 기관 사이에,
기관을 대표하는 세포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크든 작든 ‘내 몸’ 전체의 혼란 상태가 야기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내 몸’ 안에서,
이것은 ‘내 몸’의 ‘기관들‘인 국가간의 전쟁을 의미한다.
모든 전쟁은 극심한 질병이나 부조화 상태일 뿐이므로,
또한 ’내 생명‘은 조화의 상태에 있을 때만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물리적인 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를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환경에 대비하고 있고,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고 있고,
넘치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있다.
’내 생명‘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하는가?
병이 든 부분이나 약해진 세포, 부적절한 세포를
그 몸의 기관에서 점차적으로 전멸시켜 버림으로써,
혹은 질병을 더욱 발전시켜서 극히 해로운 형태로,
예를 들면 고열이나 수종((水腫), 염증, 패혈증,
혹은 변종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렇게 한다.
어느 특별한 기관이 정화되거나
혹은 그 기능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수십억에 달하는 세포들을
그런 식으로 재빨리 처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각 세포와 각 기관의 삶과 역할은,
’내 몸‘ 전체가 완전한 조화 속에서
존재하고 표현될 수 있도록,
각자의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는 데에 있다.
그것이 그들의 진정한 삶이요 진정한 역할이다.
각 세포와 각 기관이 이런 생각으로만 스스로를 가득 채울 때,
그래서 ’나의 초자아적 생명‘이 흐를 수 있도록
순수하고도 비이기적인 통로 구실을 할 수 있을 때,
’내 몸‘은 조화롭고도 완전한 ’전체‘가 된다.
그때, ’나의 이데아‘는
자신의 ’신성한‘ 권능과 가능성을 지상에 펼칠 수 있게 된다.
영원한 천상의 세계에서와 같이.
그대가 자신의 에고를
전적으로 포기하여 ’나‘에게로 돌아설 때,
그래서 ’나의 신성하고 초자아적인 사랑‘을
그대를 통하여 퍼부울 수 있을 때,
’나의 진정한 생명‘인 그 ’사랑‘을
완전하게 표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나는 그대를 통하여
그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울 수 있게 된다.
그대를 통하여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나‘를 깨어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자신들의
에고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나‘에게로 돌아서게 되리라.
그러면 ’인간‘이라는
’내 몸‘의 특별한 부분인
그 기관(그대와 그들이 형성하는)은
완전한 건강과 조화를 구현하여,
’내 몸‘ 전체의
완전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자신의 몫을 다하게 되리라.
그러한 때가 오면,
’나의 신성한 생명력‘,
’나의 초자아적 사랑‘은 인류 전체에 구현되고,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나의 이데아‘는 하늘에서와 같이
지상에서도 충만하게 표현되리라.
지상과 지상의 모든 몸들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물리적인 물질의 세계가 아니게 되리라.
지상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정화되고 깨끗해져서,
다시 한 번 높이 들어올려지리라.
타락했던 그 지점에서부터 솟구쳐 날아오르게 되리라.
왜냐하면 창조의 목적은 완수될 것이기에,
’나의 신성한 이데아‘를 인간과 만물 안에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기관들이 진화되어야 하고,
그러한 고유의 창조 목적은 반드시 달성될 것이기에.
다시는 물리적인 몸을 입은
인간을 매체로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므로,
나는 오직 ’마음의 질료‘만을 갖고
창조하고 표현하게 되리라.
’마음의 질료‘,
이는 ’초자아적 생명‘의 세계인 천상에서
필요로 하는 유일한 매체이다.
“내 안의 나”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