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말해 왔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탐구하여,
‘나’의 옷자락을 잠시나마 붙잡은 것 같지만,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 그대에게 말하노니,
가까이 오라,
그래서 내가 앞으로 말하려는 것들을
그대의 ‘영혼‘으로 들으라.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그대가 만약
’고요해지는 법‘을 배웠다면,
그대 안에 있는 ’신‘으로서의
’나‘를 탐구해 왔고 명상해 왔다면,
그래서 ’그것‘을 그대의 개성적인 ’나‘와 분별할 수 있다면,
그래서 때로는 그대 자신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그대의 개성을 의식하고,
그대의 인간적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실수와 연약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동물적인 탐욕과 정념,
유아적인 욕망과 어리석은 자만심,
자기기만과 철저한 자기중심주의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려 왔다면,
부디 알도록 하라.
그러한 순간들에,
그대는 ’나‘와 ’하나‘였다는 것을.
그대에게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나의 눈‘으로 보게 한 것은,
그대 안의 ’나‘,
그대의 ’참자아‘ 였음을.
그러한 순간들에,
그대는 자신의 개성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이고,
’나의 의식‘ 안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가 원한다면 그것을
’우주 의식‘,
'보편 의식‘, ’영혼 의식‘,
혹은 ’초자아적 의식‘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그대는 ’초자아적인 눈‘이 아닌
그대 자신의 눈만으로는,
이런 것들을 볼 수 없다..
돌이켜보면,
무엇인가를 꼭 해야만 하겠다는
내면의 충동을 느꼈던 때가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그 이끌림에 따랐던 몇몇 경우에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면의 부름에 따르지 않고,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헤아려 본 끝에
다른 행동을 취하는 바람에,
실수와 실망과 고통을 겪었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부름이야말로
그대의 ’진정한 자아‘가 하는 일이다.
그러한 순간에 그대를 이끌고,
그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 주는 이가 바로,
그대 안에 있는 ’나‘,
그대의 ’참자아‘이다.
그러한 순간에 그대는 ’영혼의 귀‘로,
’나의 귀‘로 듣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자신을 뛰어 넘어 그 소리에 복종했을 때는,
성취와 만족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대가 그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기가 자기를 더 잘 알고 있다고 고집할 때는,
좌절과 후회와 불행한 결과만이 그대를 기다린다.
그대는 분명 낯선 사람인데도
웬지 친근감을 느끼기도 하고,
웬지 껄끄러운 느낌을 받기도 한다.
언젠가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런 느낌은,
그대의 ’참자아‘만이,
그대 ’영혼의 몸’으로,
‘초자아적인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대의 ‘초자아 의식’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조건들과 사건들에 대해,
그대에게 경고하고,
충고하고,
자신을 보호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알 수 있는 최선의,
가장 확실한 길은,
그대 가슴을
‘비이기적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때,
그들의 병을 치유해주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진정한 길’을 가리켜 보여주겠다는 충동에
그대 자신을 온전히 내맡겼을 때이다.
그대의 몸과 마음을,
‘나의 진정한 본성’을 표현하기 위한
통로로서 사용하는 때이다.
‘나의 진정한 본성’이란 무엇인가?
‘완전한 사랑’이요.
‘신의 그리스도’요,
온 우주에 생명을 주고,
활력을 주고,
강하게 하고,
모든 것을 다 공급하고
치유하는 유일한 ‘힘’이다.
이 모든 것이 그대에게
한결같이 가리켜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대 ‘영혼의 몸’ 안에 있는,
내면의 ‘완전한 몸‘ 안에 살고 있는
바로 ’내가‘,
그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항상 그대 안에서
그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고,
충고하고 있고,
그대를 가르치고 있고,
경고하고 있고, 돕고 있다.
그대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기만 한다면,
그래서 매 순간마다
그대가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느낌들을 잘 관찰하고 살핀다면,
그래서 그 느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내 말씀‘에 따르고,
거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를 믿고
그대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긴다면,
진실로 나는
그대가 가는 길을 온전히 안내해 주리라.
모든 문제를 다 풀어 줄 것이고,
모든 일을 다 내가 짊어져 줄 것이고,
곁에는 늘 생명수가 흐르는 풀밭으로 그대를 이끌어 가리라.
오 나의 아이여,
그대가 껍데기 같은 인간의 지식과
가르침들 속을 헤매며 바같에서 구하느라
허비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그렇게 열심을 부리기만 한다면.
하루 중 한 시간만이라도
’나‘에게 온전히 시간을 바쳐,
그대 안에 있는 ’나의 현존‘을
마음에 그리고 수행할 수 있다면,
그러면 그대에게 약속하리니,
그대는 곧 ’나‘를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대 인간의 마음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혜와 힘과 원조의 샘물을,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샘물을
그대의 것으로 하게 되리라.
그렇다, 그대가
’나‘를 구하기만 한다면,
그대의 삶 속에서
’나‘를
’으뜸 가는‘ 자리에 놓고
’나‘를 만날 때까지
쉬임 없이 정진하기만 한다면,
’나의 ‘현존’을,
‘내 사랑의 목소리‘를,
그대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칠 새 없이 말하는
’내 사랑의 목소리‘를
의식할 수 있는 날이 결코 멀진 않으리라.
그대는 ’달콤한 하나 됨‘ 속에서
’나‘에게로 오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나의 의식‘ 속에서 살게 되리라
’나의 말씀‘이
그대 안에 살아 있음을 발견할 것이고,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기적과도 같은 방법으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 물든 그대의 습관이,
육신을 입고 있다는 제약이,
악의 발톱이,
그대의 의식에 계속해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나의 초자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일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만물의 ’실상‘을 알게 되리라.
그때, 그대는 경이롭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 놓았음을 깨닫게 되리라.
사람들이 모두
천사 같은 존재로 보일 것이고,
개성을 입은 육신이란
단지 탈것이요
도구요 의복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육신이란 ’나의 이데아‘를
지상에 완전하게 펼치는 데에 필요한
’영혼의‘ 자질들을 계발하기 위해,
자신들이 창조한 경험과
지상적인 환경을 만나기 위해
임시로 입고 있는 옷일 뿐이다.
그때, 그대의 눈에는
어떠한 그림자도,
어떠한 악도,
어떠한 악마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이 빛과 사랑을,
자유를,
행복과 평화를 노래할 것이기에,
그대는 만물 안에서,
’나‘의 속성을 입고 있는 저마다의 개체 안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기에,
그대는 단지
그대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내 사랑의 빛‘으로
밝게 비추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랑의 빛은,
그대가 바라보는
만물의 ’진정한‘ 의미를
밝게 비추어 보여주리라.
그때, 그대는
’신의 왕국‘을 발견했다는,
그 안에서 거닐고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신의 왕국은 어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 지상이며,
그대 주변의 모든 것으로 현현되어 나타나고 있고,
그대가 알지 못했을 뿐
그동안에도 내내
그 왕국 안에서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신의 왕국‘은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존재 안에,
다른 모든 존재들 안에,
만물의 가장 내밀한 곳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신의 왕국‘은
’만물의 실상‘ 그 자체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단지 이 ’실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나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인간의 잘못된 견해와 믿음이
그 그림자를 창조했던 것이다.
그대가 왕국을 발견할 때,
그대는 그 안에서
자신이 머물 곳도 발견하게 되리라.
그대는 진실로
’나의 신성한 속성들‘ 중 하나이며,
태초부터 그대가 맡아서 할 일이
모두 정해져 있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이미 지나간 모든 일들은,
그 일을 위해서,
그대 인간의 개성을 준비시키고
적응시키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의 영혼 전체는,
숱한 나날의 방황을 마치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설레임과
기쁨으로 가슴이 벅찰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참 생명‘의 길로 들어섰다는 기쁨의 전율,
’나와 하나‘라는 감격,
결국엔 모든 일이 다 잘 되어
’나의 신성한 이데아‘를
’지상에 완벽하게 펼치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그대의 영혼은 날아오르는 기분이리라.
"내 안의 나"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