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작품 세계와 합일주의적 시 정신 /이동순

작성자행복한사랑|작성시간05.04.28|조회수586 목록 댓글 1

* 이 글은 <백석시전집>(이동순 편, 창작과비평사, 1987)에 수록된 해설 부분의 원고입니다. 이후에 <민족시의 정신사>(창비신서, 1996)에도 다시 수록되었습니다.
.............


백석의 작품 세계와 합일주의적 시 정신


(1)무너진 시대에서의 모국어의 의미  

1930년 한해 동안 대부분의 농가가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약 40만 명의 농민들이 일본으로 살길을 찾아 도항해 갔고, 약 150만 명이 만주 및 시베리아로 이주해 갔다. 전국 도처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의 건수는 726회였고, 13,012명의 소작 농민이 이 쟁의에 참가했다. 산업별 경제 활동 인구의 백분율을 보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81.1%를 넘었다. 식민통치하에서의 조선 농촌과 농민은 거의 완전히 붕괴되고 해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는 1934년의 전국 쌀 생산량 1,672만석 중 891만석을 이른바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강탈하여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경제뿐만 아니라, 조선의 민족 문화에 대한 일제의 고의적인 망실(亡失) 또한 심각한 것이었고, 1933년 11월 4일, 조선어학회는 한글 반포 487돌 기념식을 개최하고 이에 때를 맞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1936년 1월에 발간된 백석(白石)의 시집 {사슴}은 동 시대의 다른 어느 전문 시인들의 시 작품과도 구별되는 묘한 토착 정서의 세계를 갖고 있었다. 이질적 정서들이 시의 본질과 정통의 자격으로 행세하던 시기에서 백석의 시 정신은 매우 비범하게도 우선 시 작품에 구사된 언어의 성격과 의도적으로 채택해 가는 주제 설정에서부터 주체적 토착적 정서 세계에 기반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시 세계는 역설적으로 가장 정상적이고 당위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와 지향은 식민지 조선의 민족 문화를 고의적으로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통치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우려와 완강한 거부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백석의 시 작품을 당당한 민족시의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백석의 첫시집 {사슴}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여, 시집으로 한번도 묶여진 적이 없이 도처에 가랑잎처럼 흩어져 있는 그의 발표시 작품 수십 편을 찾아 정리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제 강점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민족 문학에 대한 매우 비범한 자각을 가진 특이한 감수성의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민족시 정신사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독보적인 가치로 인정받아야 할 백석 시의 정서적 특이함이 분단 이후 수십년 동안 도저한 매몰속에 묻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주체적 기능이 부서진 시대에서, 마비된 주체적 기능이 무려 반세기를 경과한 오늘날에도 아직껏 제 기능을 온전히 펴내지 못하고 있는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과 관련되는 것일 터이다. 이것은 식민지 시대에서 곧장 분단 시대로 이어진 우리 나라 현대사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제반 국면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가 진작 한 권의 시집을 펴내고,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을 발표한 전문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분단 이후 40여년 이상을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린 시인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를 민족시인의 범주에 넣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시 정신을 다시금 튼튼한 위상으로 제자리에 복원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모국어의 힘을 끝끝내 신뢰한 시인 백석에게 있어서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행위는 단재의 용어로 말하자면 모든 비아(非我)로부터 아(我)를 옹호하고 회복하는 힘의 총체성이 된다.  
백석의 작품 활동 시기는 아마도 그의 조선일보 입사 시기인 1931년 이후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발표된 1948년까지의 대략 14년 정도가 아닐까 한다. 가장 혹심한 고통이 가해졌던 일제 강점기의 격동적 전환기에 그의 대부분의 창작 활동이 놓여져 있다. 조선 농지령(朝鮮農地令)이 제정 공포된 1934년 4월 이후의 사회사는 식민지의 지배 형태가 한층 가혹하고 무단적인 것으로 바뀌어가고, 민족의 주체적 자아가 극도로 위기 국면에 봉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던 시기이다. 제국주의적 혼혈 정책이 강요되던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먼저 위해를 받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민족 언어로서의 모국어였다. 이것은 일제가 식민지 피지배 민중들에게 강요한 가장 폭력적인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막다른 상황에서 이 땅의 지식인들은 삶의 고통을 극복해 가는 다양한 방법은 전혀 허용되질 않았고, 단지 타협과 순응이라는 한 가지 방법만의 선택을 강요당하였다. 이처럼 굴욕적인 생존 양식의 비극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에서 왕성하게 발표된 백석 시의 문체와 창작 방법은 지식인으로서의 백석의 현실 대응 태도를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백석은 민족의 주체적 가치를 옹호하고 고수하는 마지막 방법으로서 모국어를 생각하였다. 모국어의 세계야말로 민족이 당면한 현실적 비극성을 극복하게 해주는 가장 커다란 잠재력이 내재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곧 시인이 오직 모국어 속에서만 비로소 시인일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백석에게 있어서의 모국어의 성격은 동 시대의 시인 박용철의 지적처럼 '전반적으로 침식 받고 있는 한국어에 대한 혼혈 작용에 대해서 그 순수를 지키려는 의식적 반발의 표시'였다.
문체의 독특함은 아일랜드의 문호 제임스 조이스적인 문체의 정확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죠이스적인 문체의 정확성은 역사의 실제성을 이해하는 태도와 결부된 것이지만 동적인 유물주의와는 구별된다. 사실상 백석의 시가 시적 정경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문체의 정확성에 대한 체험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정확성의 경험은 제임스 조이스를 번역했던 영향으로 여겨진다.

(2) 시집 {사슴}의 세계와 합일 지향성  

백석의 시에 나타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행위 주체자로서의 인간(自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하나' 라는 사실이다.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사물들이 공동의 터전에서 공동의 운명을 겪으며 살아 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삶의 소중한 친교 의식(親交意識), 즉 공동체 의식과 다름아니다. 백석의 시에는 무수히 많은 계층과 사물들의 명칭이 출현하지만, 이들은 서로가 분리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합일(合一)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혹은 현재 합일되고 있거나 이미 오래전에 합일된 사물들이다. 이 사물들의 배경은 주로 농촌 공동체적인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합일의 정신적 양식은 이미 정략적으로 계층간의 구별과 생활 공간의 구획을 완전히 식민 통치자의 뜻으로만 묶어놓았던 식민지의 도시 환경보다도 농촌 공동체에서 오히려 짙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제의 제도적 문화 혼혈 정책 과정에서 도시보다 농촌이 생활 문화의 전통적 특수성을 비교적 온존할 수 있는 여건을 튼튼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식민지의 규범화 규격화 구별화의 강압적 개편이 농촌쪽으로 차츰 침식되어 가는 현실속에서 백석은 농촌 공동체의 합일 지향적 정서를 문학에서 재구성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시인이 민족의 주체적 자아를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활동영역이라 믿고 있었다. 백석이 생각한 주체적 자아 보존의 방법은 특정한 관념을 환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인이 도려낸 장면을 아무런 수식없이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장면에서 풍기는 정감과 분위기를 독자 스스로 끌어안도록 한다. 그러므로 백석의 시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 자신이 모든 동족적 사물들과의 융합을 꿈꾸는 합일 의례(合一儀禮:Communion)적 성격을 나타낸다. 백석의 시가 꿈꾸는 합일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무엇과 무엇의 합일인가?  
그것은 곧,  

1) 균등과 원형 보존의 정신을 대전제로 한 삶과 죽음의 구별이 느껴지지 않는 합일
2) 모든 살아있는 것끼리 더욱 하나가 되는 합일  
3) 계층 간의 구별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합일  
4) 주체와 객체간의 구별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합일  
5) 식물성을 위주로 하되 동물질의 폭력성까지도 식물성에 흡수시키는 합일 
6) 사소한 사물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보여주는 합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백석 시의 전편을 통하여 이 합일 의례의 정신을 가장 성공적으로 밀도있게 다루고 있는 작품은 아마도 [모닥불]이 아닌가 한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된 슬픈 력사가 있다

이 시는 '모닥불'이라고 하는 합일 의례의 공간속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개체적 사물들이 혈연 관계로 결합된 가족의 집합체, 즉 하나의 확대 가족(extended family) 개념으로 군단화(群團化)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혈연 관계가 없는 헌신짝, 붓장사, 땜쟁이 등의 합성 집단(Composite band)까지도 조부와 부모, 그리고 손자에 이르는 단계적(單系的) 친족 집단(unilineal band)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의 '모닥불'은 공존과 공생의 장소이다. 작품의 1연과 2연에 등장하는 사물들에는 제각기 특수 조사 '∼도'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이 사물들 중 어느 것도 모두 모닥불을 전제로 해서 하나 같이 소중하고 평등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첫연에서는 생물과 무생물의 구별이 없되, 유년 체험과 가장 맞닿아 있는 사물들이 모닥불(合一儀禮)의 질료가 된다. 새끼 오라기, ,헌신짝, 소똥, 갓신창, 개니빠디, 너울쪽, 짚검불, 가락잎, 머리카락, 헌겊조각, 막대꼬치, 기와장, 닭의짗, 개터럭 따위는 실제 생활에서 거의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것들이다. 가장 하잘 것 없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이처럼 따뜻한 모닥불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2연은 이러한 모닥불의 따뜻함을 골고루 나누어 갖는 분배 존재의 나열이다. 주체와 객체, 계층간의 위화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재당, 초시, 문장 늙은이, 더부살이 아이, 새사위, 갓사둔, 나그네, 주인, 할아버지, 손자, 붓장사, 땜쟁이, 큰개, 강아지 따위의 열거는 단순한 나열이 아닌 평등 사상의 암시이다. 백석의 시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 유형은 사실상 이러한 사상성과 관련해서 읽어야 한다. 그들 대부분이 빈농 출신이거나 혹은 농업 공동체에 기반한 소외 계층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시 [모닥불]의 2연의 세계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끼리 모닥불을 피우고 그불의 따뜻함을 함께 분배받으며 그것으로 더욱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이다. 백석은 이 제2연을 통하여 물질 공유(物質共有)의 사상을 슬그머니 풍기면서 합일 의례라는 행위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어서 3연은 역사의 비극성과 그 내력에 대한 비유를 내포한다. 3연에서는 2연까지 유지되던 합성 집단의 개념, 즉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미 확대 가족 개념으로 모든 존재가 군단화되고 있다. 그러한 의도를 '우리'라는 시어의 대목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식민지적 조건과 결부된 현재의 비극적 삶이 웃대의 그것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에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 아니될 것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되어서, 즉 그토록 모질고 고단했던 비극적 시간속에서도 할아버지의 세대는 꿋꿋이 살아왔고 또 지금도 여전히 불구 상태이긴 하지만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끈질긴 생명력의 암시이다. 이 시에서 '모닥불'의 상징성은 합일 의례의 공간이자 동시에 민족 집단원 공유의 영역이었다. 원시 농경 사회에서 이 고유의 영역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집단 공용(共用)의 소중한 개념이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양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또한 다른 집단원들의 약탈이나 점거는 즉각 부당하고도 불법적인 폭거로 규정된다. 이러한 이해와 분석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백석 시의 정신을 가장 대표할만한 작품을 바로 이 [모닥불]로 규정하기에 아무런 주저를 느끼지 않는다. 이 '모닥불'의 따뜻한 사상을 통하여 백석은 식민지 체제의 불법성과 강압적 문화 혼혈 정책의 불법성에 맞설 분명한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 신상품 구입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향숙 | 작성시간 05.05.05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