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손님』을 읽고
윤리교육과 3학년
최유리
『아이랑』에 이어 황석영의『손님』역시 많이 들어본 책들이었고 제목과는 달리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두 책 모두 나에게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감명 깊었다. 그래서일까 황석영의『손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책 제목인 손님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었다. 중세의 조선 민중들은 천연두를 막아내고자 '손님'이라 불렀는데 책에서는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하고, 두 손님에 대해 글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북이 고향인 요섭은 북에 가지만 여전히 손님일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채 맞이한 일제식민지와 6.25를 겪은 한반도에 들어온 두 가지 외부에 사상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지울 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알 수 있었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 쓰여져 있는 대화들이 우리의 아픔을 그대로 얘기해주고 있었고 마음에 와 닿았다. 거기는 니편 내편이 없고, 죽고 사는 것도 없고, 용서하고 회개하는 것도 없는 그런 곳이라는 말이 북한과 남한의 6.25를 떠올리게 했다.
또 식당 아주머니께 남과 북 어디가 더 좋냐고 물었던 질문에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고 물어보는 질문이라던 대화가 북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무조건 남한이라는 생각만 하고 살았었는데 똑같다라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이고 남한이 북한이었던 것이다. 남한의 문제가 남한에서 끝나지 않듯이 북한의 문제가 북한에서 끝나지 않는 하나인 것이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의 묘사는 '인간만이 저렇게 잔인하고 징그러운 동물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6.25 전쟁에서의 생명의 죽음과 탄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안타까웠다. 6.25를 겪고 살아있다는 것은 대단하면서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다 끝난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처럼 같은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눈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다, 정보화 시대라 해서 맘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은 다르다. 쉽게 갈 수도 없을뿐더러 북한 어느 곳에도 연락 한번 해본 적이 없고 뿐만 아니라 친구도 만들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한 몇 년 간 북과 우리는 '이러다 통일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만큼 많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북한 사정에 대해 예전만큼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북한과 우리의 문제는 어느 누군가 대신해 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하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우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