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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3,4절 발표자료입니다.

작성자민경미| 작성시간10.06.27| 조회수165| 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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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05 정윤형 작성시간10.06.28 동방공산대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후에 해방이후에도 동방공산대학 출신들이 활발히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12월 테제는 조선공산당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코민테른에서 지령을 내린 것으로 과거 활동의 잘못을 분석하고 새로운 활동을 지시한 것으로 한국공산주의운동에 분발 할 것을 코민테른에서 지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12월 테제 역시 지난 활동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실패하게 됩니다. 코민테른의 지령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령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방이 될 때까지 어느 당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양승배 작성시간10.06.28 파벌투쟁으로 코민테른의 신임을 얻지 못한 조선공산당은 신임을 얻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코민테른이 12월 테제를 통해 지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12테제가 가지게 된 의의는 표면적으로는 재건지령이였지만, 12월 테제를 기점으로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은 당은 없었고, 해방 이후에 재건이 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 때 당시 상황으로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작성자 09 노란 작성시간10.06.28 12월 테제는 조선공산당과 신간회가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이너스적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르기 위하여 공장노동자와 빈농에 기반을 둔 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 및 노동조합이나 농민조합의 운동이 활발해진 것은 플러스적 요소라고 분명히 이야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1차 조선공산당을 제외하고 2차, 3차, 4차 당은 모두 해외지부가 존재했습니다. 저희는 조선공산당의 해체라고 했을 때 보통 국내의 조선공산당만을 그 대상으로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해외의 조선공산당도 고려의 여지 없이 해체되었습니다.
  • 작성자 09 노란 작성시간10.06.28 국내에서의 재건 운동은 활발했습니다. 비록 압정에 의해 실질적으로 해방 이전까지 조선공산당의 뒤를 이을 새로운 당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당은, 특히 만주와 일본에서는 조선공산당 총국들이 해체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공산당으로 각각 흡수되어버린 채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벌의 대립을 무산시킨다는 뜻은 좋지만 그 대신 우리는 해외에서의 기반도 잃어버린 셈입니다. 해외의 공산주의자는 이제 '조선'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위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 작성자 09 노란 작성시간10.06.28 12월 테제는 선택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선택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야를 편협하게 가지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들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경험과 노력도 중요하겠지요.
  • 작성자 윤정민 작성시간10.06.28 코민테른은 12월테제에서 조선공산당의 재조직 방침을 지시합니다.그리고 혁명의 중심인물로 공장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로 규정하고 이전 조선공산당은 지식인과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파벌싸움도 심했고 혁명을 할 수 없었다고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당에 끌어들이라고 지시합니다. 12월테제에 의해 당의 재건을 위한 운동과 노동조합 농민조합운동은 활발해 졌지만 해외의 조선공산당은 해체됩니다. 그리고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12월테제이후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 작성자 사복 05 오대식 작성시간10.06.28 발표 잘 들었습니다. 12월테제는 코민테른이 조선공산당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한국공산주의자들에게 내린 지령을 말합니다. 12월테제에서 한국공산주의운동이 실패한 이유 중 한국의 경제체제가 농업위주였기 때문에 공업노동자가 적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다음에 나타나는 경제체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한 후에 나타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공산주의가 발생하기에는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작성자 임익찬 작성시간10.06.28 코민테른의 승인 이전에 상해파와 이르크츠크파의 파벌투쟁으로 코민테른의 신임을 얻지 못하던 한국 공산주의자는 1차당을 설립하여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고자 조봉암과 조동우를 코민테른에 파견하였지만 실제로 관계가 개선된 것은 4차당 때의 일입니다. 공산주의 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가장 큰 잠재력은 동방공산대학의 학생들이고 이들이 국내에 왔지만 경찰의 감시로 성과는 없었으나 해방 이후에도 활동하여 잠재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코민테른은 한국공산주의자들에게 실패지적, 새로운 진로 등에 대한 지령을 내렸지만 이미 수행되고 있는 것의 반복이었고 한국 내의 여러 상황 때문에 이행하지 못하였습니다.
  • 작성자 이경재 작성시간10.06.28 발표 너무 잘 들었습니다. 코민테른은 한국 공산주의자의 실패에 대한 지적과 함께 새로운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12월 테제를 지시합니다. 하지만 영감이 가득한 새로운 지령이 아닌 한계점을 드러내며 실패하게 됩니다. 이에는 일본경찰의 압력과 분파간의 위화감, 코민테른의 우유부단함과 영속적인 지도가 없었던 것도 한 몫 하게 됩니다. 하지만 민족혁명운동에 다른 방법을 제시하며 대중들을 일깨우고 자각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 작성자 윤교 08 김정섭 작성시간10.06.29 민경미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번 절에서 12월 테제를 보면서 코민테른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코민테른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원칙아래 엄격한 이데올로기를 고집하였습니다. 마치 레닌의 엄격성이 그대로 코민테른에 반영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에 한국공산주의자들은 지나친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파벌문제가 야기되었고 조선 인민 노동자들과는 괴리된 다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 작성자 윤교 08 김정섭 작성시간10.06.29 코민테른의 12월 테제로 인해 한국공산주의운동에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당내의 파벌문제와 일본경찰의 압력이 한국공산주의운동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공산주의운동에 가장 큰 한계점은 파벌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지도세력 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한국공산주의가 더욱 우리민족에게 호소력있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 작성자 한국음악과 04 송상언 작성시간10.06.29 코민테른의 승인으로 동방공산대학에 학생들을 파견하였지만 경찰의 감시로 인해 제대로 된 활동을 펼치지 못하였다. 12월 테제는 한국공산당의 실패 요인과 새로운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 하였습니다. 하지만 테제의 활동 방침은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내용이 아니였으며, 현재 실정에 맞지 않거나, 이 지령은 대부분 이미 수행되고 있는 것의 반복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 작성자 08김모아 작성시간10.06.29 열심히 발표해 주신 경미 학우,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이 발표를 통해 눈여겨본 것은 바로 '12월 테제'였습니다. 12월 테제는 한국공산주의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한국의 공산주의자는 농민과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원칙에 따라 공산주의운동을 제대로 하라는 코민테른의 '지령'을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를 뚫고 말처럼 쉽게 그 지령을 따를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보다 근본적으로 분석해 보면 재건하라는 지령은 사실상 해체지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 08김모아 작성시간10.06.29 공산주의 재건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은 해체였기 때문입니다. 조선공산당이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지령의 내용이 해체지령이었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민경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6.29 12월 테제는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위기의 요인이었지만 12월 테제후에 지속적으로 동방공산대학 학생들의 노력이 있었으므로 공산주의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 작성자 정다영 작성시간10.06.29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았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궈낸 값진 열매다. 그 뒤에는 동방공산대학이라는 젖줄 같은 교육기관이 있었다. 그리고 12월 테제. 그것은 조선공산당의 실패를 말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비록 그 제안들이 실현가능성이 부족하고 새로운 방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조선공상당의 국내활동은 일제의 탄압, 서로간의 위화감, 국내사정의 무지 와 코민테른의 무심함으로 그 활동이 실패인 듯 보였지만, 대중을 일깨워놓은 그들의 선전활동을 무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작성자 정다영 작성시간10.06.29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을 참가하지 못하고 혼자 책을 읽고 깨우치려니 참으로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곱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간신히 맥락만을 이해하고 늦게나마 댓글을 답니다.
  • 작성자 민경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6.29 12월 테제의 영향으로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위기를 겪게됩니다. 그한국 공산주의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듯 보이지만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한국에 공산주의를 도입하여 민족혁명운동에 다른 방법을 제시하였으며, 그들의 희생과 과감한 행동은 대중의 정치의식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한국 공산주의운동은 그동안 무지의 존재였던 대중들 특히, 노동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자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에 공산주의를 널리 ‘선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 작성자 오인균 작성시간10.06.30 예비군 훈련 때문에 올려진 것 보고 몇자 적습니다.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한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이것이 12월 테제이다. 이 12월 테제의 이 지령은 대부분 이미 수행되고 있는 것의 반복 서술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운동은 사회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옹호함으로써 대중을 일깨우는 데 자극을 주었다.
  • 작성자 김성민 작성시간10.07.01 발표 잘 들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 운동을 위한 공산당은 코민테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공산당으로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코민테른은 12월 테제를 통해 한국공산주의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이자 그들이 지켜야만 하는 명령이긴 하지만 12월 테제는 논리상으로 맞는 지령이었으나 현실성이 모자랐고,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한계가 있었습니다.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지령은 한국에서의 공산주의 실패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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