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봄조 모둠 선정[조선왕조 후기] 5대 중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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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
중요 사실 |
선정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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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725~1741년 |
탕평책 |
붕당 사이의 심한 대립을 막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숙종은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이 정책의 실시로 혼란한 정국 즉, 온건과 급진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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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737~1836년 |
실학의 등장 |
머리로만 공부하는 학문이아닌 현실 비판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택한 실학이 등장하였다. 개방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통해 농촌사회와 상공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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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811년 |
홍경래의 난 |
조선후기 대표적인 반란으로 홍경래가 주도하였다. 평안도민 차별을 계기로 만민평등사상을 내세워 군사를 모아 힘을 기르지만 결국 진압된다. 그러나 홍경래의 난은 근대시대로 나아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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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894년 |
갑오개혁 |
갑오개혁은 법제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며 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한 제도 마련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고 신분제도는 법적으로만 폐지되었지 의식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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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894년 |
동학농민운동 |
양반 지배 체제의 타도를 위해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그 결과 폐정개혁 12개조가 도입되었다.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불량 양반 및 횡포를 부리는 부호를 징벌하였다. 신분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노비 문서를 소각하였다. 또, 천인에 대한 대우 또한 개선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은 신분제 해체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갑오개혁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
[민족과 역사] 연표
1. 발표 범위 : 실학의 등장~발전
2. 발표 주제 : 실학이 왜 현실적 대안이 되었나?
3. 관련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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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일 |
한국사 |
세계사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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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 |
탕평책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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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 |
실학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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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 |
균역법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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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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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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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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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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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 |
홍경래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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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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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노예 해방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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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 |
강화도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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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
갑오개혁, 동학농민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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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이 왜 현실적 대안이 되었나?
누리봄 모둠
강두호, 김나연, 김이슬, 박소연, 양수현
발표자: 강두호
1. 실학의 등장
조선의 지도 사상인 성리학의 사상체제는 조선 전기의 안정된 사회체제를 이끌어 오는 데 공헌하였으나, 양란이 지나가고 혼란스러웠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흡함이 있었다. 우주와 인간, 삼강오륜을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리학은 혼란스러웠던 조선 사회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백성들이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 하였다. 조선 후기 정치에서는 벌열정치가 행해지면서 소수 양반가문이 정권을 독점함으로써 많은 양반들이 몰락하였고 농촌에서는 광작에 의한 부농이 생겨 일반 농민들은 노동을 착취당하고 땅을 뺏기게 되었다. 또한 도시에서는 도고상인들이 상공업을 지배하여 부를 축적하면서 일반 상인들은 몰락하고 물가가 앙등하는 등 조선 사회에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사회적 모순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서양 과학 기술이 소개되면서 세상에 새로운 눈을 뜨고 실용적이 학문들이 필요하다고 느낀 학자들이 늘어났었다. 이 같이 상황들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2. 실학
실학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사상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실학은 정치와 사회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정권 담당자들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한다. 정권 담당자들 일부에서도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주로 정권에 참여하지 못 한 측에서 더 많이 일어났는데 남인들 중에서 실학자가 많이 나타났다. 실학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에만 사회과학 분야에만 국한 돼 있지 않고 농학 지리학 등 여러 방면에 걸친 광범한 연구를 하였기에 그들의 학문적 관심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었다. 실학자들의 연구대상은 다양하였지만 그들은 학문이 현실에서부터 출반한다는 공통적인 기반이 있었다.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였고 조선 후기 특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공리공담이 아닌 실질적인 것,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그것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경세치용의 학문이며 나아가 실제 사회에 이용될 수 있는 이용후생의 학문이었다.
①중농학파
경세치용학파라고도 하는 중농학파 학자들은 토지개혁과 농민생활의 안정을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이 있다. 이들은 농촌 문제의 해결을 지주층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토지의 경작자인 농민을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사농일치의 원칙에 의하여 신분적인 차별을 없애고 교육의 기회를 균등이 하여 능력 위주로 관리를 등용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개혁론의 특징은 모두 토지제도가 모든 개혁의 기초가 된다고 파악하였고 농업을 중심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②중상학파
이용후생학파라고 불리며 또한 이들은 청나라의 문물의 영향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북학파라고도 불렸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유수원,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가 있다. 이들은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 혁신 등 물질문화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개혁사상은 농업에만 치우친 유교적 이상국가론에서 탈피, 부국강병을 위한 더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3.공동 삶의 원리
실학은 몰락 양반 중심의 개혁론으로 당시의 국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실학은 조선 후기 사회, 경제적 변동에 따른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는 개혁안으로, 민주적이고 근대적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틀에만 박혀 현실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머리만 채우는 당시 현실 사회의 학문에 문제가 있다고 정권에서 소외됐던 사상가들은 자각했었다. 농민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사상을 내세워 경제 변화에 대처하는 발전적 개혁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당시 사회상황을 해결하여 전통 질서의 붕괴를 막고 국가체제는 강화 하려고 했던 실질적인 학문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실학자들을 보고, 우리들도 현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한 영웅적 인물이 나오길 바라는 우리의 사고는 바뀌어야 하고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탐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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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2 박소연 작성시간 12.11.06 당시 실학은 주장한 사람들은 권력을 쥐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라면 권력을 쥐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위에선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권력이 없어도 그저 백성을 위한 마음으로 실학을 주장한 것을 보고, 저도 어떤 거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양반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성리학을 비판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텐데 저도 실학자들처럼 비판적 사고를 하고 사고를 더욱 넓게 보는 습관을 지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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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2 양수현 작성시간 12.11.06 저는 학문은 발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에서 실학은 경직적인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 유용성을 생각한 발전한 학문입니다. 정권을 잡지 못한 계층들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실학은 좀 더 민중들의 삶을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에만 속박돼있지 않고 농사, 지리 등 여러 방면에서 접근한 실학은 농민들의 삶을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학문이 아닌 경세치용, 이용후생의 학무인 실학은 백성을 생각하는 근본 목적에서 사회 발전적인 학문입니다. 실학처럼 우리 세대에도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말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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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2신효진 작성시간 12.11.06 학문은 머릿속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리학은 대체로 백성이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없는 학문이었습니다. 백성에게 멀어진 학문은 그 시대를 반영한 학문이라 볼 수 없습니다. 반면 실학자들은 진정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새로운 학문을 펼쳤습니다. 우리도 머릿속으로 쌓을 수 있는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을 쌓고 시대에 요구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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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12 김이슬 작성시간 12.11.07 실학은 성리학의 한계를 벗어나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는 학문입니다. 성리학과 거리가 먼 농민과 상공업자들에게도 이용할 수 있는 실학을 만들어 백성의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문은 고여있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것입니다. 학문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비판적인 사고를 하며 항상 시대에 맞춰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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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건희 작성시간 12.11.07 성리학자들은 단순히 그들의 학문적 지식만을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백성들까지 고려하여 학문을 펼처 나갔습니다. 아무리 좋은 학문이라도 우리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면 그 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실학의 가치는 성라학의 가치보다 큽니다. 우리가 민족과 역사의 수업에서도 공동 삶의 원리를 찾고 그것을 우리 삶의 적용하는 수업을 합니다. 이처럼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때 그것의 가치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할 때 그것이 우리 삶에 관련이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