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속의 8월 12일
[1553년] 개신교 첫 ‘종교적 살인’
모든 스페인 사람의 내면에는 돈키호테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모험과 도전정신, 천재적 번뜩임과 기묘한 과대망상,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게 맞서 독단적 싸움을 벌이다 어느 순간 경박한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마는 라만차의 기사….
[1935년] 심훈 '상록수' 현상공보 당선 35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심훈(1901∼1936)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품에는 늘 강한 민족의식이 배어있었다. 재능 가운데 먼저 빛을 발한 쪽은 영화였다. 영화 ‘장한몽’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고,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정통으로 영화를 공부한 뒤에는 원작·각색·감독으로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나 곧 영화계를 떠났다. 심훈의 타고난 운명은 기자였고 작가였다. 7년간을 조선일보·동아일보·조선중앙일보 기자로 지내며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는 장편 '동방의 애인' '불사조'를 연재했으나 둘 다 일제의 검열에 걸려 중단하고 말았다. 1932년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판하려 했으나 또 일제의 검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손수 필경사(筆耕舍)라는 초가집을 짓고 소설 '상록수' 집필에 몰두, 1935년 8월 13일 동아일보 소설 공모에 당선된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명성도 잠시뿐 이듬해 장티푸스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308/200308120196.html을 기본으로 다듬었음.
[1956년] 제2대 지방의회 의원선거 실시 제2대 지방의회 의원 선거 유세 장면 제3대 대통령선거가 끝난지 약 석 달 뒤인 1956년 8월 13일 전국 437개 선거구에서 제2대 서울 시의원-전국 도의원선거를 실시했다.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수는 자유당이 의원총수 437명의 57%인 249명으로 과반수를 넘었으며 민주당은 98명, 무소속 83명, 기타 7명이었다. 시·읍·면장과 시·읍·면의회 의원선거는 도의원선거보다 5일 앞선 8월 8일 실시되어 자유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당은 무더기 대리투표, 표바꿔치기 등의 불법 행위를 곳곳에서 저질렀다. 전북 정읍군 서성면에서는 투표함의 봉인을 뜯어내고 자유당후보표를 무더기로 집어넣는 광경을 투표함 호송경찰관 박재표 순경이 목격하고 8월 27일 동아일보 본사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폭로했으며 민주당 김의택 국회의원도 전남 함평군 선거에서 경찰이 투표함을 개표장으로 호송하는 도중 무더기 표바꿔치기를 했다고 폭로했다. http://srchdb2.chosun.com/history/를 기본으로 다듬었음.
[1961년]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8월 13일, 막 잠에서 깬 서베를린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밤새 동·서 베를린을 잇는 13개 도로와 80개 통로에 철조망이 쳐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입구마다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돼 통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철조망 길이는 45km. 곧 150km로 늘어난 철책에는 전류가 흘렀고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로 된 높이 2m, 폭 2m의 장벽은 동족 간의 이동을 금지시켰다. 1949년 동독정권 수립 이래 매년 20만 명, 1961년까지 이미 250만 명이 경계를 넘은 상황에서 동독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특히 전문직과 숙련노동자의 탈출이 심각해 자칫하면 고급 두뇌의 공백으로 동독 기술·산업기반이 붕괴될 판이었다. 베를린을 자유도시로 하자는 소련측의 제안을 서방측이 거부하자 1961년 6월 흐루시초프는 “베를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긴장은 고조됐고 이로 인해 서베를린으로의 탈출러시가 가속화됐다. 7월 한 달 동안만 3만 명이 고향을 등졌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28년간 동서대립의 상징이었고 독일인을 갈라놓은 ‘벽(壁)’이었다.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308/200308120196.html을 기본으로 다듬었음.
[1980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정계은퇴 발표
1954년, 26세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근 30년간 정치 활동을 하던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1980년 8월 13일 총재직 사퇴와 동시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89년] 배용균 감독, 제42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신예 배용균 감독이 제작ㆍ연출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1989년 8월 13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42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금표범상을 수상, 한국 영화 70년 사상 처음으로 세계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001년 8월 13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오후 4시43분쯤 태평양전쟁 주모자인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 참배를 마쳤다.
[2009년] 북한,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 석방
136일 동안 북한에 억류돼 있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가 8월 13일 오후 풀려나 남측으로 돌아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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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이환^^* 작성시간 10.08.17 1988년에 '16조3천억원'과 '5천7백만평'과 '2백만호'는 각각 '16조 3천억 원'과 '5천 7백만 평'과 2백만 호'로 띄어 써야 하고, [1956년]에서 첫 번째 문단 1번째 줄에 '석달'은 '석 달'로 띄어 써야 하고, [1961년]에서 두 번째 문단 1번째 줄에 '20만명'과 '250만명'은 각각 '20만 명'과 '250만 명'으로 띄어 써야 하고, 세 번째 문단 4번째 줄에 '3만명'은 '3만 명'으로 띄어 써야 옳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