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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 부대들....

작성자헤즈볼라|작성시간03.10.12|조회수489 목록 댓글 2
1. 건설지원단(비둘기 부대)
최초로 파월된 비둘기부대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의료진과 건설 공병으로 구성된 부대이다.
건설 지원단은 국방부 명령(육)제2호에 의거 서울에서 장교 16명, 사병8명으로 파월 편성을 위한 주월 한국군 군사원조단
본부를 창설하였으며 (초대단장 조문환 준장) 예하 부대는
육군 제127공병대대,제1이동 경비대대,제8수송중대, 해병 제1독립 공병 중대를 핵심으로 부대편성을 하였다.
1965년 2월5일 보병 제6사단 지역인 경기도 현리에서 국방부 장관 임석하에 주월한국군 군사 원조단 결단식을 갖게 되었으며,
2월13일 파월 제1진으로 선발대가 출발하여 2월 24일에 월남 사이공 도착,3월 16일에는 전부대가 숙영지 도착과 동시에
불명확한 적정과 지형조건하에 자체 능력으로 경계 및 수색활동을 전개하면서 도로 및 교량보수에 착수 하였으며, 파월이래 처음으로 베트콩의 기습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파월 초창기의 여려운 환경속에서 건설 지원단은 도로 신설공사를 비롯하여 교량,학교, 진료소 공사와 태권도 지도 및
심리전 활동등 한국군의 개척자로써 많은 업적을 남겨 놓았다.

2.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
1965년 6월28일 국방부 지령 8호에 의하여 해병대 제2연대를 기간으로하는 해병대 제2여단을 편성하였으며 초대 여단장에 이봉출 준장이 임명되었다.
파 월 : 1965. 9. 20 경북 포항에서 출범, 1965. 10. 3 한국을 떠나 1965. 10. 9 캄란에 상륙. 1967. 12. 12부터는 호이안에 주둔.
역대 여단장 : 이봉출,김연상, 이동호, 이동용, 허홍 준장
참전기간 : 1965. 10. 9 - 1972. 2. 24
참전군인 : 37,340명 (장교 2,166명, 사병 35,174명)
희 생 : 전사 1,202명 (장교 42명, 사병 1,160명)
부상 2,904명 (장교 99명, 사병 2,805명)
전 투 : 151,522회 (대부대 전투 175회, 소부대 전투 151,347회)

3.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수도사단은 비둘기부대 파월에 뒤이어 1965년 6월14일과 6월26일 2차에 걸친 월남공화국 수상의 전투부대지원 요청에 의거, 65년 8월13일 제 52회 임시국회 제 11차 본회의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역사상 최초로 전투 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4주간에 걸친 교육훈련을 마치고 1965년 10월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
파 월 : 1965. 10.16 부산 3부두를 출발,1965. 10. 22 월남 퀴논에 상륙
참전기간 : 1965. 10. 22 - 1973. 3. 7
참전군인 : 114,902명 (장교 7,652명, 사병 107,340명)
희 생 : 전사 2,111명 (장교 186명, 사병 1,925명)
부상 4,474명(장교 246명, 사병 4,228명)
전 투 : 175,107회 (대부대 전투 521회,소부대전투 14,586회)
문화센터, 학교건물, 공원 팔각정을 건축하는 등 많은 대민지원사업을 벌였으며, 1972. 4. 18부터 5. 15까지 약 한달동안 파월 한국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안케패스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4. 육군 제9 보병사단(백마부대)
1966년 6월 1일 국방부 지령 제3호에 의거,제2차 파월 전투사단으로 지명됨으로써 월남 파병
1966년 8월27일 중앙청 광장에서 환송식을 갖고 출범한 보병 제9사단
백마부대는 사단장 이소동 소장의 지휘하에 1966년 9월16일 부산 3부두를 통해 출진,1966년 9월22일 월남 나트랑에 상륙하여 인근 지역에 주둔
백마사단은 월남 중동부 해안지력의 1번 도로와 해안을 따라 길이270Km, 폭 50Km에 달하는 책임전술지역을 확보하고,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주요도시와 항만에 있는 군사시설을 보호 해 왔으며 또한 전술지역 내외의 침투하고 있는 적을 격멸.
파 월 : 1966. 9. 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6. 9. 22 월남 나트랑에 상륙, 닌호아에 주둔.
역대 사단장: 초대 이소동소장에 이어 박현식, 유창훈, 정규환, 조천성, 김영선 소장이 지휘
참전기간 : 1966. 9. 22 - 1973. 3. 11
참전군인 : 100,336명 (장교 6,445명, 사병 98,891명)이 참전
희 생 : 전사 1,328명 (장교 78명, 사병 1,250명) 부상 2,410명 (장교 160명, 사병 2,250명)
전 투 : 211, 714회 (대부대 전투 478회, 소부대 전투 211,236회) 1967. 1. 29 혼바산에서 벌인 백마 1호 작전을 비롯하여,
1967. 3. 8 맹호부대와 합동으로 월남의 대동맥인 1번도로를 개통한 오작교 작전과 1967. 7. 9 투이호아에서 실시한 홍길동작전을 비롯하여
박쥐작전, 도깨비작전 등 전사에 길이 빛낼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대민사업으로 대민농사지원,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5. 해군 수송전대(백구부대)
주월 한국군 파월초기부터 해상수송 임무를 맡은 해군의 활약은 지상군들의 눈부신 전과를 올리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사이공에서 다낭까지 800마일 해상항로를 따라 탄약과 중장비 등의 해상수송임무와 의료및 대민지원사업 및 민사심리전 임무를 충실히 수행.
1965년 3월4일 한국함대사령부로부터 LST 1척이파월되어 비둘기 부대에 편입된 후 해상수송임무를 개시하였다.
1966년 3월15일 LST 2척,LSM 2척을 증파하면서 해군 수송전대 백구부대로 개칭하고, 비둘기부대에서 배속 해제됨과 동시에
주월한국군 사령부 직할대로 승격되어 해상 수송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외에도 한국해군은 플래쳐급 구축함인 충무함(DD-91)을 단기간이었지만 파월햇으며 특수부대인 UDT를 비공식으로 파병한바 있다.

6. 공군 수송지원단(은마부대)
1967년 7월 1일 탄손누트 공항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은마부대는 4대의 C-54기를 주축으로 월남전에서 공중수송의 지원활동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결단됨.

7. 제100 군수 사령부(십자성부대)
최초 파월 전투부대인 맹호사단과 청룡부대가 파월됨에 따라 이들 전투부대에 대한 효과적인 군수지원을 위하여 국본 일반명령(육) 제31호에 의거, 1965년 9월1일부로 강원도 흥천에서 수도사단 예하부대로서 군수지원사령부를 창설하고 초대 사령관에 이범준 준장이 부임하였다.
파월이후 백마사단을 비롯한 추가부대가 증파됨에 따라 국본 일반명령(육)제22호에 의거, 1966년 6월1일부로 군수지원 사령부를 100군수사령부로 개편, 수도사단으로부터 예속해제, 육군본부에 예속과 동시 주월한국군사령부에 배속하게 되었다.
파 월 : 1965. 10. 12 여의도 광장에서 맹호부대와 같이 출범 1965. 10. 16 부산항 3부두를 출발, 1965. 10. 22 퀴논에 상륙,
맹호부대 사령부와 같이 퀴논 인접지역에 주둔. 출국 당시에는 군수지원 사령부였으나 1966. 6. 1 퀴논에서 부대명칭을 100군수 사령부로 개정. 1966. 8. 20 나트랑으로 이동하였다.
역대 사 령 관 : 초대 이범준 사령관에 이어 유학성, 이영일, 이창복, 김종달, 신유정 준장이 사령관을 맡아 부대를 지휘했다.
참전기간 : 1965. 9. 25 - 1973. 3. 23
희생 : 전사 213명(장교 26명, 사병 187명) 부상 439명(장교 27명, 사병 412명)
수행작전 : 106,665대의 차량수송과 396,019명의 병력수송 및 233,669동의 군수등 수송작전을 치루었다.또한 평소에 십자성 사령부를 위협하던 지역내 혼톰산 일대에 1969. 3.1~ 3.11일간에 걸쳐 십자성 3호 작전(일명 올개미 작전)을 116공병대대, 237수송대대, 경비중대가 실시해
적 사살 : 4명, 포로:1명, 용의자:6명, 소화기:5정, 문서:8점, 취사기구등 150여점을 노획했다.
대민사업 : 사찰, 교회, 교량, 유치원 등을 설치해 주고 농사짓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어 한국의 혼을 심는데 크게 이바지함
십자성부대는 한국군 전체의 군수지원을 책임지는 임무를 성공적으로수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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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권영훈 | 작성시간 03.10.12 울 사촌 큰 형님이 십자성 부대원으로 파견되었었습니다. 그 때 전 초등학교 5학년 (?) 이었는데 큰 사촌 형님이 베트콩 2명을 쏘아 죽이고 한면은 칼로 찔러 죽였다고 거짓말로 허풍을 쳤죠. 지금 생각하면 참 철 없었습니다.
  • 작성자미하일 비트만 | 작성시간 03.10.15 월남에 파병했었던 공수지구대는 안나와있네요;;;맹호소속으로 보내서 그랬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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