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자르는 노력, 결을 읽는 여유]
오전 9시 40분, 법정 안은 서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0시 정각에 시작될 재판을 앞두고, 먼저 온 변호사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시간이죠. 다들 두꺼운 기록 뭉치를 연신 뒤적이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며 마지막 한 문장이라도 더 머릿속에 구겨 넣으려 애를 씁니다. 손가락이나 발을 초조하게 까딱이는 소리가 넓은 법정에 작게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 변호사만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판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서류 가방을 얌전히 닫아두고 멍하니 법정 높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겉만 보면 "준비를 전혀 안 해왔나?" 하고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10시 정각, 재판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판사가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변호사들이 당황해 서류더미를 허겁지겁 들출 때도 그는 판사와 곧바로 눈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 넘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 흐르듯 명쾌하게 대답을 이어갔죠. 상대방이 거칠게 압박해 올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쳤습니다. 그 유연하면서도 예리한 모습에서 문득 장자에 나오는 백정 '포정'이 떠올랐습니다.
포정은 소를 기가 막히게 잘 잡는 달인이었습니다. 그의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베었지만,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늘 반짝였습니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무식하게 뼈를 부수거나 힘줄을 끊으려 하지 않고, 뼈와 뼈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틈새'를 찾아 칼을 스르륵 밀어 넣은 게 전부였습니다. - 장자 -
우리는 흔히 힘든 일이나 큰 시험을 앞두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뼈를 깎으려다 내 칼날이 먼저 부러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늘 일에 치이는 사람의 차이도 비슷합니다. 무조건 서류를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일의 구조와 '결'을 읽는 눈입니다. 단단한 벽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반드시 빈틈이 있거든요. 미련하게 뼈에 칼을 부딪치는 사람은 금방 지치지만, 그 틈새를 따라 흐르듯 일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Flow)'도 결국 이 상태를 뜻합니다. 내 능력과 과제의 난이도가 딱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힘을 잔뜩 주지 않아도 일이 저절로 풀리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합니다. 2300년 전의 포정은 이미 몸으로 그 대단한 심리학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포정은 소 한 마리를 다 해체하고 나면, 칼을 깨끗이 닦아 칼집에 넣고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보며 뿌듯해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까다로운 문제들도 어쩌면 힘으로 들이받아야 할 벽이 아니라, 가만히 결을 살펴야 할 대상일지 모릅니다. 유독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하다면, 힘을 잔뜩 준 어깨부터 한 번 툭 내려놓는 건 어떨까요. 진짜 날카로움은 잔뜩 찌푸린 미간이 아니라, 여유로운 미소에서 나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