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는 직장 동료와 수십 번 바람을 피우고 이혼했는데, 그 남자와 살기 힘들어지자 이제 와서 나에게 다시 합치자고 했다.
2년 전, 나는 전처의 외도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한 번의 실수인 줄 알았다. 회식 후 늦게 들어온 날,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던 모습이 이상했다. 새벽에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 급하게 지워진 대화방, 설명이 맞지 않는 야근 일정.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믿고 싶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도 있었고, 함께 산 세월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모른 척하려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괜히 의심해서 가정을 깨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진실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했다.
상대는 같은 회사 동료였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만났고, 내가 아이를 재우고 있을 때도, 내가 주말에 장을 보고 있을 때도, 그녀는 그 남자와 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것만 해도 열 번이 넘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졌다.
나는 울며 매달리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밤새 따지지도 않았다. 물론 화도 났고, 배신감도 컸다. 하지만 더 큰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가정이, 이미 나 혼자 붙들고 있던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이혼을 진행했다.
전처는 처음엔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 때문에라도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 일어난 배신은 한 번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여러 번 그 선을 넘었다.
우리는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혼하면서 딱 하나만 약속했다. 부부로서는 끝났지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하자고. 아이의 학교, 건강, 양육비, 면접교섭에 관한 이야기는 하되, 그 외 사적인 연락은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2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일에 집중했고, 아이를 돌봤다. 아침에는 아이 밥을 챙기고,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고, 저녁에는 숙제를 봐줬다. 처음엔 서툴렀다. 아이 체육복 빠는 날을 놓쳐서 아침에 허둥댄 적도 있고, 준비물 안내장을 늦게 봐서 문구점이 닫기 직전에 뛰어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우리 둘만의 생활도 나름의 리듬이 생겼다. 금요일 저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었고, 일요일 밤에는 같이 가방을 챙겼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날에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보내줬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전처의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은 있었다. 그녀가 그 직장 동료와 계속 만난다더라. 두 사람이 재혼까지 생각한다더라. 처음에는 많이 달콤해 보인다더라.
나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와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내 감정이 아니라 아이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전처의 연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아이 데리러 갈게.”
“학교 상담 일정 알려줘.”
“감기약 먹였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대화가 이상하게 길어졌다.
“요즘 많이 힘들지?”
“혼자 아이 키우는 거 쉽지 않을 텐데.”
“예전에는 내가 너무 몰랐던 것 같아.”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점점 선을 넘었다.
밤늦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으면 긴 메시지가 왔다. 자기 요즘 너무 힘들다고, 그 사람과 자주 싸운다고, 자신이 잘못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는 아이를 데려다주러 온 날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울었다.
“나 정말 후회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때 내가 미쳤었나 봐. 당신이랑 아이한테 너무 큰 상처 줬다는 거 알아. 그 사람하고 지내보니까 알겠어. 같이 사는 건 연애랑 다르더라.”
그녀가 말한 그 남자는, 처음과 달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처럼 보였고, 집에서 받지 못한 관심을 주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게으르고, 책임감 없고,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돈 문제로 싸우고, 생활 습관 때문에 싸우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서로를 찌르게 됐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아무 감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주 오래전에 닫은 문 앞에 누군가 다시 와서 초인종을 누르는 느낌이었다.
문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는데.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미 끝났어.”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나를 봤다.
“아이도 있잖아.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 말을 끊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안 돼.”
그녀는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아이는 부모가 다시 합치는 장면만 보고 안정되는 게 아니야. 아이가 안정되려면, 어른들이 서로를 다시 망가뜨리지 않아야 해. 나는 당신을 다시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는 사람과 한집에서 사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응.”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이혼할 때 이미 끝냈어. 당신이 그 사람과 잘 살든 못 살든, 그건 이제 내 인생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아이 부모로만 남으면 돼.”
그녀는 그날 한참을 울다가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부터 양가 어른들이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울면서 말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아이도 있는데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면 안 되겠나.”
내 어머니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상처받은 건 알지만,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겠니?”
친척들도 한마디씩 했다.
“여자가 후회한다잖아.”
“아이 키우려면 그래도 엄마가 있는 게 낫지.”
“젊을 때 실수한 거 가지고 평생 벌주는 것도 너무하지 않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이 답답했다.
그들은 외도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혼한 부부가 다시 합치면 보기 좋은 그림이 될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너진 신뢰 위에 억지로 집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전처는 아이를 핑계로 자주 찾아왔다.
아이 책가방을 가져다준다고 오고, 반찬을 만들었다며 오고, 아이 옷을 샀다며 왔다. 처음에는 아이 앞이라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도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 엄마가 다시 우리 집에 사는 거야?”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른들의 미련과 후회가 아이에게 혼란이 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전처에게 분명히 말했다.
“앞으로 아이 관련 일정은 문자로만 이야기하자. 집에는 약속된 시간 외에 오지 마. 아이 앞에서 복잡한 얘기 꺼내지 말고.”
전처는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차가워?”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차가운 게 아니라 선을 긋는 거야.”
그녀는 말했다.
“나는 정말 반성하고 있어.”
“반성은 당신 인생에서 하면 돼. 내 인생으로 돌아와서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끔 흔들릴 때가 있다.
아이가 엄마와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예전 가족사진을 정리하다가 세 사람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잠깐 멍해질 때도 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까. 내가 더 빨리 눈치챘다면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결국 답은 같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복수심 때문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를 배신하고 싶지 않다. 그때 무너진 나를 겨우 일으켜 세우고, 아이와 둘이 살아갈 집을 다시 만든 시간이 있었다. 밤마다 아이가 잠든 뒤 혼자 울던 날도 있었고, 회사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버틴 날도 있었다.
그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용서와 재결합은 다르다.
나는 그녀가 앞으로 잘 살기를 바란다. 아이 엄마로서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 아내로 다시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
부서진 그릇은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금이 간 자리에 매일 손이 베일 걸 알면서, 다시 그 그릇으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나는 전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는 아이의 부모로는 계속 협력할 거야. 학교 일, 병원, 상담, 필요한 건 같이 이야기하자. 하지만 부부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
그녀는 울었다.
나는 더 이상 달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그녀가 울면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누군가의 눈물이 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전처의 후회가 아니라, 아이의 안정과 내 삶의 평온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배신한 전 배우자가, 새 사람과 불행해진 뒤에야 후회한다며 돌아오겠다고 하면,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