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이 한해에도 / 이해인
노을빛으로
저물어가는 이 한해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녁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태양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내 마음에 다짐해 보면서
12월 남아있는 마지막 날에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초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보다는
소중한 옛 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 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저무는 이 한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로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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