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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공부방

무속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작성자본부장|작성시간11.12.21|조회수500 목록 댓글 0

무속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무(巫)의 사상을 알기 위하여는 먼저 그 개념과 성격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종교들과 달리 그것은 그 동안 숱한 오해와 편견, 선입견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종래에 가장 널리

쓰여온 무속(巫俗)이란 용어로부터 살펴본다.

 

이 관계 연구의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이고 있는 이 낱말은 글자의 뜻으로는 '무

당의 풍속' 또는 '무당의 세계에서 관용되는 풍'을 가리킨다. 그러나 왕조 시대 때 '속(俗)'은 단순

한 풍속이 아니라, '유교(儒敎)'를 숭상하던 양반 관료층의 안목으로 백성들을 저질스러운 속된 것

을 뜻하였다. 무속(巫俗)이란 용어는 조선조의 유학자들이 무당을 천시하여 그렇게 불렀던 것이

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이 방면 연구에 관심을 둔 학자들이 비판 없이 그것을 받아 써 오늘에 이

르게 되었다. 조선조가 무당을 천민(賤民)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들의 풍속을 무속(巫俗)이라 하였

던 것이니 이 용어에는 이미 천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후

학술용어로서 계속 통용되어 온다는 것은 그 전체 현상을 객관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巫)가 조선조 때 천시된 것 외에도 일제시대 때 민중의 종교로서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점,

그리고 해방이후 서구식 내지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하여 비합리적인 미신(迷信)으로 낙인 찍혀온

사실은 무(巫) 신앙의 바른 이해를 끊임없이 저해하였다.

 

그러나 무(巫)는 고대에 신교(神敎)라 불리었거니와, 이후 혹독한 탄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민중에서 두루 신앙되어 온다. 이러한 신앙의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다 신령, 무당, 단골 사이의 신앙 구조를 강조하여 이것을 무교로 부

르는 이들도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종교의 성격과 면모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려는 의도만은 거기에 충분히 엿보인다.

 

무(巫)는 미상불(未嘗不) 종교이다. 그것을 두고 종교라 하면 저항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일반인

들이야 뚜렷한 기준 없이 기독교나 불교 등 기성종교들을 염두해 두고 그런 느낌을 가질 것이다.

한편 그들의 막연한 인식 이면에는 무(巫)에 대한 종래의 선입관, 즉 무언가 귀신스럽고 저질스러

운 미신이라는 고질적인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문에 종사하는 이들은 종교의 기준으로 몇 가지 항목을 으레히 들먹인다. 교조

(敎祖)나 교리(敎理) 또는 경전(經典)이 없고 교단(敎團)이라 부를 만한 조직이 없다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이들의 머리에는 종교의 기준과 관련하여 예수, 성경, 교회 등이 대뜸 연상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낡은 서구식 종교 개념일 뿐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

다.

 

그같은 종교 개념으로서는 세계 각 문화, 민족의 다양하고도 고귀한 종교현상을 온전히 설명

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비교 종교학이나 종교 인류학에서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한다.

여기서 종교의 개념 정의를 내리기는 진부하다. 그에 관한 수많은 시도가 있어 왔지만 이 복합

적이고도 광범위한 현상을 다 만족시키기란 매우 어렵고도 곤란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학자

들은 그래서 종교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반응' 내지 '상징적 체계' 로 넓게 파악한

다.

 

무당과 샤머니즘(Shamanism)

 

무(巫)는 이러한 의미에서 당연히 종교에 든다. 그리고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령과 조상을 믿으

며, 단골을 신도(信徒)로 두고, 그 둘 사이에 사제(司祭)로서 무당이 있어 갖가지 종교 의례를 통

하여 그들을 중재한다. 따라서 무(巫)는 종교학의 관점에서 종교로서 연구, 이해되어야지 한낱 풍

속을 지칭하는 무속(巫俗)이나 민속학적 관점에서 취급되어서는 실로 곤란하다.

 

설문해자(說文解

字)에 의하면 巫라는 글자는 '여자로서 형태 없는 것을 섬기고 춤을 추어 神을 내리게 하는 자'라

풀이된다. 이것은 본디 '격(格)'이 남무(男巫)를 지칭하는데 비하여 여무(女巫)를 가리킨다. 한편

이 글자는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 양옆에 사람들이 춤추는 꼴을 취한다. 여기서 기둥이란 이른바

신목(神木) 또는 우주목(宇宙木, Cosmic tree)이 되는 것이고 그 춤추는 이가 바로 무당이다.

 

그럴진대 巫는 무당이 굿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그 전체 종교 현상을 설명해 주는 적절한 용어가 된

다. 그밖에 무당이나 그 신도들은 그들의 종교를 포괄적으로 '巫' 라 부른다.

 

'우리 무(巫)에서는 어떠어떠하다' 는 것이 그러한 용례인데, 이것은 무(巫) 전체를 나타내는 집

단 개념이다. 이처럼 가치 중립적이고도 포괄적인 용어인 무(巫)가 앞으로 두루 쓰여져야 마땅하

다.

 

그 다음 무(巫)와 샤머니즘(Shamanism)이란 영어 개념과의 상관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네 무(巫)와 중국의 무(巫), 그리고 만주,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 사이의 관계 및

그 성격 차이를 밝혀 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명의 노력은 별로 없었

으며 혼란만 중첩(重疊)되어 온다. 그 둘 사이를 구분해 보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무속과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각기 다른 신앙체계이고 무당은 샤먼(shaman)이 아니라는

견해가 제시되었는가 하면, 무병 현상을 기준으로 하여 한국 중부 지방을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남방(南方) 한계선으로 잡고 남부지방을 토착적인 단골 신앙의 지역으로 보는 주장도 있었다. 이

두 견해는 모두 이 종교의 외형적이고 현상적인 면에만 주목하여 성급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

것은 오히려 무엇보다 용어와 개념의 문제에 해당된다.

 

샤머니즘이란 용어는 1704년 폴란드의 상인 '이데스'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 학문계에 등장한다.

그는 1692~1695년 사이 러시아 피터 대제의 사신 자격으로 모스크바에서 북경까지 여행하였다.

 

그 길에 바이칼 호수의 서북부에서 퉁구스족(族)의 박수무당을 만나 그의 굿을 관찰하였다. 그 듣

도 보도 못한 희한한 행사와 이름을 묻는 이데스의 물음에 퉁구스인들은 샤먼이라 일러 주었던

것인데, 그는 1704년 그것을 포함한 그의 여행기를 폴란드어로 출판하였다. 그리하여 이 용어가

급기야 학술 용어로 굳어지고, 이후 평생을 다 바쳐도 읽어내지 못할 만큼 많은 엄청난 양의 논

저(論著)가 발표되어 온다. 그리고 이 관계의 수많은 보고와 이론이 제기되어 오늘날 우리의 샤머

니즘 개념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의 무속사(巫俗史)의 변천

 

서양에서의 샤머니즘 용어의 출발이 그러하였지만 그것은 결코 최초의 보고가 아니다. 그보다

대략 500년이나 앞서 샤먼에 관해 기록한 것이 중국에 전한다. 남송(南宋)의 '서몽신' 이 기술한

'삼조북맹회편'의 권 3 은 여진족(女眞族)을 다루고 있는 바, 거기에 여진어(語)로 무구(巫 )를

'산만' 또는 '살만' 이라 한다. '살만'의 중국음은 '사만' 으로서 영어의 '샤만'과 비슷하며 똑같이 무

(巫)의 사제를 가리킨다.

 

중국에 있어서 무는 국가의 출현과 함께 이미 존재하였다. 상조(商朝)에는 무함(巫咸) 등이 상무

(商巫)의 대두목으로서 정치와 종교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주대(周代)에 오면 정교(政敎)의

분립이 일어나서 종교의 직무는 무(巫), 축(祝), 사(史)에 분관되고, 그에 따라 무(巫)의 권력은 축

소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대(漢代) 이후 巫는 끝내 권력 구조에서 배척되어 버리고 유(儒), 불

(佛), 도(道)가 그 대신 권력에 밀착하게 된다.

 

무(巫)는 그후 민간의 종교로서 명맥을 이어 갔다. '부란' 과 '사대문' 등이 그런 유이다. 특히

사대문은 중공 성립이전 중국 북방에 널리 퍼져 있던 무(巫)인데, 북경 교구(敎區)에서는 그 무당

을 '살만태태' 라고 불렀다. 이들의 신당(神堂) 차림이나 행하는 종교 의례는 우리네 무(巫)의 것

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로써 중국이나 한국에 있어서의 무(巫)와 만주,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

니라 같은 종교 현상을 두고 달리 불러 온 것이고 용어가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둘이 외양에서 다르게 보일 것은 당연하다. 그 문화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

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은 일찍이 문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이루었으며, 여러 종교를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세운 이른바 고등문화권에 속한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무(巫)는 그에 걸맞게 겉모습을

다듬어 갔던 것이니, 신령의 표현, 신당(神堂)의 구성, 무당의 복식, 무가(巫歌), 종교의례 등이 오

늘날에 보는 그같은 생김새를 취하게 되었다.

 

반면 만주나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그 자연 환경도 그러하거니와 국가의 형성을 보지 못한 배경 아래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20세기에 이른 것이다. 양자 사이의 겉모습 차이는 그러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본질이나 구조는 서로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한편 서양 학문의 일방적 수용이 무(巫)와 샤머니즘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데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양의 샤머니즘 연구가들은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

에 바탕한 종교 이해로써 샤머니즘을 연구하여 온다. 그들의 샤머니즘 이해란 요컨대 그들의 안

목에서 일정하게 걸러진 그러한 것들이다. 그것이 실상과 어느 만큼 거리를 가질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저들의 샤머니즘 이해를 마치 경전인 양 받아들이는 이쪽 연구가들의 태도가 문제다.

 

 

저들의 이론을 가지고 우리네 무(巫)마저 마구 저울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사정에서

무(巫)와 샤머니즘의 연구는 더욱 많은 혼란을 자초하여 온다. 우리는 문제를 전체의 유기적인 관

계와 상황 속에서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그토록 오랜 역사 동안 살아 신앙되어 온 무(巫)

를 충실히 이해하고 그로써 주변의 무(巫)와 비교하여 그 차이점 및 우리 무(巫)의 특성을 제대로

밝히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신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 먼 옛적 인간들은 신령과 직접 교재 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자격은 상실되고 이제 신령과의 대화의 전문가인 무당에게 그것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령과의 만남은 그렇게 되었으나, 인간은 지성을 드림으로써 신령에게 간구할

수는 있다.

 

치성에는 일정한 종류가 있고 또 의식의 규칙이 잡혀 있다. 대개 굿보다는 덜 심각한 문제와

관련하여 무당의 처방에 의해서 거행된다. 단골이 무당의 도움을 받아 치성 드리는 것이 보통이

고 절기에 따라 옛법대로 집안에서 그냥 집행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한 경우 무당은

굿의 처방을 내리고 그것을 벌인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무당은 온갖 신령을 법에 따라 순서대로 모셔 받들고 그들을 춤, 노래 및

제물로 기쁘게 해 드리며, 그 단골에게 신령의 말(空唱)을 전해 준 다음 신령을 돌려보낸다. 굿은

바로 이들의 만남인 것이다. 굿을 놀 수 없으면 무당이 될 수 없고 굿은 무(巫)의 가장 기본이 되

는 종교 의례가 된다.

 

신령과 교제할 수 있는 무당의 자격이 그러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장래의 무당은 돌

연히 신병(神病)을 포함한 일련의 복합적 징후를 보인다. 이것은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병과는 달

리 일종의 종교 체험이며 종교적 소명(召命)에 해당한다. 이런 체험이 신령과 관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본인이나 가족이 한 무당을 구하고, 그 무당은 그를 위해 내림굿을 주관한다. 그 무당

은 그 후 이제 갓 태어난 애기 무당의 신(神)아버지 또는 신(神)어머니가 되며, 애기 무당은 그에

게서 무의 제반 관습을 포함하여 굿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편 내림굿 도중에 몇몇 신령이 그 후보자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데, 이들은 그 애기무당의 몸

주로서 모셔진다. 애기 무당은 내림굿이 끝난 다음 제 집의 방 한 칸이나 어느 모퉁이에다 그의

몸주를 위해 신당(神堂)을 꾸민다. 그리고 내림굿에서의 인연, 또는 애기 무당의 영험한 신점(神

占), 기타 다른 계기를 통하여 이 무당의 단골이 형성된다.

 

애기무당이 몸주를 모시고 그 후 신(神)부모로부터 굿하는 법을 배우면서 그는 점차 신들림의

전문가로 형성되어 간다. 굿에서 신들리고 무꾸리에서 신들리며, 그래서 단골의 문제를 근원에서

부터 소상히 알아 이것을 풀어주는 강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신령과 전문적으로 교제할 수 있게 된 무당은 일반적으로 사제(司祭), 치병자(治病

者), 예언자의 기능을 감당하는 것으로 얘기된다. 시베리아 샤먼의 경우 - 이미 수십 년 전 러시

아 변혁의 과정을 겪으면서 집단 농장의 일원으로 몰락되고 말았었지만 - 재판관의 기능까지 거

론되었으나 우리네 무당에게는 그 기능이 매우 약하다

 

무당은 굿이라는 巫의 종교 의례를 집전하는 사제이다. 또한 다른 종교들의 사제와 마찬가지로

그의 신당(神堂)을 관리하고 그 신당에서 일정한 법도를 지킨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 재계하고

신당에 들어가 신령 화본(巫神圖 ) 앞에 놓인 옥수그릇의 물을 갈고 신령께 향을 올린다. 신령의

탄생일, 제삿날, 기타 강신(降神)기념일 등이 되면 무당은 그 신당의 모든 신령에게 마지를 올린

다.

 

단골은 신당(神堂)에서 맞아지고, 무꾸리를 하는 곳도 신당이다. 이런 일이 사제로서의 무당의

행위에 든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사제와는 다르게 무당은 특히 굿에서 신내림의 체험을 전문으

로 하는 특수한 사제이다. 단골들은 그들의 사제들을 찾아와 모든 큰 일을 상의하여 처리한다.

굿 가운데에는 병굿이 있고, 그것이 양식으로 치성의 규모로 거행되면 푸닥거리가 된다. 병굿은

이즈음 굿당에서 꽤 빈번히 거행되는 굿종류의 하나인 종교로 무당의 치병의 기능은 분명하다.

무(巫)에는 갖은 병에 대한 처방이 있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한 형편이다.

 

몇몇 전통무에게서만 그 편린(片鱗)이 확인될 뿐이다. 조선조에 무당이 오늘날의 보건소에 해당하는 활인

서(活人署)에 소속되어 주로 전염병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것은 무당의 이 기능을 잘 대변해 준다.

치병, 특히 병굿의 그것은 서양 의학의 물리, 화학적 치료와는 달리 종교적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병이나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을 써야 할 병이면 약방이나 의사에게 환자를 보낼 줄을

무당은 최소한 알고 있다. 단골도 병이 났다하여 바로 무당에게 직행하지 않는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보고, 그래도 효과가 없을 때 무당의 그 종교적 치병에 의지하는 수가 흔하다. 그러면

무당은 신령의 힘을 빌어 그 병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잡귀(雜鬼)를 몰아내고 환자와 그 가정의

조화(調和)를 회복시켜 준다.

 

세 번째 기능인 예언(豫言), 점복(占卜)은 무(巫)의 특수한 면을 보여준다. 즉 무당은 신내림의

명수이기에, 늘 신(神)과 교제하기에 신(神)으로부터, 아니 신(神)에 씌여 인간의 일을 소상히 알

아내고 그 앞일을 가르쳐 준다. 점복(占卜), 예언은 무당의 숙명적 기능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천

대 때문에 무업(巫業)을 그만두고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된 무당이 바로 이 본성 때문에 절에 온

사람들에게 점을 보아주고 하다가 그 전직이 탄로나 절을 떠나야 했던 일도 있다.

 

끝으로 하나 추가했던 가무오락 내지 전통문화 계승자로서의 기능을 간략히 살펴보자. 巫 안에

많은 전통 문화의 요소들이 있기에 무당은 그것을 일일이 다 제대로 학습해야 한다. 춤, 노래, 장

단, 제상 차림, 복식, 무가(巫歌), 지화(紙花), 악기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 배움에는 신령에 의

한 가르침도 있어 별다르다. 제대로 공부한 무당의 경우, 전통 문화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 전문

가들이 그들을 찾아가 묻고 배우는 사례를 우리는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본다.

 

무당의 이러한 기능은 한국 무(巫) 역사의 어느 때 어느 단면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시대때 무당

이 왕의 고문 내지 점복자로서 일하였고, 고려시대에 왕명에 의하여 무당이 기우제를 주관한 기

록이 빈번하다. 무당이 왕이나 왕족의 병을 고쳤다는 기사도 도처에 보인다. 무당의 가무(歌舞)가

뛰어나 부름을 받은 예도 여기 저기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 무(巫)가 분화를 겪으면서 흔히 민중의 종교로서만 저변화 또는 저속화 하였다는 견해는

무당의 저같은 기능을 알지 못한 소치이다. 바로 그 기능 때문에 무당은 '나라무당(國巫)'으로서

왕가에 봉사하여야 했던 것이고, 나아가 온 사회 계층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巫는 순전히 다른 가치관에 의하여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

된다. 현대의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그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숨어서는 그 기능을 인정하고 무당

을 찾을 진대 그 깊은 모순과 갈등이 큰 문제이다.

 

<무속의 제의>

 

☞무속의 제의는 무당이 신(神)을 만나 인간의 소망을 비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신을 만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은 현실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의(祭儀)에 따르는 특수한 절차가 필요하

게된다.

무(巫)가 종교체험으로 투사된 초월적인 힘의 내용이 신관과 신화를 이루면서 이에 대한 신성(神

聖)의 구체적 표현이 무의 행위인 굿으로 나타난다.

굿이란 '가무가 수반되는 큰 규모의 제의로서 신과 인간의 상봉, 대화를 의미'하고 이것으로부터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굿의 종류>

 

☞굿은 가정과 개인을 단위로하는 일반적인 굿과 마을의 생활공동체를 단위로하는 동신제인 당굿

이있다.

일반 굿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굿과 죽은 사령의 저승천도를 위한 굿으로 나눈다. 일반굿은 기

복을 위한 재수굿, 성주굿, 구자를 위한 삼신굿, 칠성굿, 치병굿, 환자굿등이며 사령을 위한 오구

굿, 지노귀, 사자굿, 씻김굿, 조상굿, 수왕굿, 망묵굿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동체를 위한 동제로는 강원도의 별신제, 임장군굿, 국사당 단오굿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강신무

의 성무제의인 내림굿, 신굿, 가릿굿등의 특수제의가 있다.

 

<굿의 절차와 구성>

 

☞ 굿은 통상적으로 열두거리라 하여 전 과장이 열두개의 과장으로 나뉘어져있다.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당 신을 굿에 청하여 드리는 청신과정, 청해온 신을 가무로 즐겁게 해드

리는 가무오신과정, 초청된 신이 무에게 내려 공수라는 신의 의사전달을 보는 신청과정, 굿에 초

청된 신들을 돌려보내는 송신과정등으로 짜여져 있다.

모든 과정에 천지인에 해당하는 삼신(三神)신앙이 내포되어 있으며, 화려한 신복과 구성진 사설,

그리고 흥미와 감동을 일으키는 신화들이 포함되어져 있다.

종합예술의 백미가 바로 우리 한국의 굿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성싶다.

 

흔히 굿이라고 불리는 무속 의식에 쓰이는 음악을 무악(巫樂)이라 한다.

무의식과 무당춤반주에 연주된다. 원시 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는 전통적인 신앙 의식에 쓰이는 음

악으로 한국의 모든 토속음악과 절대작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무악은 지역에 따라 악기편성,

악곡, 음악적 특징이 서로 다르다.

 

1)경기무악

 

☞경기도 남한강 이북과 그 주변의 무속 음악이 여기에 든다.

악기는 장고, 자바라, 피리, 젓대, 해금으로 편성된다.

 

2)호남무악

 

☞전라도, 충청도의 단골무당의 무속 음악이 여기에 들며,

이와 유사한 것으로 경기도 남부 무악이 있다.

악기는 장고, 징, 피리, 젓대, 해금으로 편성된다.

 

3)동부무악

 

☞경상도, 강원도의 동부의 무속 음악이 여기에 들며,

함경도 무속 음악도 이와 비슷하다.

악기는 깽매기, 징, 장고 등이며, 경상도 남서부에서는 관악기를 쓰기도 한다.

 

4)서도무악

 

☞평안도 무속 음악이 여기에 들며,

황해도 무속 음악은 평안도와 경기 북부와의 중간 형태로 되었다.

악기는 장고, 바라가 쓰이며, 깽매기를 쓰기도 한다.

 

5)제주무악

 

☞제주도 지방의 무속음악이 여기에 든다.

악기는 징, 북, 장고, 설쇠(깽매기)등으로 편성된다.

 

 

※ 지리산의 무속

지리산은 수천 년의 세월을 두고 우리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 받아 오면서 무속신앙의 발원지

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설이 옛날 천신의 딸 성모마고가 지리산에 내려와 딸 여덟 명을 낳았는데 모두 무당

으로 길러 팔도에 보내 다스리게 했다는 무조설이 그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이자 조선팔도의 무당 어머니인 성모 마고가 바로 천왕봉 성모사에 모

셔져 내려왔던 성모상이 그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이 성모상의 주인공에 대한 견해는 불교계에서는 석가여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산신령으로 모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 가지로 제시되고 있으나 우리 민중사회에서는 어떻든지 천왕봉의 성

모상(지금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을 지리산신령으로 인식, 대자연의 성모

로 받들어 추앙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성모상이 우리 민중의 정신적인 절대자로 추앙받아온 사실은 옛 사료에서도 명백히 입증되고 있

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천왕봉 정상의 성모사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을 "풍기문란"과 "실농위기"

를 맞을 만큼 극성스러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에 의하면 남도의 농민들이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6∼7개월 동안 천왕봉 성모사에 모여 기

도를 하는 등 치성을 드리고 있는데 고산의 기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남녀가 바위틈에서 부둥켜안고 있을 정도로 풍기문제가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보다 더 큰 일은 농사철에 농사는 돌보지 않고 치성 드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실농을

면치 못해 조정에서는 관찰사의 보고를 받고 이를 금지 시키기까지 했으나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

한다.

성모석상을 찾는 행렬이 오죽 많았으면 이같은 문제가 기록으로까지 전해져 오고 있을까하는 마

음도 드는데 진양지에는 천연이란 스님이 무당의 무리들이 백성을 유혹해 복을 구하는 꼴을 못

보겠다며 성모상을 구타한 이유를 적고 있기도해 이 나라 민중의 샤머니즘 상황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민중사이에서 지리산신령으로 무속신앙의 대모로 여겨져 왔던 성모상을 여러 엇갈린 주장과 수난

을 겪어오면서 한때는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기도 했으나 천왕사 혜범스님에 의해 찾아져 지금은

천왕봉이 아닌 천왕봉 발아래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지금도 수많은 불자들과 치성객들이 성모상

을 찾아 치성을 드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석가여래의 어머니상이건 팔도 무당의 어머니상이건 우리네 민중의 이를 신성한 절대자임에 틀림

없다고 믿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리산에서 무속신앙은 비단 성모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큰산과 강

그리고 땅 나무 등에도 신이 붙어 있다고 믿어 이름 난 명산과 풍광이 수려하고 특이한 어느 곳

에서나 치성을 드리고 굿판을 벌였다. 이러한 치성의 행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지리산은

큰 바위나 물줄기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성계곡 상류의 영신대를 비롯, 천왕봉이 우러러 보이는 신선너덜, 백무동의 굴바

위당, 칠선계곡과 용류담, 서산대사가 도를 깨우쳤다는 피아골 산장 뒤편, 중산리 계곡등 이루 헤

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즐비하다. 이들 모두가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득도 희

망자와 무속신앙의 신봉자, 기도객등이 몰려들고 있다.

대성계곡 상류의 영신대는 깨끗한 반석 사이로 맑디맑은 물이 흐르면서 흡사 수중궁궐 같은데다

거대한 대성폭포를 끼고 있어 신비로운 자연 경관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제 이 일대는 비밀스런 기도처는 아니다. 등산객을 위장해 들어오는 지성객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아예 북이나 징, 꽹과리에다 돼지머리 과일 떡 할 것 없이 모든 장비를 꾸려 이 곳

으로 들어와 굿판을 벌이기가 다반사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신대 일원 바윗덩어리에 온갖 글귀들이 새겨지고 계곡에는 음식물들이 널리기도해

공단관계자들의 끈질긴 제재를 받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다.

자연학습원을 조금 지나 1km지점에 위치한 신선너덜의 경우도 치성 드리는 곳으로 안성맞춤이

다. 신선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유혹이 될 수 있는 데다 충분한 유혹이 될 수 있는 데다

신비한 바위들이 널따랗게 펼쳐진 너덜 위로 빤히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기도처인 셈이다.

누구라도 이 곳에 서서 천왕봉을 쳐다보면 기도하고픈 마음이 일 정도이니 굳이 말할 나위가 더

없는 곳이다.

지금은 중산리 매표소에서 치성객들의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어 기도객들이 잘 보이지 않고

있으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연일 굿판이 벌어지던 곳이다. 더욱이 신선너덜 지대 오른편에는 반

반한 바위가 벽처럼 기대고 있는 곳이 있는데 제단으로는 으뜸으로 여겨져 산청군에서는 이곳에

지리산제단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매년 평화제를 시작하면서 이 제단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있다. 물론 지역 문화축제 차원이나 그

저변에 잠재된 그것은 우리 민중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샤머니즘이 아닐까 한다.

신선너덜의 진입 어려움 탓인지 요즈음은 천왕봉이 바로 보이는 중산리 계곡이 치성객들의 기도

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집단시설지구가 한창 조성되고 있는 중산리 계곡 5백여m 위쯤부터 시

작되는 중산리 계곡의 기도처에는 바위 마다 글귀가 새겨져 있지 않은 곳이 드물다.

5년여전 이 계곡에서는 귀성객들이 밤새 기도를 올리다 계곡 물이 불어난 것을 뒤늦게 알고 건너

오다 급류에 휩싸여 참사를 빚은 일도 생겨 가급적 삼갈 것을 부탁하고 있으나 그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을 정도다. 백무동과 한신계곡의 물줄기와 바위굴등지도 마찬가지로 토속신앙의 산실이다.

백무동 굴바위당은 예전부터 있다할 정도로 효험이 있다해 지금도 아들 못 낳는 여인네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가네소의 경우는 기우제 장소로 유명하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원시림 사이로 시원스레 쏟

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기우제를 지내면 신통하게도 비가 내렸다해 가내소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

으로 정해져 있다하니 우리의 토속신앙도 나름대로 체계화된 그 어떤 규범 내지는 논리를 갖고

있지 않았나 추측해 봄직하다.

우리 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칠선 계곡과 용류담중 역시 최고의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천왕

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향해 기도하고픈 마음은 누구나 공통된 심리일 것은 분명해 계곡 초입부

터 기도처로 이용하고 있다.

칠선계곡과 백무동, 뱀사골의 물줄기를 하나로 묶어 흐르는 엄천강변의 용류담은 우선 산 속의

호수와 같은 경관만으로도 치성객을 끌 수 있는 곳이다. 비교적 교통편이 좋아 최근에 더욱 이용

되고 있는데 아예 굿당이 지어져 있고 언제 가더라도 굿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이 용류담이다.

이밖에 이름난 봉우리의 계곡 어느곳 할 것 없이 지리산에는 샤머니즘의 흔적이 남아 오늘날에까

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같은 토속신앙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수천년 세월을 두고 계속되면서 뿌

리를 내린 것으로 보아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사상이 단순한 개인 차원의 치성에서부터

국태민안을 비는 차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토속신앙은 근대에 이르러서는 주로 극성스런 무속신앙 신봉자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있으나 그 바탕은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 동화돼 평화제(산청), 약수제(구

례), 천령제(함양)등 각 지방자치 단체별로 주관하는 지역 축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어 화합의 장

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간은 신을 영묘한 존재로 경의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지리산의 토속신앙은 계속될 것으로 보아

진다.

 

※무속신에 대하여...

무속에서 모셔지는 수많은 신령들의 명호와 그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흔히 열두 신

령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우리 무속 신앙에서 모셔지는 신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

로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일반적으로 모셔지는 신령들의 명호와 역할을 위주로 설명하였습니다.

 

1)천상신

 

☞먼저 천계에 거주하면서 최고의 존재로서 숭배되고 있는 신령은 하나님, 옥황상제, 제석천존,

여래불보살등이 있다.

이 중에서 하나님은 천주를 의미하고 옥황상제와도 동일시되며, 또한 제석은 명과 복을 주는 최

상의 신으로서 삼신 또는 삼불 제석으로도 불리운다.

불교에서 모셔지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모두 무속에서도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심지

어는 유교와 도교의 여러 신들도 모두 그 대상이 되곤 한다. 일월 성신을 비롯하여 북두칠성, 삼

태육성, 이십팔수의 모든 우주의 성진 까지도 공경과 기도의 대상이 된다.

이 천상신들은 모든 중하위의 신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으며 우주의 백사만물을 자유자재로 움직

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추앙받고 있다.

 

2)영웅령

 

☞천상령에 이어서 무속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옛날 지상의 영웅, 위인 선각자, 장군 등의 영혼

을 위력 있는 신으로 설정하여 엄숙하게 모셔진다.

이 영웅신에 속하는 신령으로는 덕물산의 최영 장군, 임경업 장군, 황해도 평산의 신장군, 유장군,

배장군, 복장군, 감악산의 천총대왕, 매당왕신, 이씨별상, 김유신장군, 이순신장군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중국의 관운장, 소열황제, 와룡선생, 장장군, 조장군, 마장군, 황장군등이 모셔지며, 불

교의 여러 신중들도 간혹 신장이나 장군의 역할로 모셔지기도 한다.

이 영웅령의 역할은 기세가 등등하여 모든 악귀를 소멸하고, 국태민안을 돌보며, 섬기고 예배 올

리는 자를 돌본다.

 

3)시방법계 제불보살

 

☞무속에서는 전래의 무속신들 이외의 여러 신들을 같이 모신다.

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의 하나가 불교의 불보살님들과 신중들이다. 물론 천상신의 일부

로도 모셔지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거개가 신단의 대부분을 불보살님을 봉안하는 것으로 장엄화하

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대상으로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약사보살등이며 드물게는 지장보

살이나 인로왕보살을 모시는 신단도 있다.

불력에 의지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며 모든 제반 고액을 소멸해주신다고 믿는다.

 

4)불사 제석, 천왕

 

☞무속의 중요한 신령님으로서 명과 복록을 주관하시며 일체의 부정을 싫어하신다.

천신과 제불보살님의 아래에 위치하여 소원자의 소원을 아뢰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쉽다. 각 가

정마다는 가내 불사가 있어 예로부터 공을 많이 드려온 집은 불사를 잘 위해야 집안이 편안하다

고 한다.

불사가 노하거나 편치 못하고, 집안에 부정한 일이 많이 있으면 '불사바람분다'하여 무속에서는

가장 무서운 벌전으로 여긴다.

 

5)산왕대신

 

☞팔도명산의 산신령님들로 무속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신령이시다.

굿에서도 이 산신령님이 노시는 거리를 큰거리라고 부를 정도로 모든 만신들의 주장이고, 모든

신들의 귀의처다.

산마다 그 산을 지키는 신령이 계시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태어나는 지점의 산줄기의 영기를

받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를 본산이라고 하며 본산의 벌전이 비치면 가문이 망하고, 인구가 줄어들 정도로 그 화가 심하

다고 한다.

산신령의 대표적인 신명으로는 덕물산의 최영 장군과 태백산의 단군 할아버지이다.

 

6)용왕대신

 

☞사해수부의 용궁신을 가리키며 풍어와 복록을 주관하시는 신이 요즈음은 불사와 동격의 소신령

으로 자리잡았다. 바다의 해신뿐만 아니라 강이나 연못, 우물, 계곡 등에도 용신이 있어 대우를

받는다. 집안을 물과 같이 깨끗하게 맑혀주시고 돌봐주신다.

방생의 대상으로 무속에서는 용왕님을 받든다.

 

7)도사신령

 

☞천문도사, 지리도사, 축지도사, 마의도사, 약사도사, 글문도사등 많은 도사신령들이 모셔진다. 도

술도법에 능하고 법술이 통하여 모든 일에 성심껏 기도하면 과학으로도 풀기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내시는 신령이시다.

이 도사신령을 모시는 사람은 그 만큼 자기수양과 기도도 열심히 하여야만 그 영험을 볼 수 있

다.

 

8)대신할머니

 

☞천하대신, 지하대신등의 열두 대신이 있어 무당에게 영력을 주고 재주를 주어 무당이 무업을

생업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준다.

주로 무당의 조상 중에 도를 많이 닦아 공이 높은 사람이 대신이 되어 무당의 몸에 실려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를 몸주대신이라하며 무꺼리 갔을 때에 점을 쳐주는 신이 바로 대신이다.

 

9)호구마마

 

☞무속에서 매우 심술 맞고 변덕도 심하여 가장 그 화를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신이다.

별상과 함께 옛날 홍역을 많이 앓던 시절에 아이들이 그 병에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

도록 보살펴 주는 역할을 하던 신령인데 요즈음은 집안 식구들의 액운을 막아주고 병을 없게 해

주는 신으로 상정된다.

얼굴이 박박얽은 곰보의 형상으로 굿거리에서 놀아지며 탱화에는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를 찍

은 여신으로 표현된다.

 

10)창부대신

 

☞굿을 주관하는 무당은 노래와 춤에 능해야한다.

무당에게 재주를 내려주고 일년 열두 달의 횡액을 막아주는 고마운 신이다. 줄광대씨, 전라도 남

원의 소리창부, 문홍갑씨등 많은 창부신들이 모셔진다.

 

11)동자신령

 

☞천상의 옥황상제를 모시는 천상동자로부터 문수선재동자, 관음남순동자, 산신동자, 용궁동자, 별

상동자, 명두, 태주등 어린아이로 형상화된 신들이다.

높으신 신령님들의 심부름을 하고, 무당에게는 영력도 주며 어리광도 많고 심술도 많은 이 동자

신령들은 무당에게 실리면 아무리 나이 많이 먹은 노인제자라도 어린애 목소리와 행동을 아무렇

지 않게 한다.

무당이 연기공부를 한 탤런트가 아닌 이상 어쩜 저렇게 어린아이같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속이라는 것 자체가 한복이나 시루떡과 같이 순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신으로 치부 당하고

식자들에게 외면 당하는 현실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정신적인 귀의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는 무속신앙이야말로 인간본연의 순수

함을 그대로 나타내 줄 수 있는 정말 종교다운 종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무속의 성격>

 

☞무속은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지고 있는 종교적 현상으로 민간신앙 가운데서 가장 확고한

신앙체계를 이루고있다.

종교지도자로서의 무당은 종교의식을 집행한다.

이 의식에 필요한 구비경전으로서 무가와 무의 신화가 있는데, 여기에 우주의 질서와 교리적 지

침이 들어있다.

무속은 원시적 종교의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종교로서의 모든 요소를 구비하고 있어 오늘

날에도 살아있는 종교로서 민간층에 뿌리깊이 파고들어 폭 넓은 기반을 갖고있다.

무속은 불교, 유교, 기독교등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한민족의 신앙기반이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미신으로 치부당하고, 비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신관자체가

많이 훼손 당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민중의 마음속 깊은 곳에 원초적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종교의 한 형태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의 유형과 분포>

 

현재 한국에 분포되어있는 무를 성격상으로 분류하여 보면 무당형, 단골형, 심방형, 명두형등으로

나뉘고 그 분포지역도 각기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보인다.

 

무당형은 강신 체험을 통해서 성무의식을 통해 무가 되어 가무로서 굿을 주관할 수 있고 영력에

의해 점을 치며 예언한다.

중부와 북부지방에 분포되어있는 무당, 박수 등이 무당형에 해당된다.

 

☞단골형은 혈통에 따라 대대로 사제권이 계승되어 인위적으로 무당이된 세습무로서 기예를 배우

고 익혀 신을 향해 일방적인 가무로 굿을 주관한다.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심방형은 제주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무당형과 단골형의 중간형으로 영력을 중시하고 신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나 신이 직접 몸으로 강신하지 않고 굿을 할 때 영통이 없이 무점구들을 통해 신의

뜻을 물어 전달한다.

 

☞명두형은 어린아이 죽은 혼신이 몸에 실려 점을 치는 강신무이다.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분포를

보이며 명두, 태주, 동자, 선녀 등으로 불린다.

 

Ⅱ. 巫의 원리

 

한국 무(巫)의 구조와 기능을 살펴보는 가운데 단골과 무당과 신령이 굿에서 만나 문제를 푸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초월자와 인간과 사제가 그 신내림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로 되는 조

화(調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무(巫)의 한 요소로서 인간 또는 단골이라 하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인간이나 단골이 아니다. 굿

에는 단골의 집안이 그것도 외가(外家)와 친가(親家)를 위시하여 출가한 딸들도 참여하고, 또 그

단골의 이웃과 동료 단골들도 즐겨 자리를 함께 한다. 단골이 소속하여 있는 여러 사회가 동시에

굿에 참여하는 셈이다. 따라서 굿에서의 신령과 무당과 단골의 만남은 사회의 고른 참여와 확인

내지 보증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조화가 사회까지 포함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다.

굿의 이같은 구조에서 확인되는 조화(調和)는 실로 무의 원리이다. 결코 어느 한 면,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침이 없이 온 구석, 모든 부분을 망라하여 고루 어우러지게 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문

제란 사람, 생활과 만물, 그리고 신령(神靈)계를 포함하는 세상에서 늘상 다소간 상실되게 마련인,

그 조화의 깨어짐에 있다. 깨어진 조화는 그러면 무(巫)에서 굿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굿의 구조에서만 아니라 굿의 구성, 신명의 성격, 무당의 기능 등등에서도 뚜렷이 나

타난다. 굿의 구성에서부터 그것을 살펴보자.

굿은 크게 보아서 세부분으로 짜여 있다. 첫부분이 준비 과장이고, 끝부분은 종결 과장이며 그

사이에 본(本)과장으로서의 거리과장이 자리한다. 준비과장의 재차(第次)는 주당물림, 부정, 청배,

진적 등으로 짜여 있는데, 부정한 것과 잡귀(雜鬼), 잡신(雜神)을 물리치고 제의(祭儀) 장소를 정

화하고 모든 신령과 조상을 청하여 모시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본과장은 성격을 달리하는 여

러 신령들을 각기 그 해당 거리에 모시는, 굿의 중심 부분에 해당된다. 이들 신령은 한국 무(巫)

의 대표적인 이른바 정신(正神)이다.

그리고 종결과장은 보통 뒷전으로 불린다. 뒷전은 잡귀 잡신을 놀려 드리는 第次로서 이것도

여러 다른 잡귀잡신의 무리를 각기 모시는 작은거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굿의 앞과 중간 부분은

실제 조상과 신령들을 위한 거리이다. 그래서 잡귀잡신은 거기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

뒷전에서는 이들 마저도 성격에 따라 모셔지고 마찬가지로 춤과 노래, 재담(才談)과 음악, 그리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 받아 되돌려 보내지게 된다.

굿은 이렇듯 제의(祭儀) 장소의 정화(淨化), 조상과 신령을 차례로 모셔 노는 것, 그리고 잡귀

(雜鬼), 잡신(雜神) 마저 배불리 먹여 탈없게 하는 삼부(三部)의 멋진 짜임새를 갖고 있다. 이런

면은 하나의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이른바 청신(請神 : 신 모심), 오신(娛神 : 신 놀

림), 송신(送神 : 신 보냄)의 구조가 그것이다.

그것을 좀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먼저 제상(祭床), 음악, 춤으로 무당이 신령을 청한다. 신령이

무당에게 내리면 무당은 단골에게 공수를 주어 신의 뜻을 전달하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감사의

정으로 신령을 환대하여 돌려보낸다. 이것이 굿이란 종교 의례가 가지는 빈틈없는 조화의 짜임새

인 것이다.

그리고 굿거리의 짜임새는 중층적(重層的)인 것으로 드러난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옛날의 전통 굿을 복원해 보면, 본 과장의 한 거리는 다시 여러 부속 거리로 구성되고 그것도 뒷

전으로 마쳐졌던 것을 확인한다. 하나의 굿이 그 안에 각기 신령을 모시는 작은 굿들로 짜여 있

고 하나하나 완결하여 전체를 이루는 조화상(調和相)이 역연(亦然)하다.

굿은 한편 그 내용에 있어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담아 낸다. 진오기굿을 보기로

살펴보면, 그 분위기는 처음부터 무겁고 어둡다. 제가(祭家)집의 가족들은 슬픔과 아픔에 짓눌려

있는 것이 보통이다. 亡者가 무당을 통해 가족들을 걱정하고, 작별하는 거리들에서 가족들은 터지

는 오열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저승사자를 위하여 베풀어지는 사재삼성거리에서는 사자(使者)

가 망자의 혼을 잡아가려 하고 가족들은 한 줄로 늘어서서 그것을 막으면서 한바탕 웃음 속에서

논다.

즐겁고 재미있을 재수굿에서는 반대로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조상거리에서 제가집의 조상들이

굿판에 들어오면 살아 생전의 말투와 모습을 지으며 살아있는 자손들을 걱정해 주기에 굿판이 울

음 판으로 바뀌고 만다. 요컨대 굿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한곳으로만 몰아가지 않고 그것들이 서

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게끔 해 주는 것이다.

이제 무당이 모시는 신령들의 성격을 알아본다. 우선 조상신(祖上神)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굿

의 준비과장에서 청배(請拜) 된다. 조상은 다시 조상거리에 등장하며 그 범위는 제가집 양주(兩

主)의 4대 조상까지다. 그리고 무당에게 신내려 모셔지는 신령(몸주)과 굿의 거리과장에서 놀려지

는 신령은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중부지방에서는 이들 신령의 계급이 잡혀져 있다. 즉 하늘 , 땅, 바다의 여러 신령들이 제일 높

다. 옥황천존(玉皇天尊), 일월성신(日月星辰), 칠원성군(七元星君 : 또는 七星), 산신(山神), 사해용

왕(四海龍王), 삼신제석(三神帝釋), 부처님, 신중(神衆) 등이 여기에 든다. 그 다음의 계급에는 중

국에서 유래된 신령들, 예컨대 관성제군 (또는 '관운장'이라고도 한다) 소열화제, 장비, 와룡선생,

오호대장, 오방신장(五方神將) 등이 속해 있다. 한국의 토착신들이 그 밑에 자리한다. 최영 장군,

별상, 군웅, 창부, 태조대왕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까지는 일단 올바르고 선한 신령이기에 정신(正

神)이라 불리어 진다.

그 아래로 뒷전 무당과 넋대신 계급의 신령이 있다. 전자는 뒷전에서 모셔지는 걸립, 말명, 맹

인신장, 성황, 사신(使臣) 등의 신령을 들 수 있고, 후자는 주로 초상에 관련된 신령으로서 십대왕

(十大王 : 또는 十王), 사재, 넋대신 등이 손꼽힌다. 뒷전 계급의 많은 신령은 특히 잡귀 귀신의

수가 또한 엄청나거니와, 위에서 언급된 것 외에 잡귀, 수비, 영산, 객귀(客鬼), 하탈, 터주, 상문

등의 종류가 있다.

무당 신령은 그러니까 조상신, 정신, 잡귀잡신의 세 범주로 되어 있는 셈이다. 조상신은 친가

만이 아니라 외가의 조상까지 넓게 잡아 모시는 것이 두드러진다. 정신에는 우리 나라의 하늘 ,

땅, 산, 바다, 물의 신령을 비롯하여 영웅신과 시조신(始祖神)이 들어 있고 거기다 중국의 도교(道

敎) 및 불교의 신령들까지 끼어든다. 밖에서 들어온 신령이라도 우리 나라에 터잡아 우리를 보살

펴 주고 덕을 끼친 신령이면 모두 무(巫)의 신령으로 받들어진 것이다.

산신(山神)의 경우를 보면 우리 나라 명산의 산신령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가집 양주의 본향

(本鄕)의 산신들도 모셔진다. 그리고 잡귀잡신은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넋이나 사회에서 천대

받던 계층의 넋, 그밖에 집안과 마을에 흩어져 있는 잡다한 수호령(守護靈) , 기운(氣運)등을 망

라한다.

 

한국 무(巫)의 신령은 이렇듯 한국에 관련된 모든 자연과 인물을 포괄한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우리 나라와 사회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만큼 이루어 준 넓은 의미의 조상의 성격을 가진다. 유

교적 조상 개념에 비하여 그 사고 방식이나 신앙적 체계가 사뭇 넓고 깊다. 한국 무(巫)가 지향하

는 조화(調和)의 원리는 신령의 성격 면에서도 이처럼 확연(確然)하다.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해 주는 모든 자연, 나라를 지켜준 조상 및 영웅, 우리에게 덕을 끼친 중국의 신령, 조상을 모두

받들고 거기다 잡귀 잡신 마저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 정신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의 종교의례(宗敎儀禮)가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집안의 조화가 깨어질 때 생긴다. 사소한 문제는 물론 개인의 정성이나 집안내 몇

사람의 노력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한 것일 때 그것은 무당에게 가져와

지고 무당을 통해 굿판으로 올려진다. 무당은 그러면 그 멋들어지게 짜여진 굿판을 벌이고 온갖

신령들의 도움을 빌어 그 깨어진 조화를 완벽하게 다시 회복시킨다. 이때 그 해결 방법의 독특함

은 무당이 단골과 신령과의 사이에 다리를 놓아줌으로써 그 셋이 하나되는 체험을 갖는 데 있다.

단골의 문제는 그 조화되는 체험을 통하여 풀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화가 늘 유지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를 조화스럽게 다듬어 나가기

란 여간 어렵지 않다. 집안과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조상과 신령과 귀신계를 정성껏 경건히 모시고 마음 쓰기는커녕 그들을 잊거나 함부로

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네들은, 단골들은 귀신이라도 경건히 대하는 태도를 견지하였

고, 그것을 두고두고 가르쳐 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놓고 귀신까지 받들어 복받으려 한다고 그릇

되게 해석한다. 그것은 오히려 귀신에게까지도 마음을 쓰려는 조화정신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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