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뱀신앙 가운데서도 특히 남제주군 표선면 토산리를 중심으로 한 뱀신의 신앙에서 보여 주는 것은 한 지역 전체의 세습적이요 숙명적인 신앙이라는 데 동서고금을 찾아봐도 다시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곧 오늘의 고급종교나 민간속신에 있어서 신앙민일 수도 있고 신앙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제주도 토산리의 주민에 있어서는 그 전체가 신앙민이요, 이 신앙은 여계를 타서 이곳 여자가 타리로 시집을 가서 타리에 거처한다 해도 반드시 이 뱀신을 모시고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계세습의 신앙형태로 하여 제주도 토산리 여성들은 타리의 여성과는 이질화 현상을 빚어내어 이 지방 여성들의 결혼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타리의 남자가 이곳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에는 이 아내와 함께 반드시 그 뱀신도 맞아들여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주도민의 생활에 얽힌 뱀신의 신앙은 도민의 원초적인 토속신앙의 한 가지로서 고대인의 부락형성에 있어서도 크게 관련되어 왔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그 한 예를 지명과 결부시켜 보더라도 안덕면 창천리에는 '뱀바리 동네'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는가 하면, 한경면 고산리 옛이름이 '차귀'라 하고 그 유래는 중국의 호종단의 돌아감을 막았다는 데서라고도하나, 한편 뱀신의 '사귀'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일본인 아끼바(1930년)는 '지귀도나 서귀포'등의 명칭도 이 사귀에서 유래......'
이로써 보더라도 고대 제주도민의 심성에는 뱀신에 결부된 그 원초적인 신앙으로서의 속신이 강했던 듯 여겨진다.
그리고 또 제주도 민간신앙의 여러 유형 가운데서 뱀신의 신앙 만큼 그 기원이 오래고 도민의 생활에 밀착되어 온 신앙형태도 드물 것이다.
제주도민의 생활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뱀신에 대한 신앙은 종교 이상으로서 일상 생활 속에 깊숙이 그리고 널리 행하여 지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뱀신을 모시고 있는 당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민의 신앙이 아니라 그러한 당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가정에서도 기제사를 지낼 때는 '안칠성' 또는 '밧칠성'을 모신다 하여 '고방상' '뒷할망상'을 따로 설상하여 제물을 차려 올리고 모시는 일이라든가 집에 뱀이 들어와도 그 뱀을 함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애가! 물할망이로구나, 물 할망이로구나, 날 우치젠 호난 나누었구나. 팡돌 알레레 기여들어붑서서. 아흐덜 놀랩네다.
(아이구! 그것 물을 지키는 할머니구나. 물을 지키는 할머니구나. 비가 오려니까 나와서 누워 있구나. 디딤돌 아래로 들어가 버리십시오. 아이들 놀랩니다.)
하면서 쌀을 손에 쥐어 뱀에게 뿌리면서 재촉하는 따위의 대화로써 뱀이 달리 들어가기를 권유하는 따위, 또 뱀을 보았을 때 어린애들이 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손가락이 썩는다 하여 손가락질을 못하도록 하는 것 따위는 아직도 도민생활 속에서 뿌리 깊게 남아 행하여지고 있는 뱀신에 대한 또는 뱀신령에 대한 신성관, 경외감 같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뱀신의 신앙은 그 신성, 통합, 정치, 축제, 예술 등의 기능에 있어서 부락의 형성과 더불어 오랜 민간신앙의 한 형태를 유지 강화하는 원천이 되어 왔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탐라지를 비롯한 제주도관계 문헌에도 뱀에 대한 기록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김정이 펴낸 [제주풍토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도민들은) 풍속에 몹시 뱀을 꺼려 이를 신으로 받들고, 보이기만 하면 주문을 외우고 술을 주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를 않는다.
내 일찌기 들으니 이 땅에는 뱀이 많이 있어서 하늘에서 비가 올 듯하면 뱀이 서너 마리씩 나타나서 성을 누빈다 하며, (중략) 뱀은 육상에 많을 따름이니, 내 생각하여 보니 이 지방 사람들이 지나치게 뱀을 숭배하고 받들었으므로 번성하게 된 것이다.
김상헌의 [남사록]에는,
지금 뱀신을 숭봉하는 풍속이 옛적에 견줄 만큼 심하지는 않다.
이형상의 탐라지에는,
이 지방에에는 뱀, 독사, 지네가 많은데, 혹시 회색 뱀을 보면 차귀의 신이라 하여 금하여 죽이지 않는다.
김석익의 [탐라기년]에는,
대정 산방산 길가에 음사 광정당이 있어, 여기를 지날깨 하마하지 않으면 말 다리가 절곤 하였다. 이 형상이 순행하여 여기를 이르렀는데 이속이 하마하도록 여쭈었으나 듣지 아니하였는데 과연 말 발이 절어들었다. 형상이 손수 그 땅에 이르러 무당으로 하여금 말을 죽여 제사를 지내며 뱀이 나타나기를 바랐는데 요사스런 구렁이가 나타나서 사명기간을 독아로 물어뜯었다. 이 형상은 이 구렁이를 베어 죽이고 그 당을 불살아 버렸으니 이때부터 음사는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제주도 무속사회에서는 이 광정당의 기록과는 사실이 다른 본풀이신화가 전승된다.
[탐라기년]에는 다시 중종 10년(1515년)의 일이라 하여,
중종 10년(1515년) 봄 3월에 판관 서 린이 김녕굴에서 요사를 죽였다. 이에 앞서 크기가 5석항만한 구렁이가 있어 굴속에 상거하며 요흉을 일으키메 도민이 매년 초에(또는 춘추에) 술과 음식을 갖추어 이를 제사지내는데, 만 15세의 처녀를 희생으로써 바치었다.. 그렇지 않으면 질풍괴우가 종세토록 그치지 않았다. 서린은 연소하나 담력이 있어 전과 같이 설제하였더니 큰 구렁이가 과연 머리를 내밀어 이제 막 처녀를 물어먹으려 함에 서린이 이를 창으로 찌르고 여러 군교 또한 덤벼들어 마구 찌르고도 끄집어 내어 불태워 버렸다.
이상에서 보인 [제주풍토록], [남사록], [탐라지], [탐라기년] 등의 여러 기록들은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뱀이 많았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내용이거나 뱀신이 그만큼 도심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뱀신의 신앙형태나 출현과정은 민간신앙 속에 포괄되지만 지역에 따라 제명과 신명, 그리고 신격의 출현과정이 일정치 못하다.
뿐만아니라 그 뱀신으로 말미암은 신당의 형태도 다양하려니와 이를 믿고 있는 제주도 무속사회의 신앙심의에 있어서도 영감, 참봉, 야채 따위의 다른 계통의 신당을 위하면서도 뱀신의 당신도 모시는 복합적이며 단순하지가 않다.
이들 뱀신의 신체도 다양스러워서 수목, 암석, 신의, 신기 등 여러 종류로 들 수 있고 이것들이 단순한 어느 한나거나 때로는 서로 복합적인 형태를 이루기도 하였으며 특히 이 가운데서도 뱀신의 거처로서 두드러진 형태로 들 수 있는 것은 역시 대개 '여드렛당'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지는 암석이나 수목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속칭 '괴'라는 구멍인 것이다.
뱀신의 신앙 가운데서도 이채로운 습속으로는 여성과 결부되는 점이라 하겠다.
표선면 토산리의 본향당은 일명 '여드렛당'이라 부르며 그 신의 신체는 본디 뱀이었지마는 처녀여신으로 인격화되고 그 신당의 암석과 수목, 그밖의 신의로서 상징되며, 두루 찾아볼 수 있는 뱀동물로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의 삼다에 하나를 더 보태어 사다를 말하라고 한다면 뱀다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이 고장에는 지리와 기후적인 이유로 해서 뱀이 많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이 고장의 뱀신은 암석과 수목, 그밖의 신의로서 상징되는 신체가 본향당에서 모셔지며 신앙민들은 그 뱀신의 정령은 거기에 깃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뱀신을 인격화하여 대개 여신으로, 그리고 '할망'(할머니)으로 모셔 받들어지고 있다. 여기에서의 '할망'이란 무속하회의 특유의 여성신격에 대한 호칭이니 어디까지나 신앙민이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평생을 관장해 주는 할머니라는 뜻이 지배적이라 하겠다.
이 뱀신의 '할망'은 '뒷할망' '물할망' '칠성할망' '안칠성할망' '밧칠성할망' 등등의 이름으로 그 신의 관할구역과 재단의 위치와 관련시켜 불리어지고 있다.
이들 뱀신의 출현경로와 유형은 일정하지 못하나 크게 재래신과 외래신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가름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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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뱀신 |
재래신 |
김녕굴당의 '괴뇌깃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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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정당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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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신 |
하늘에서 내려온 뱀신(내도동의 당신) '두리빌레용해부인할마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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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건너온 뱀신(토신당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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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흘러온 뱀신(칠성한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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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지방에서 들어온 뱀신(차귀당신) |
위의 뱀신의 분포상황을 지도에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그림에 나타난 경우로 그 신화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보면 먼저 재래신의 경우로서 김녕뱀굴의 '괴뇌깃또' 뱀신의 내용을 보기로 하겠다.
이 고장 당신의 원조 소천국에게는 아들이 열 여덟이 있었는데, 태자로 불리우는 '뇌뇌깃또'는 그 열 여섯째의 아들이었다.
어느날 태자는 농사가 천하의 대본이라, 교래리 히비기골왓이라는 조씨도 아홉 섬, 피씨도 아홉 섬, 도합 열 여덟 섬 갈 수 있는 넓이의 밭에 점심을 차려놓고 밭갈이를 하러 갔다.
밭을 가는데, 때마침 삼배절 중이 삼신산을 돌아보고 내려오다가 시장하여, 밭가는 태자더러 밥이나 좀 주면 먹고 시장기나 면해 가겠노라 하였다.
태자가 점심밥을 내어 주니 중은 제반 삼술을 걷어 먹고 지나갔다.
점심때가 되어 태자는 점심밥을 먹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중이 먹던 음식이라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밭갈던 소를 때려 잡아 썩은 나뭇불에 새비나무 적꼬치로 고기를 꿰어 구워서 소 한마리를 다 먹어 치웠다.
이젠 밭을 갈아야 하는데 소가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쟁기의 손잡이를 배때기에 대고 소 없이 그 밭을 다 갈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태자는 어머니께 그러한 사실을 아외니, 어머니는 양반의 집에 장새 국새가 가까운데 국간에 변이 나겠다고 노발대발하고, 또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양반의 집에 정거가 분명하다고 큰 야단을 쳤다. 그래서 결국 무쇠상자를 짜놓고 그 속에 태자를 앉혀서 서른 여덟이나 되는 자물쇠를 채워서 죽으라고 바닷속으로 띄워 버렸다.
무쇠상자는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용왕 황제국에 들어가 혹산호 윗가지에 걸렸다. 그래서 태자는 상자 속에서 낮에는 옥통소를 불고, 밤에는 연불을 켜고 하였다. 그것을 본 용왕은 무슨 조화같다고 감짝 놀랐다.
그래서 용왕은 큰딸과 둘째 딸을 시켜서 그 상자를 내려다가 열도록했으나 끄떡도 않았다. 결국 작은 딸을 시켰더니 수월하게 내려다가 여는 것이 아닌가. 그 속에는 뜻밖에도 옥같이 생긴 선비가 들어 있었다.
용왕은 그 선비 보고 물었다.
'어느 지방에 삽니까?'
태자는 대답했다.
'제주도에 사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읍니까'
'강남 천자국에 변란이 일어, 이를 평정하러 장수로 가오.'
가만히 보니 천하의 명장임이 분명하였다. 용왕은 첫눈에 사위로 삼아 볼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큰딸과 둘째 딸 방으로 드시록 했으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결국 작은 딸 방으로 드시도록 해서야 서른 여덟 이빨로 허우덩싹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용왕국의 제삼공주는 안성놋기에 토용칠판에 나는 듯이 상을 차려 기는 듯이 상을 들고 들어갔다. 그러나 태자는 눈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공주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진짓상을 아니 받으십니까?'
태자가 대답했다.
'우리가 아무리 소국에 산들 이 걸 먹고 살겠느냐? 우리는 밥도 장군, 떡도 장군, 고기도 장군, 이렇게 먹고 산다.'
공주는 부왕에게 이런 태자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용왕은 그런들 용왕국의 재산을 가지고 사위 하나쯤이야 요구대로 못해줄게 무언가고 하며, 잘 차려 주라는 분부를 내렸다. 이리하여 용왕국에서는 태자의 말대로 또 요구대로 잘 차려 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석달 열흘 백일이 되어가니 용왕국의 동창고 서창고가 다 비어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다가는 용왕국이 오래 못 가 망하고야 말 형편이다. 용왕국이 망하게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래서 용왕은 작은 딸을 불러서 말했다.
'너로 하여 얻은 시름이니, 네 남편을 데리고 어서 마을대로 아무데나 떠나가라'고 하였다.
태자와 공주는 시폭걸리(작은배)를 둘러타고 강남 천자국에 들어갔다. 가보니 아닌게 아니라 변란이 일어, 태자는 머리 아홉돋은 장수의 목을 다 베어, 세변을 막았다.
강남 천자국에서는 그의 무공을 높이 치하한 다음 무슨 벼슬을 하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태자는 '나대로 벼슬 소임을 하는 사람이니 그걸랑 그만두고 제주도 땅과 물과 국을 한 쪽씩 베어주시오'하고 말하였다.
강남 천자국에서는 그의 요구대로 모두 들어 주었다.
제주도를 차지하게 된 태자는 용왕 패도선을 둘러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뱃길은 순조로와 제주도 종달리 수푸니개로 배를 대고 내렸다.
태자는 먼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알송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일지라도 어른이 되어 찾아오니 무섭고 놀라서 당오름 중턱으로 그만 도망가 버렸다. 다음에 아버지를 뵙고자 윗송당으로 향하자, 아버지 역시 겁에 질려 고부니마루로 도망쳐 버렸다.
이 때 태자는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는데, 자식인들 부모에 대한 효심이 있겠는가고.'
이리하여 태자는 한라산 백록담으로 올라가, 거기서 용왕국 공주를 대부인으로 삼고, 또 한라산 오백장국의 외딸아기를 소부인으로 정하여 살림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태자는 적적해서 바둑과 장기를 두며 소일하노라니까, 김녕 큰당한집은 자식이 없어서 소 천국에게 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승낙을 받아, 양자법으로 태자를 아들도 데리러 왔다.
태자는 큰당한집과 같이 한라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태역장오리로, 오백장군으로, 다리콧으로, 돌다리로, 김녕으로······이렇게 지경을 밟아 내려왔다. 그리고는 '고살미'라는 입신봉으로 와 앉았으나, 어느 누가 물 한모금 먹어라 자시라 해서 대접해 주는 이가 없었다.
화가 난 태자는 조화를 부려서 철을 당겨 김녕에만 구 시월이 당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풍성한 농작물에 갑자기 풍우대작하고 판흉년이 들게 되었다. 돌연히 당하는 변이라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어떠한 일인가고 하여 원집에서 칠일간 회의를 열었다.
여러 가지로 옥신각신 끝에 결국 입산봉에는 전에 없던 무서운 임신이 나와 앉아서 그러한 조화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그 임신을 잘 대접해야만 공사가 절판이 나서 온 마을이 편안하겠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심방(무당)을 청해다가 굿을 하고, 태자에게 어디 좋은 곳으로 가 좌정하시면 웃어른으로 대접하겠다고 하였다.
태자는 좌정지를 찾아 맨 먼저 바닷가로 내려 갔으나, 거기에는 도깨비들이 어지럽혀서 못 있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윗동산 폭나무 밑으로 하여 괴뇌기 굴 속으로 들어가 소리엉에 가 좌정하였다.
이리하여 태자는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들로부터 제를 받고 있다. 제물에 있어서는 소를 잡아오게 하면 없는 백성에 큰 부담이 되어 걱정이 된다고 해서 돼지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돼지를 잡는데 있어서는 삼년 일체로 한 마리씩 차리되 백근이 찬 놈으로 상을 차리라고 하였다.
이 뱀굴에 좌정한 '괴뇌깃또'인 태자의 제사에는 그리하여 돼지를 잡아 올리기 때문에 한편 '돗제'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광정당뱀신은 옛날 이형상 목사가 말을 타고 순회를 도는데 그 앞에 이르자 말 발이 절었다. 어떤 일이냐고 물으니 '뱀신의 조화입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했다. 그냥 가자고 했는데 말이 그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때 목사는 말을 잡아 제물로 쓰고 굿을 치도록하자 뱀이 제단으로 나앉았다. 이 때 목사는 뱀을 불태워 죽이고 돌아왔다. 그 후로는 그러한 변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외래신의 경우를 보겠다.
첫번째로 하늘과 관계 지은 뱀신의 경우이다. 여기에는 뱀신이 하늘에서 하강하는 과정까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으로는 제주시 내도동 본향의 당신으로 '두리빌레 용해부인 할마님'을 들 수 있다.
이 본향당의 볹풀이 신화에서 보면,
경상북도 영천에서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이형상 목사가(문헌에는 서린판관으로 나타나고 있음) 김녕리 '괴뇌깃당'의 뱀을 죽인 후 돌아와 그날 밤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내일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다'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이목사는 배 잘 탄다는 김동자와 박동지를 대동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이 배가 돌아오는 도중 멀리 수평선에 이르자 갑자기 배의 밑바닥이 터져서 물이 들기 시작하였다.
배가 점점 침몰하여 갈 즈음에 김동지와 박동지 영감은 하늘에다 축소드리기를 '우리 아무죄도 엇습네다. 우린 무곡 치어당 환상 빚에 굶는 백성엘 태울랴고 싣겅 옵네다. 살려주서'하고 빌어가니 배의 깃대고고리(깃봉)로 큰 구렁이가 내려와 그 구멍터진 배 밑바닥 구멍을 막았다.
그러자 삽시간에 배는 물위로 올라왔고 그래서 무사히 고향의 항구에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이 때 김동지 부인이 나서서 뱀구렁이에게 '내게 태운 조상이건 나의 치매통에 기여듭서'하여 치맛자락을 벌려 들자 뱀이 그 위로 올라와서 김동지 집으로 가 위하다가 뒤에 바닷가 '두리빌레'라는 곳으로 모셔지는 당신이 되었다.
두번째로 뱀신이 한반도에서 제주도로 건너온 경로이다. 이 경우로는 표선면 토산리 '토산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토산당'은 표선면 토산리에 있는 본향당을 말하는 것인데, 이 당의 당신으로 뱀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토산당의 당신은 특히 신앙민의 여성과 깊은 관계를 가지며, 어디를 가나 그 당신을 잘 위하지 않을 때는 앙화를 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토산리의 여성은 물론 이 토산당계의 신앙민 가정의 딸로서 혼기를 맞이하면 결혼에 큰 지장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만일 결혼 상대자가 토산리의 안에 있어, 같은 본향의 입신 가정이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가정에 이 뱀신을 집안의 딸을 맞아들였다면 이 뱀신을 모시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 당의 뱀신을 잘 모시는 가정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영험담들이 전해지고 있고 또 한 이 당의 계통을 이어 온 집안에서는 주로 그 집의 뒤뜰 같은 곳에 조그만한 주젱이(영뚜께 주저리)나 아니면 기왓장 따위로 굴속 모양의 뱀신의 집을 만들어 놓고 '칠성눌'이니 '뒷칫할망'이니, 또는 '뒷할망'이니 해서 제를 지내고 뱀신을 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단골(신앙민)을 제외한 도민 일반에서는 이 뱀신의 신앙을 멀리하려 하고, 이로 인해서 토산리의 본마을은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는 듯하다.
이제 그 뱀신앙의 근거와 유래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나주 영산 금성산에는 커다란 뱀이 살고 있었는데, 이 뱀신의 조화로 이 고을에 부임하는 목사는 죽고 죽고 해서 마침내는 부임할 목사가 없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걱정 끝에 누구든지 나주 고을 목사를 희망하면 임명하겠다고 광고를 내자, 마침 이 고을에 무식은 하나 맷심 좋은 걸추리 선비가 자진하고 나서게 되었다.
걸추리 선비는 목사로 부임하고 첫순례를 나섰는데, 금성산 곁에 이르자, 하인이 하마하셔야 됩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목사는 삼년 임기 마치면평민이 되지만 이 마을에는 수만년의 토주관으로 금성산에는 신령이 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하인의 이 같은 진언을 가소롭게 여겨, 지나가자고 하자 말 발이 절어 더 이상 나아가길 않았다.
목사는 하인의 진언대로 큰 굿을 하게 하고 뱀신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얼마 후에 뱀신이 나타나자 몇마디 물어보고'저까짓게 무슨 귀신이냐?'며 그 뱀신을 세 토막에 내어 죽이고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그 뱀신은 금바둑과 옥바둑으로 변신되어 서울 종로 네거리에 가 떨어졌다.
그런데 때마침 제주도에서는 토산리에 사는 강씨, 한씨, 오씨 등 세사람은 제주특산물을 갖추고 임금님께 진상을 가는 길에 그 금바둑과 옥바둑을 줍게 되었다. 이 일이 재수가 좋게 만들었던지 진상품은 무조건 통과되어 임금님의 호평까지 받게 되었다.
강씨, 한씨, 오씨 등 진상꾼은 돌아오면서 기분좋은 김에 술이나 한 잔 하고 가자고 해서 주막에 들러 금바둑과 옥바둑으로 술을 팔라고 하였다. 술파는 아주머니는 그 금바둑과 옥바둑을 한참 바라보고는 좋은 물품 같기는 하나 자기에게는 소용 없는 것이라 그것으로는 술을 팔아 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이들 세 진상꾼은 주막을 나오면서 술도 못 받아 먹는 물건이라면서 금바둑 옥바둑을 던져 두고 선창가에 까지 왔다.
진상꾼은 배가 대기하고 있던 배진 고달도에서 석 달 열흘 백일간을 기다리었으나 웬일인지 바람이 불질 않아 배를 띄울수가 없었다. 답답한 나머지 서산대사를 찾아가 점을 치었더니, '절도 입도할 귀신을 아니 모시고 가면 죽어 고혼으로나밖에는 절도는 못 가겠읍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디들 진상꾼은 뱃고사를 지내자 순풍에 돛을 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뱃길은 순조로와, 제주바다에 거의 이르렀을 때 강씨 성방 일행이 장포를 뒤져 보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던져 버렸던 금바둑과 옥바둑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이 귀신임이 틀림없다. 이것을 절도에 모셔 가면 도민들은 귀신모셔왔다고 귀양보낼 터이니 바다에 던져 버리자.'그랬더니, 순식간에 강풍이 불고 큰일이 나게 되었다. 그들은 잘못을 빌고 고향의 포구 성산읍 온평리로 배를 대었다.
배가 포구에 닿자마자 강씨 성방 일행은 피곤하여 잠시 쉬는데 잠이 들었고, 잠결에 얼핏 월궁선녀가 배중판을 스르르 내리면서 '강씨 한씨 오씨는 공이 남았지마는 모렛날 사오시에는 상봉하자'는 말을 남기며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말에 감짝놀라 잠이 깬 강씨 일행은 '아차! 선앙이 내리는 가? 배에 임신은 아니 올랐는데, 이상하다, 화정놈아 저 뒤를 쫓아보라'하고는 그 뒤를 따라가 보도록 하였다.
화정은 그 시녀의 뒤를 쫓아가 보니 온평본향에 가 명함을 드리고, 거기서 길 인도를 받아 문씨 영감의 안내로 토산리 '멧뜨기 마루'라는 동산에 좌정하게 되었다. 이후 여기 좌정한 이 뱀신은 단골들의 후한 대접을 받으며 전도적으로 신앙민을 돌봐 온 것이라 한다.
지금은 이러한 속신도 미신타파니 신생활운동이니 하는 바람에 당집도 불태워졌고 한줄기 여백만을 지탱하고 있다.
토산당의 뱀신앙은 이렇게 해서 나주 금성산에서 뱀신이 변신된 금바둑과 옥바둑이 마침내 이곳에서조정에 진상갔다 돌아오는 강씨 성방 일행 편에 따라온 귀신의 신앙인 것이다.
세번째로는 중국에서 흘러 들어온 뱀신의 신앙이다.
뱀신이 중국에서부터 유입하게 된 경우로는 이 고장 심방의 일반본풀이 속의 '칠성본'이라는 장편의 본풀이신화에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 칠성본풀이 속의 뱀신의 기능은 이 신을 신앙함으로써 도민의 명과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남 천자국의 장설용과 송설용이라는 두 장님 부부간에는 자식이 없어서 근심하다가 절에 가 수륙을 드려 느지막에 따님 애기씨를 보게 되었다.
이 애기씨가 일곱살 되던 해에 장설용과 송설용은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아 떠나게 되었다.
이때 이들 부부는 종년을 부리고'이 애기씨를 열 두 살장문사이로 물과 밥을 주며 열 다섯 십오세까지만 키워 준다면 우리가 공사 살고 와서 종문서를 불태우고 사무한량을 시켜 주마'고 하였다.
이들 부부는 종년과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져서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 때 애기씨는 그 말을 듣고서 '나도 같이 가겠다'며 대문 밖에 숨었다가 부모가 타고 올라가는 가마꼭지 부분에 매달려 반공으로 둥둥 떠나가게 되었다.
얼마루 상공을 타서 날으는데 애기씨는 손힘이 다 되어 어느 잔소나무밭에다 그만 떨어지고야 말았다.
애기씨가 거시서 엄마야 아빠야 울고 있는데 마침 그 곁을 지나던 중이 그것을 보고 부모를 찾아 주겠다고 하며 애기씨를 달래었다. 중은 그 후 애기씨를 자루 속에 담아 다니면서 낮에는 권제(시주)를 받아 먹여 주고 밤에는 품잡이를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 후였다.
장설용과 송설용은 삼년간의 공사살이를 마치고 돌아오게 되어 먼저 종년을 부르고 애기씨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이 말에 종년은 펄쩍 뛰며 그 때 같이 따라갔읍니다고 하자,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집에 한 중이 시주받으로 들어갔다. 이 때 장설용과 송설용은 애기씨를 찾을 방법을 물어보자 중은 모렛날 사오시면 상봉하겟다고 했다. 장설용 부부는 중이 하는 행동이 미심쩍어 그 시주 보따리를 뺏아 보았더니 그 속에는 가로 한 자 세로 한자인 애기씨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중은 황급히 도망쳤고, 자세히 보니 애기씨는 임신되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이들 부부는 양반의 집이 망할 징조라 하며 애기씨를 죽이려고 하자, 종년이 가로막아 나서며 자기가 바로 죽겠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종년을 죽이자면 애기씨가 죽겠다며 형틀에 매달리고 애기씨를 죽이자면 종년이 죽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한 사람 죽이려다가는 둘이 죽게 되는 상황이다.
장설용 부부는 의논 끝에 결국에는 애기씨를 남 몰래 상자 속에 담아 바다에 귀양보내 버리자고 해서 애기씨를 무쇠상자 속에 담겨 바다에 띄워 버렸다.
상자는 물위에 삼 년 물아래로 삼년 둥글둥글 떠다니다가 제주도 함덕리의 모래사장으로 떠올랐다.
때마침 이 마을 일곱 해녀는 잠수하러 바닷가를 내리다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제각기 소유권을 주장하며 서로 머리채를 쥐어 잡는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 이 마을 송할으방은 낚싯대를 들고 고기 낚으러 바닷가로 내리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싸움을 말리게 되었다.
송하르방은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그 상자 속에 은이 있으나 금이 있으나 일곱해녀가 고루 나누어 가지고, 그 상자는 내게 주면 담배상자나 하겠다' 고 하자 모두 동의하였다.
상자를 끌어내어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는 뜻밖에도 큰 뱀은 하나이고 작은 뱀은 일곱인데, 이것들은 모두가 혀는 맬록, 눈은 햇뜩하면서 오망오망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이 광경에 놀라 해녀들은 투투 더럽다 한 마디씩 하며 침을 뱉으며 잠수하러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일의 원인인지 잠수들은 바닷속에서 손치(악귀)에 쐬어서 아야아야 울면서 나왔는데, 날이 갈수록 큰 환자가 되었다.
해녀의 가족들은 간호를 하다못해 안다는 점장이를 찾아가 점을 쳐 보았더니,
'눈으로 본 죄가 있다.
입으로 속절한 죄가 있다.
손으로 주은 죄가 있다.'
로 점꽤가 나타났다. 뱀상자를 주은 죄목임이 분명하였다.
결국 무당을 청해다 큰 굿을 하게 되었는데, 굿의 마지막 매목에 무당은 그 해녀들에게 그때 주은 뱀을 모셔다가 집에서 기르도록 하였다. 그 집안에서는 그 뱀을 나누어다가 기르기 시작하자 병도 낫고 부자도 되어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웃에서도 뱀을 기르려고 모시러 갔으나 뱀이 없자, 그 뱀이 있었던 바닥의 흙을 긁어다가 모시기까지 하였다. 이 고장 무속사회에서는 이 뱀신을 부군칠성으로 모시고 있다. 이는 명복신으로 보는 것과 통한다.
이상으로 중국에서 유입된 뱀신의 경우를 본풀이신화를 통해서 본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 뱀신에는 그 모녀관계의 계보가 관장하는 신역으로 따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남제주군과 북제주군의 경우로 비교해 보겠다.
(1) 북제주군의 경우
어미뱀은 관궁방을 차지하고
1녀는 사령방을 차지하고
2녀는 마을본향을 차지하고
3녀는 뒷할망으로 차지하고
4녀는 신목으로 차지하고
5녀는 창고를 차지하고
6녀는 집의 처마를 차지하고
7녀는 돌담울타리를 차지하고
(2) 남제주군의 경우
어미뱀은 인간의 집안을 차지하고
1녀는 동창문을 차지하고
2녀는 서창문을 차지하고
3녀는 북창문을 차지하고
4녀는 남창문을 차지하고
5녀는 과수원을 차지하고
6녀는 목장을 차지하고
7녀는 관청을 차지하고
위의 (1)과 (2)의 경우를 비교해 볼 때, (1)의 북제주군의 경우는 제주 목사가 주둔하고 있는 관청을 중심으로 한 가옥 중심의 뱀신역을 설명하고 있음에 비해 (2)의 남제주군의 경우는 농촌사회구조에 따른 뱀신역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아뭏든 그 많고 잡다한 그 밖의 예는 줄이거니와, 여기서 뱀신의 계보와 신앙체계가 서 있다는데에 주목을 끈다.
제주도의 뱀은 오늘날 무속신앙민의 사회에서 신앙대상으로서 인격화하여 신앙하고 있는 민간신앙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인도의 코브라 신앙과 대조적인 민간신앙의 한가지라고 할 것이다.
네번째로 뱀신의 유입과정의 마지막 예로, 남양 등지의 열대지방에서 흘러 들어온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남양등지에서 떠올라 온 뱀신의 경우로는 한경면 고산리 본향 당신을 들 수 있다. 이 본향당신으로는 바다에서 떠올라 온 상자속의 뱀신을 위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법성이라는 한 목동이 바닷가로 소풍을 갔다가 어떤 대나무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 은이 들었나 금이 들었나 싶어 열어 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뜻밖에도 새빨간 구렁이 뱀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법성은 과연 잘못했읍니다고 빌고, 큰절을 하며 편안한 곳으로 모셔다가 본향당신으로 위하게 되었다. 뱀신이 할아버지로 인격화되어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뱀신이 대나무상자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남양 열대지방의 기후와 관계지어 생각하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제주도민의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민속유물 가운데서도 야자열매와 대나무토막 따위를 바닷가에서 주워다가 표주박이나 등잔과 수저통 등을 만들어 써 왔었음을 알 수 있고, 이것들도 남양 열대지방에서 조류에 떠밀려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는 제주도 문화는 북방계의 문화보다 남방계의 문화요소가 보다 앞서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뱀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함은 성경을 통해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뱀의 꾀임에 빠져, 먹어서는 안 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하지 않는가.
특히 기후가 온화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어디로 가나 뱀이 많은데, 그 중 캄보디아에는 뱀섬이 따로 있으며, 국민들은 이곳을 성역으로 지정하고 있다고한다.
뿐만아니라 미국의 서해안에는 뱀 창세교라는 신흥종교가 있는데, 이 교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근본이 뱀에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신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뱀이 아름다운 요녀로 변신하고 길 가는 나그네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렇듯 제주는 파랑거친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고 뱀신의 신앙도 해외 여러 나라 문화와의 관계가 일찍부터 이루어졌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뱀신의 유입은 이상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남양 등지의 여러 방면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으며, 그만큼 제주도민의 신앙의 심층에도 두려움과 받들음의 엇살리는 두가지 요소가 작용되고 있음을 느낄수 있다.
제주도 무속사회의 뱀신의 신앙은 또한 토속적인 다른 대상신의 여러 요소와 더불어 이루어진 복잡다양한 신앙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더 나아가 고대 제주문화를 밝히는 하나의 열쇠가 되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 뱀신의 신앙은 아시아에 있어서 인도의 코브라 신앙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제주도처럼 뱀자체를 신앙대상화하고 인격화하여 민간신앙의 하나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지방은 그 예를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