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김문수 원작
-에필로그-
<현재 전북 진안군에 자리잡은 용담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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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용담호.
용담호는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자리잡은
산골마을에 위치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본인의고
향은 진안과 금산으로 가는 산골마을인 정천면모
정리라는 산좋고 물 맑고 공기좋은 산골마을이기
도 합니다.
용담호는 동양에서 다섯 번 째로 큰 댐 호수입니
다. 행정구역상 으로는 진안군에 속해 있으며 14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가 14개면 중에 5-6게면이
댐공사로 인하여 고향을 떠나는 슬픈아픔을 겪어
야 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몰된 면들은 정
<진안군에 자리잡은 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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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면과 상전면 안천면 동향면 용담면이었습니다.
원래 댐계휙은 일제시대부터 추진해왔으나 해방
이 되자 중단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에 공사가 끝난 대 규
모의사업이 이루어졌지요. 진안 고원은 전북동부
산악권에 있으며 주변도시는 대전이나 전주가 있
어요. 주로 농사는 벼 농사와 인삼을 재배하며 살
아가는 지역이고 마이산을 비롯하여 풍혈 냉천과
운일암 반일암 또한 기암괴석인 구봉산과 운장산
이 자리잡고 본인이 살았던곳은 정천면 모정리여
<운장산은 완주군과 진안군 정천면에 자리 잡은 산으로 널리 알려진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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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곡이라는 산골 마을입니다.기름진 옥토와 맑은
금강과 모정숲이라는 자리가 있었지요.제가 살던
마을 모정리는 여의곡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지형
상 계곡이 많다고해서 <여의곡>또는 <여실>이라
부르게 되었고 6.25나 임진왜란 때에도 안전한피
난처로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제가 태어난 곳이 모
정리의 산골마을입니다. 진안은 고원지대로 산이
많고 계곡이 많다보니 정천면에서 주천으로 넘어
가는 계곡이있는데 바로 운일암 반일암 계곡이자
리를 잡아 전국에서 알아주는 관광명소로 자리를
<진안의 명소 운일암 반일암의 계곡인데 천혜의 자연으로 알려진 장소 피서지로 유명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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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청옥수의 계곡이라 여름에 많이찾는 게곡이
라 부르지요.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산골 마을에
는 여러 가지 전설이 묻어 나는 곳이고 각 부락의
마을도 소개가 될 것입니다. 우선 안타 까운 것은
관련자료가 없어서 필자로서는 안타깝지요. 진안
서쪽으로는 전주를 가려면 곰티재<모래재>가 있
습니다. 곰티재는 임진왜란의 전적지가 묻어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전주에서 모정리로 넘어오려
면 곰티재를 지나야 올 수 있는 고향이지요. 숲과
강이 있고 아름 다운 옥토를 가진 필자의 고향 모
정리는 순식간에 물속으로 잠겨버린 수몰 마을이
<진안군 정천면에 자리잡은 정자천이라고
하는데 모정리 여의곡으로 흐르는 계곡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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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말았습니다. 남쪽으로는 금산으로 향하는국 도가 자리를잡고 용담면과 정천면사이에 고개가 있는데 하나는 고나미재라고 부릅니다. 험준한산 악지대로 이어지는 국도는 그당시만 하여도 신작 로라고 부르기도 하였지요. 모정리마을 강건너마 을에는 망화리라는 산동네가 자러잡고 있으며 자 또한 모래사장과 자갈밭이며 포플러 숲들이 자리 잡은 장소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호수의 모양이 용의 모양처럼 생겼다하여 용담호로 지어 진 이름입니다.
<용담면과 안천면으로 이어지는 산맥에 자리잡
은 지장산에서 내려다본 용담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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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하나를 건설 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수많은 돈 으로 투자를해왔습니다. 용담호가 생기기 까지는 실향민들이 살기 좋은 최적지의 마을이었습니다.
댐 수몰민 들은 고향의 터전을 잃고 가까운 인근 도시인 전주나 익산. 김제, 대전.서울로 이사를가 야했었습니다.용담호로 인하여 군산. 전주. 익산. 김제. 심지어는 부안 까지 용담호의 물을 먹게 되 었습니다. 이제는가고 싶어도 못가는 고향이라지
만 인터넷을통하여 고향의 사진을 보면 지나간과
거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용담호 이주민들의 모습
인데 타지로 떠나야했던 그 시절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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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지만 고향 사진
을 바라보면 너무나도 가슴아픈일이 아닐 수가없 습니다. 필자가 살아 오고 어린 유년시절 들을 보 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거의 아픔이 짓누릅니다. 농토를 가꾸고 살아오던 고향의조상 들....내 고향집을 찾아가려면 산골마을인 모정리
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옛날 행정구역으로
는 전북용담군 일남면이었는데 1914년부터 진안
군으로 편입되면서 정천면으로 바뀌게 되었 습니
다.
<집 잃고 설어워 하며 통곡하는 실향민의 모습이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다. 철거 되던 우리집 어디
갔나요 절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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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 당시만 하더라도 모정리 여의곡 마을은 70
가구가 넘는 큰 마을 이고 종교로는 기독교 60%
불교 45%유교 30%무교인 20%입니다. 김씨. 유
씨. 임씨가 모여 마을을 이룬 것이 모정리 여의곡
마을의 유적이되고 여의곡에는 다양한 문화 유적
인 선사 시대에 발견한 토기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 니다. 수몰 이후의 고향의 모습은 얼마나 변
하였을까?필자가 고향을 떠나 온지 어언 60년 전
의 일입니다. 지금은 익산에 거주 하고 있지만 고
향으로 가려면 적어도 2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거
리이기 때문이지요.
<현재 과거의 모정리의 모습인데 예전 에는 여의
곡이지만 지금은 용정마을로 바뀐 현실입니다.정
정천면 에서 흘러 나오는 정자천 {주자천}에 자리
잡은 곳이 모정리 모곡 마을 입니다. 이곳을 거쳐 야 필자가 살았던 여의곡 마을이 나옵니다.>
<용담댐 건설 반대현장에서 철거된 집위로 걸려
있는 프랑카드의 모습이 실향민들의 고통을 호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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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의지역 모정리 여의곡 필자가 태어난곳은김 해김씨 집안인 장손으로 태어난 주인공.시골에서
자라난 소년이 병수였고 호적상으로는 문수로 되
어 있습니다. 어린 유년 시절부터 학교 시절 그리 고 가족 들의 아픈 기억 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실적인 사건들이지요.지금은 황무지가 되어 버
린 고향이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고향>이란작품
을 독자 여러분들 앞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 글
로써 고향의 그리움을 달랠까요? 그 아픔속 에서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용담호 둘레 길이는 4.1km 소요시간 2시간 걸
린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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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이 소설을 소개하기 전에 나름 대로 고
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육십 평생동안 이 소
설을 써오면서 부끄러움을 느껴왔습니다. 작가가
되기라서기보다 내 자신의 속된 마음.<잃어 버린
향>을 시마을 소설방에 기록 할때 수많은 방문객
들과 시인님들과 작가분들의 도움으로 감사했습
니다. 아낌없이 댓글로 성원속에서 피 눈물 나는
소설을 쓰게 되고 보니 또한 소설을 쓸 수있도록
도와 주시는 국보 문학회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
니다.
2026년 유월에 쓰다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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