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옥/수필/산책

작성자정진옥(서우)|작성시간26.06.19|조회수34 목록 댓글 1

창밖은 비 온 뒤끝으로 맑게 갠 화창한 날씨다. 베란다에서 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다 쾌청함에 이끌려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한다.

산책을 나서면 발걸음은 늘 익숙한 곳으로 나를 이끈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길이다. 익숙한 길은 주위에 눈길을 보낼 새로운 것이 많지 않아 이곳저곳으로 마음을 나눌 필요가 없다. 따라서 오고 가는 길에 마음이 한가롭다.
무심한 걸음 중이라도 계절의 변화까지 무심할 수는 없다. 철 따라 변하는 산책로를 걸을 때면 지나간 나의 계절도 조용히 걸음을 함께한다. 새순같은 보드라운 시절을 지내고 나름 꽃 몽우리를 터트려 향기도 뿜어 보았다. 그러나 삶이 어디 꽃길이기만 하겠는가. 진흙길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거친 바위산을 넘다가 무릎이 까지기도 했다. 다시 힘을 내 걷고 또 걸어 오늘에 와 있다. 이제 나는 두 손도 마음도 가벼운 나이가 되어 있다. 지금의 한가로움이 참 좋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계절을 건너는 모습이야 크게 다를 바 있겠는가.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 걸음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삼스레 설레고 행복하다. 그러나 그 설렘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설렘과는 다르게 편안하다.

산책은 둘이 혹은 여럿이서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냥 혼자가 좋다.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침묵이 무겁지 않고, 배려를 위한 감정의 낭비가 필요치 않아 번거로움이 없다. 그러니 나는 걸으면서 온전하게 내 마음 안에 있을 수 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발밑에서 부서지는 모래 소리 그리고 흙냄새에 섞인 나무들의 향기, 이 모든 것을 즐기며 걷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혼자 걷는 것이 나 자신을 충만하게 한다. 한참을 걷다가 피곤해질 즈음 다리 쉼을 하는 의자가 있다. 잠시 앉아 땀을 들일 때 가끔 만나는 한 바가지 시원한 바람이 운 좋게 그 시간 내 가슴에 쏟아지면, 내 안에서 이어져가던 부질없는 생각들이 툭 끊어지며 나는 침묵의 고요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편안함!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그 느낌이 이와 같겠는가.

오늘도 늘 걷던 길을 혼자 걷다 보니 어느덧 모든 잡념은 잦아들어 고요하다. 인생의 길도 이와 같지 않은가. 여럿이 함께 걷는 듯해도 돌아보면 나만의 길이다. 나이가 이쯤이면 혼자만의 시간과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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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문수 | 작성시간 26.06.21 수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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