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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女僧) - 白石

작성자순자|작성시간26.06.09|조회수37 목록 댓글 0

 



 

 

 

 

여승(女僧) - 白石


여승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詩語 풀이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금덤판 : 금광의 일터
°섶벌 : 재래종 일벌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백석 백기연(1912-1996)은 만해 한용운, 정지용이 만들어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천재 시인이다.

백석의 <여승>은 단순한 불교적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인의 비극적 생애를 통해 인간 존재의 슬픔과 무상함을 그린, 
초월의 길이 담겨 있는 시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내야만 했던 비극적인 삶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을 떠난 지아비를 찾아 금덤판을 떠돌다가 

어린 딸마저 잃고 여승이 되어버린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4연 12행의 짧은 구성으로 밀도있게 보여준다.


또한 이 시의 시상은 시간적 흐름에 따르지 않고 

시간적 순서를 재구성하여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지취 냄새로 상징되는 빈궁한 현실,
도라지꽃으로 상징되는 죽음과 순결,
머리오리로 나타나는 인연 단절의 결단,
이 세 가지 상징이 시 전체를 지배하며 백석 특유의 서정적 사실주의가 빛을 발한다.

화자는 여승의 삶을 연민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자신의 내면적 슬픔과 겹쳐보며 불경처럼 서러워한다.

이 작품은 절제된 언어와 토속적인 언어, 

향기로운 이미지로 담아낸 백석 시 세계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인연이 끊긴 자리에 남은 것은,
슬픔조차 향기로 피어나는 가지취의 내음뿐."

백석은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 지역의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쓰고, 

옛 언어와 토착어를 많이 사용하여 시어를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1938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한 시인 백석은 시대를 앞서가는 모던보이로 인기가 높았으며,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大苑閣)을 운영하던 

김영한(조선 말기 '진향' 이라는 이름의 기생)과의 러브 스토리가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었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가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으로 알려져 있지만, 월북한 백석과는 이후 영영 해후하지 못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성북동 삼각산 자락에 있던 

당시 시가 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1997년에 조계종에 통째로 기증하여

지금의 길상사(吉祥寺)가 세워졌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운치를 더해주는 길상사는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성북동의 가장 매력적인 명소로 알려져 있다.
 
길상화(吉祥華)란 법명을 받은 김영한은 평생 백석을 연모했는데, 
"1000억 원이 그 사람 시 한줄만도 못해"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언제 백석이 생각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따로 때가 어디 있나" 등의 말을 남겼으며
이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길상화 김영한은 1999년에 타계했다.
雨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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