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될 때/ 손성무 목사

작성자장세일|작성시간26.06.12|조회수40 목록 댓글 0

우리가 마지막 때를 말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단어가 있다.

경륜.

조금 낯선 단어다. 오래된 서랍 속에 넣어 둔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단어 안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깊은 눈이 담겨 있다. 경륜이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을 운영하시는 방식이다.

 

세상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우연히 쌓이지 않는다.

역사는 바람에 날리는 신문지처럼 아무 방향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뜻을 따라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시대 가운데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신약성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미래에 대해 가장 집중적으로 말하는 책은 요한계시록이다. 그리고 구약성경 가운데 요한계시록과 가장 깊이 연결되는 책은 다니엘서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따로 떨어진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의 연장선에 있다. 다니엘서에서 봉인된 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열린다.

 

다니엘서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계시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의 특징을 말씀하신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다니엘 12장 4절 말씀이다.

 

여기에는 마지막 때를 보여 주는 두 가지 표지가 있다. 하나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식이 더한다는 것이다.

 

빨리 왕래하는 시대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한국까지 오려면 배를 타고 수십 일을 가야 했다. 바다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파도와 바람과 어둠을 지나야 했다. 한국에 도착해도 끝이 아니었다. 제물포항에서 전라도 지역으로 가려면 말을 타고 일주일을 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사람은 하루 안에 전 세계 거의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다른 대륙에 도착해 있다. 예전에는 평생 한 번도 가 보지 못할 곳을 이제는 출장처럼 다녀온다.

길은 짧아졌고, 세계는 작아졌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도시와 도시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대륙과 대륙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비행기, 고속철도, 자동차, 인터넷, 스마트폰.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동과 연결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가고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식이 폭발하는 시대

또 하나는 지식의 폭발이다.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총량이 두 배가 되는 기간을 생각해 보면, 이 시대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지식이 두 배가 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1990년대에는 약 25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식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식의 총량이 며칠 단위로 폭증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식은 많아졌다. 정보는 넘친다. 사람들은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으로 세계의 소식을 읽고, 전쟁을 보고, 재난을 보고, 시장을 보고, 누군가의 삶을 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을 보면서도 정작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많은 지식이 반드시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정보가 반드시 진리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다.

 

기후의 변화도 심상치 않다. 어느 여름,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던 중 한 방송에서 기후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지구는 더운 것이 아니라 끓고 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더운 것이 아니라 끓고 있다. 단순히 여름이 더워졌다는 말이 아니었다.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리듬이 어긋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자연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자체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마지막 때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가.

 

마지막 때의 두 흐름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를 생각하면 먼저 재난을 떠올린다. 처처에 기근과 재난이 있고,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들리고, 지진과 전염병이 일어나고,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흔들린다. 인간이 의지하던 것들이 흔들리고, 나라들이 흔들리고, 자연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또 다른 흐름도 있다. 마지막 때는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대부흥과 대추수의 시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고, 열방 가운데 복음이 선포되며, 마지막 추수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는 재난과 심판의 시대인가. 아니면 부흥과 추수의 시대인가.

대답은 둘 다이다.

 

마지막 때에는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흔들리고, 전쟁과 기근과 재난과 핍박이 일어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전례 없는 대부흥과 영혼의 추수가 일어난다.

마치 한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다른 한쪽 하늘에는 새벽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 세상은 어두워지지만 하나님의 빛은 더 선명해진다. 심판의 소리는 커지지만 구원의 문도 활짝 열린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행하시는 일이 있다.

전쟁보다 먼저.

기근보다 먼저.

핍박보다 먼저.

대부흥과 추수의 거대한 물결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대시는 곳이 있다.

그곳은 세상이 아니다.

그곳은 권력자들의 궁전도 아니다.

그곳은 이방 민족들의 도시도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베드로전서 4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집.

그것은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공동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을 말한다.

 

마지막 때 가장 먼저 시작되는 일은 세상의 심판이 아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집을 다루신다. 먼저 교회를 다루신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신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날 전 세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던 교회와 사역자들 가운데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한때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예배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글로벌 교회 운동 안에서도 지도자들의 도덕적 실패와 리더십 문제가 드러났다.

 

또한 세계적인 기도운동과 선교운동 안에서도 오랫동안 존경받던 사역자들과 관련된 문제들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강력해 보였던 사역의 내부에 감추어진 죄와 왜곡된 권위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대형교회와 교단 지도부, 선교단체와 청년 사역의 영역에서 여러 논란과 스캔들이 이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리더십 세습과 권력 집중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성적인 문제와 재정 문제, 권위주의적 운영이 드러났다. 어떤 사역자는 마지막 때와 부흥을 말했지만, 그 사역의 내면에는 조작과 왜곡, 권력화의 문제가 드러났다.

 

물론 우리는 개별 사건을 함부로 단정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큰 흐름은 보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교회와 사역의 내부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지도자의 실패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흔들고 계신 것이다.

 

왜 하나님은 먼저 교회를 다루시는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 일을 가장 먼저 행하시는가.

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교회를 심판하시는가.

왜 악한 세력과 불의한 권력과 타락한 문화를 먼저 치지 않으시고, 자신의 집을 먼저 다루시는가.

 

베드로전서 4장 17절과 18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교회를 다루신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복음을 안다고 말하는 자들을 다루신다.

왜냐하면 교회가 먼저 정결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먼저 주님께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먼저 심판을 통과해야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10장 3절에서 6절은 이것을 영적 전쟁의 언어로 설명한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6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할 준비가 된다. 다시 말해 교회가 먼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정렬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정화하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교회로 만드신다는 뜻이다. 그 준비가 될 때, 하나님은 그 다음 단계로 세상을 향한 심판과 부흥과 추수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심판은 버림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은 교회를 멸망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버리시기 위한 심판이 아니다.

이것은 정결케 하시는 심판이다.

사랑의 심판이다.

회복을 위한 심판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다루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흔드신다. 마지막 때에 교회를 통해 이루실 일이 너무 크기 때문에, 먼저 교회 안에 있는 불순물을 드러내신다.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신다.

왜곡된 권위를 드러내신다.

사람의 야망과 욕심으로 세워진 구조를 드러내신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무너진 사역이 있다. 숫자는 많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은 없는 공동체가 있다. 능력은 말하지만 거룩은 잃어버린 사역자들이 있다. 부흥을 말하지만 자기 왕국을 세우는 리더십이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더 이상 그냥 두지 않으신다.

 

이 과정은 아프다. 두렵다. 그리고 때로는 수치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만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정결한 교회를 원하신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이기는 자들을 원하신다.

 

이기는 자들을 얻기 위한 흔드심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말씀하신다. 그 말씀의 반복되는 결론은 이것이다.

“이기는 자는.”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교회 가운데 이기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을 넉넉히 통과하는 자들. 흔들림 속에서도 주님께 끝까지 순종하는 자들. 죄와 타협하지 않고 정결함을 지키는 자들.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눈을 두려워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이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된 사람들이다. 마지막 때 전 세계를 휩쓸게 될 대부흥의 주역들이다.

하나님은 왜 이 시대에 전 세계 교회들을 흔드시는가. 왜 유명한 사역들을 흔드시고, 거대한 구조를 흔드시고,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시는가.

이기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의 부흥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으신다. 영혼의 대추수를 감당할 그릇은 정결해야 한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이다. 영향력보다 중요한 것은 깨어짐이다.

 

하나님은 깨어진 자를 찾으신다.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사람들의 박수와 인정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우는 자를 찾으신다.

 

웨일즈의 밤

120년 전, 이 원리를 보여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에반 로버츠.

그는 웨일즈 부흥의 중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04년 10월 31일, 모리아 채플 교육관에서 17명의 청년들과 함께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모임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작은 기도회에서 부흥이 시작되었다.

 

당시 에반 로버츠는 26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며 13년 동안 부흥을 위해 기도해 온 사람이었다.

 

1903년, 그는 하나님께서 웨일즈에 강력한 부흥을 주셔서 아주 짧은 시간에 10만 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에반 로버츠 자신을 다루셨다.

 

1904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자기 안에 갈등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의 인정과 기대를 의식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해 9월, 그는 친구들의 권유로 세트 조슈아라는 무명의 사역자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세트 조슈아가 이렇게 기도했다.

“Lord, bend us.”

주여, 우리를 굴복시켜 주소서.

 

그 순간 성령께서 에반 로버츠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네게 필요한 것이다.”

그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온몸은 심하게 떨렸다. 그는 기도했다.

“Lord, bend me. Bend me.”

주여, 나를 굴복시켜 주소서. 나를 꺾으소서.

그는 하나님 앞에 고꾸라졌다.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그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하늘로부터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임했다.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연민이 강물처럼 그의 안에 밀려왔다.

 

그 후 그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여러 시간을 기도하곤 했다. 당시 그의 기도는 단 하나였다.

“Lord, bend the church to save the world.”

주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굴복시켜 주소서.

이 기도 끝에 웨일즈 부흥이 일어났다.

 

부흥은 단지 열정에서 오지 않았다. 부흥은 깨어짐에서 왔다. 부흥은 사람의 야망이 꺾이고, 교회가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자리에서 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구부리실 때, 세상을 구원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꺾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전에 먼저 교회를 다루신다. 열방을 흔드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백성을 흔드신다. 대부흥을 부으시기 전에 먼저 그 부흥을 감당할 그릇을 정결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지금 전 세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흔들림을 단순히 부정적인 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죄는 죄이다.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고,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고 계신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고 계신다. 사람의 이름으로 세워진 왕국들을 흔들고 계신다. 은사와 영향력 뒤에 숨어 있던 죄와 욕망을 드러내고 계신다.

왜인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기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이다.

마지막 때 전 세계를 휩쓸 대부흥의 주역들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밤

수천 년 전, 성경에는 최초의 이기는 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야곱이다.

야곱은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다. 밤새 씨름했다. 긴 밤이었다. 어둠과 땀과 숨소리와 두려움이 뒤섞인 밤이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야곱은 새 이름을 받았다.

이스라엘.

그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이겼는가.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 그는 환도뼈가 부러졌다. 완전히 꺾였다.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겼다.

이것이 성경적 승리의 역설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길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깨어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야곱은 꺾임으로 이겼다. 에반 로버츠도 꺾임으로 부흥의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한 사람. 주님께 꺾인 사람. 주님께 붙들린 사람.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마지막 때의 일을 이루실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집이 다루어지는 때

지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시는 때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망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정결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들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를 얻기 원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전 세계를 휩쓰는 대부흥과 대추수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의 흔들림 앞에서 단지 다른 사람의 죄를 구경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역자의 실패를 비판하는 사람으로만 서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은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교회의 심판은 내 삶의 정결함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주님, 내 안에는 감추어진 죄가 없는가.

주님, 내 안에는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야망이 없는가.

주님, 내 안에는 겉으로는 사역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왕국을 세우려는 욕심이 없는가.

주님, 내 생각과 마음과 동기가 온전히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될 때, 우리는 남을 보며 말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한다.

주여, 우리를 굴복시켜 주소서

에반 로버츠의 기도를 다시 붙들어야 한다.

Lord, bend us.

주여, 우리를 굴복시켜 주소서.

Lord, bend me.

주여, 나를 굴복시켜 주소서.

Lord, bend the church to save the world.

주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굴복시켜 주소서.

 

이 기도는 쉬운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께 나를 꺾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 고집을 꺾어 달라고, 내 야망을 꺾어 달라고, 내 죄를 드러내 달라고, 내 자아를 굴복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도 없이 참된 부흥은 오지 않는다. 교회가 꺾이지 않으면 세상은 살아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정결해지지 않으면, 세상을 향한 심판과 부흥의 역사는 온전히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의 경륜 속에 서 있다.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식은 폭증하고 있다. 기후와 국제 질서는 흔들리고 있다. 전쟁과 재난과 핍박의 소식이 들려온다. 동시에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대부흥과 대추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앞에 먼저 일어나는 일이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

교회가 먼저 정결해진다.

이기는 자들이 준비된다.

신부가 단장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열방을 흔드실 것이다.

 

하나님의 도전에 응답하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도전 앞에 서 있다.

이런 하나님의 도전을 느끼고 있는가.

이런 하나님의 도전에 굴복하기 원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꺾으시고, 우리를 꺾으시고, 교회를 꺾으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도록 기도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드러난다.

하나는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심판을 통과하며 정결해지는 사람이다.

하나는 자기 죄를 숨기고 도망치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이기는 자로 세워지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야곱처럼 꺾임으로 이기는 자들. 에반 로버츠처럼 “주여, 나를 굴복시켜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자들. 마지막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될 자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한다.

주여, 우리를 굴복시켜 주소서.

주여, 나를 굴복시켜 주소서.

주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굴복시켜 주소서.

 

부흥은 꺾인 사람들을 통해 온다.

대추수는 정결한 교회를 통해 온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 심판은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는 심판이 아니다. 교회를 정결하게 하고, 이기는 자들을 세우며, 세상을 구원하는 부흥의 문을 여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이다.

 

https://ehadhouse.com/sonsungmoocolumn#171523132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