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일석(三人一席)은 창조의 원리
사람들은 신을 찾는 종교의 순수한 의미가 인간본래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적인 견해일 뿐, 진정 자기존재의
정체성을 간절히 찾은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본래의
도덕성 저 넘어에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진리” 에 있다.
그리고 그 진리란 곧 “하나님의 창조원리” 가 된다.
성경기록의 백미는 창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에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지창조의 소재가 되는
1)하나님의 근본은 무엇이며
2)천지는 무엇이며
3)창조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창조인가이다.
하나님의 근본은 빛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빛과 흑암이 반반씩 혼재된
카오스 하나님이요, 천지란 자연계 천지만을 말함이 아니고 세상인격의
정신적 가치의 높고 낮음의 천지요, 창조란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 창조만이
아니요, 그 훨씬 너머에 있는 사망의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불멸의 세계창조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언젠가 불멸의 세계, 즉 파라다이스를 창조하신 일이
있었는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하나님이 지으신
파라다이스로 착각하고 있으며, 아담과 그의 아내가 그로부터 추방당하자
밀턴의 실낙원 작품도 인류에게 인기리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 오늘날은 “하나님은 실패하고 내가 이긴자다!” 라고
주장하는 자칭 사이비메시야들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디 빛과 흑암의 혼재의 하나님에서 빛으로만 흑암을 계속
이기어 가시는 창조시작과 창조과정에 있으며, 그리하여 창조미완에서
창조완성까지 끊임없이 달려가시는 분으로서 실패하신 적 전혀 없는
창조주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창조완성인 불멸의 파라다이스를 지어보신 적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흑암(마귀)에게 빼앗길래야 빼앗겨본 적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 자신속에 한몸으로 있는 흑암과의 완전한 결별을 위해
피흘려 싸우시는 창조과정 중에 있는 분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창조)하시니 나도 일(창조)한다” 라고 하셨는데,
이는 바로 그와 같은 창조과정에 있다는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창조(일)하신다고 했는데, 그분의 창조는 자연계창조가 아니다.’
예수님의 창조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어 영생을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 창조의 기초공사였던 것이다. 기초공사? 이게 무슨 말인가?
인간이 영생을 받는 조건은 “하나님을 아는 진리” 에 있다.
그리고 진리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어떻게 하시는가 하는 “창조원리”
가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초림 때 창조원리를 곧바로 알려주심이
아니고 그것을 비유로 감추어서 마치 수수께끼를 내 준거와 같다.
그 비유의 수수께끼란 인간의 윤리와 도덕적인 일로 기록을 했다는 점이다.
신약의 예수님만이 아니고 구약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비유로 알려주셨다.
비유로 알려주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가지 못하는 흑암의
죄인임을 먼저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기초공사라고 했던 것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작은 민족 하나를 들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표의 기록이며(예표이므로 당연히 비유임)
예수님의 초림은 온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비유로 주시고, 예수님의
재림은 마침내 세계인을 상대로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
드러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창조의 각본이었다.
온 인류는 하나님의 구원(영생)의 대상인데,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은
온 세계인을 상대로 오셨기 때문에 실상이라고 한다. 초림 때는 말씀을
비유로 주심으로써 우리 중 아무도 그 비유를 풀어내지 못하고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알지 못하는 죄인임을
드러내시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우리가 죄인임을 자백하지 아니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마침내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어 온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는
데까지가 창조이다. 따라서 창조는 지금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까지도 계속 진행 중에 있는 창조미완이다.
오늘에 오신 재림주의 진리의 새 말씀에 의해 택한자 144000은 첫 열매로
창조완성에 이르고, 나머지 인류는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끝에 둘째열매로
창조완성에 이르러 영생의 세계, 즉 파라다이스를 이루시게 된다.
그런데 왜 이같은 창조시작에서 창조완성까지의 창조원리가
“삼인일석(三人一席)” 이 되는가? 즉 알파에서 오메가까지가 왜 삼인일석의
창조원리가 되는가 이다.
본인이 너무나 재주가 없음인지 아무리 말을 해줘도 사람들은 창조원리를
모르고 막연히 도덕적인 착함이 하나님의 진리인양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본의 아니게 성경에 없는 “삼인일석”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보았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물론 격암유록 등 세상예언서에는 삼인일석이 있음).
삼인일석은 세 사람이 오손도손 한 밥상에 앉은 협상테이블이라도 되는가?
전혀 아니다. 삼인일석은 세 사람이(3개 군대)
동상이몽으로 너죽고 나 살겠다는 유혈이 낭자한 전쟁터(진리전쟁 아마겟돈)
에서의 만남이요, 이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요, 영생의 조건이다.
하나님은 빛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빛과 흑암이 한테 섞인 혼재의 하나님으로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은 빛만의 하나님으로만 남아야
하기 때문에 알파와 오메가 하나님이 되시며, 문제의 칼부림이 난무하는
삼인일석이 형성되며, 세상만사 모두 빛과 그림자요,
좋은 일에는 반드시 부작용도 따르는 호사다마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피조세상에 대해 그에 축소판으로 압축해서 보여주신
기독교계의 현황이 또한 반드시 창조원리로서 아래와 같이
삼인일석으로 만나게 된다.
제 1번타자는 초림주에 의해 수립된 기성교단이다.
제 2번타자는 기성교단을 사로잡아 군림하고 있는 자칭 메시야 교단들이다.
제 3번타자는 오늘날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진리의 새말씀인 주의 음성만으로
제 1번타자와 제 2번타자를 이기고 또 이기시는 재림주의 교단이다.
기성교단은 하나님의 근본을 드러내시기 위한, 즉 빛과 흑암이 혼재된
하나님을 온 세상 널리 드러내시기 위한 교단이므로 지난 이천년동안
혼잡된 비유의 말씀을 받았고, 그 혼잡된 비유의 말씀을 깨달은 자 없이
교만이 하늘을 찌르므로 그 이름을 계17장에서
“큰 음녀” “큰 바벨론” “비밀” 등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 교만한 큰 음녀를 떠 받들고 있는 것은 선악과를 준 뱀(마귀, 짐승)이므로
음녀가 짐승(뱀)을 타고 임금님 행차를 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계17:1-7).
그러다 나중엔 짐승(뱀의 후손용, 자칭메시야, 적그리스도)이 음녀를 미워하여
내동이쳐서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했다(계17:16,17)
이는 1번타자 기성교단을 2번타자 적그리스도가 사로잡아 군림하는 때를 말한다.
이 때에 가장 마지막으로 3번타자 재림주가 그 신분을 감춘 상태에서
진리의 새말씀인 주의 음성으로 그들의 비진리를 쳐서 이기시게 되는데
이것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한다.
이 같이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진리전쟁에서 3자 가운데 다시 오신 예수님이
승리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오로지 재림주에게 그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때문이다.
즉 주의 음성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시는 진리이므로 하나님이 그분의
손을 들어주어 그분과 그분을 따르는 택한자 반열에게
불멸의 몸을 입혀주시는 권능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 이 같은 3자의
싸움박질과 그 최후의 승자인 재림주가 왜 진리이며 창조원리인가?
하나님은 본디 빛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흑암의 하나님도 함께 있는
빛과 어둠의 일원론이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 하나님이
자신속에 있는 흑암 부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오셨는지 알려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듭나라고 하심은 그것이 곧 하나님도 거듭남이
된다는 뜻에서 진리요, 창조원리가 되는 까닭에서다.
거듭난다는 말이 간단한 것 같아도 그 말의 참 뜻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근본과 우리의 근본을 흔들어 깨우는 창조원리가 알박아 있는 엑기스이다.
창조원리의 엑기스? 그렇다.
사실 창조원리를 다 말하기란 거대담론으로 이어져야겠으나 여기서는
아주 중추적 요점만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