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벤치
해 질 무렵
공원 벤치 하나가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사람의 체온을
천천히 식히고 있다
비둘기 몇 마리
누군가 흘리고 간 시간을 쪼아 먹고
청소부의 빗자루는
가을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저녁을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주머니 속 영수증은
이미 쓸모를 다했는데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 하나는
아직도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때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과
돌아갈 생각이 있는 사람은
조금 다른 표정으로 걷는다
나는
빈 벤치 끝에 앉아
낙엽 대신
오늘 하루를 털어낸다
누구에게도 보내지 못한 인사와
끝내 하지 못한 미안함까지
바람이 알아서
가져가도록 둔다
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시 위에 천천히 내려앉고
내일도 같은 자리에
벤치가 기다릴 것을 알기에
조금 늦은 발걸음으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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